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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겨울 태종대, 그 시린 바다가 좋더라



겨울 태종대,
그 시린 바다가 좋더라!

오랜만에 부산을 찾았습니다. 부산으로 이사를 간 동서 네를 찾았던 것이지요. 집에 들르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어디를 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대뜸 태종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태종대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더군요. 유명한 곳은 늘 다음으로 미루는 습관이 있는데 태종대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북부산 나들목을 지나 두어 개의 터널에 동전을 던지고 시내에서 한참이나 가다서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영도에 도착했습니다. 그 유명한 자갈치 시장도 지척이었습니다. 이제는 낡아 유물로 남은 영도대교가 옛 부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새로 놓인 부산대교를 지나고도 한참이나 달려서야 태종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열차 운행을 안 합니다. 자, 해상관광하실 분들 빨리빨리 오세요. 바다에서 보지 않으면 태종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입구에서부터 봉고차를 세워 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유람선 호객꾼들로 정신이 없다. 아이 때문에 배를 탈까 하고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팔을 낚아채며 그냥 걷자고 합니다. 휴~


사람들로 늘 붐빈다고 하더니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다행히 한적했습니다. 전날 비가 와서 노면이 미끄러워 순환열차를 운행하지 않는다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온통 아스팔트길이라(물론 인도는 있었지만) 걷기에는 재미 없는 곳이더군요. 열차관광과 해상관광도 좋겠지만 걷는 이들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겠습니다.


뻥 뚫린 아스팔트길이 지겨워 숲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러기를 한참,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멀리 오륙도도 보이더군요.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등대가 보였습니다. 1906년 12월에 설치되어 1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온 영도등대입니다. 지금은 태종대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지요.

 
등대 주위로는 자갈마당, 신선바위, 망부석, 주전자섬의 절경이 모여 있었습니다. 갯바위 곳곳은 낚시꾼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바다의 절경은 낚시꾼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셈이지요.


전망대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였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겨울바다를 느긋하게 보았습니다.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유람선 한 척이 지나갑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듭니다. 늘 익숙한 풍경인데도 유람선을 타면 왜 사람들은 손을 흔들까 하며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따뜻한 차를 들고 전망대 안을 구경하고 있는데 마침 최지우 씨 사진전을 하더군요. 사진을 보자마자 "이~뻐." 라고 했더니 딸아이가 "아빠는 왜 그렇게 느끼하게 하지. 잘 봐. 이~퍼, 이렇게 하는 거네요." 쳇 자기가 해도 느끼한 건 마찬가진데. 하여튼 개콘이 대세이긴 대세인 모양입니다.


생도라고도 불리는 주전자섬은 정말 이름처럼 주전자를 꼭 빼닮았습니다. 작은 바위섬인데 고기가 잘 잡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아담한 주전자섬에 작은 등대가 인상적입니다.


섬 좌우로 쉴 새 없이 배들이 드나듭니다.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합니다. 흐릿한 날씨 탓인지 이내 해가 떨어지려 했습니다. 이곳에서 일몰을 보면 좋겠지만 오늘은 그냥 아내와 딸과 함께 느긋하게 걷고 싶었습니다. 그저 태종대의 이 시린 겨울바다만으로 충분합니다.


길의 끝에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긴 의자가 바다를 향해 있어 노을을 보기에 좋았습니다. 멀리 거제도, 가덕도가 보일 듯 말 듯하고 다대포 몰운대, 송도 안남공원, 천마산이 또렷이 보입니다.


대도시로서의 부산의 이미지와는 달리 해안은 또 다른 부산의 모습입니다. 부산의 빼어난 해안절경은 예부터 이름나 있었습니다. 이곳 태종대도 신라 태종(무열왕)이 찾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부산의 해안길을 걷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듯합니다. 이미 ‘갈맷길’로 이름 붙여진 이 해안길들은 달맞이길, 이기대해안산책로, 절영해안산책로, 송도해안볼레길 등으로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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