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중국을 거쳐 인도까지 간다는 착한스님짜장

 

 

 

중국을 거쳐 인도까지 간다는 ‘착한스님짜장’

- ‘착한스님짜장’ 남원 선원사 운천 스님을 만나다

 

 

지난 유월, 춘향제가 열리는 남원을 찾았다. 축제도 축제거니와 조금은 색다른 만남, 세간에 ‘착한스님짜장’으로 알려진 운천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선원사를 몇 번이나 들렀지만 스님이 짜장 봉사를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작년인가, TV와 언론보도를 통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스님을 뵈었지만 별도로 여쭙는 일은 없었다. 처음엔 다만 그러려니 했지만 스님의 짜장 봉사는 중단 없이 4년째 이어졌고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스님에게 짜장 봉사에 매진하게 했는지 그 궁금증을 이길 수 없어 스님이 계신 선원사를 다시 찾았다.

 

운천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선원사는 예전 남원 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절이지만, 지금은 남원 시내 한복판에 있는 조용한 사찰이다. 공양주가 정성스레 차린 아침 공양을 한 뒤 시원하게 내어놓은 돼지감자차를 한 잔 마시며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6월 춘향제 기간 동안의 착한스님짜장, 초등학생과 군인, 성직자, 외국인은 무료로 먹을 수 있었다.

 

- 지금 짜장 봉사를 4년째 하고 계시죠?

4년이 넘었죠.

 

- 짜장면을 봉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저는 고향이 수원인데, 어머니 고향이 전남입니다. 어렸을 때 역 근처에 살았는데 어머니께선 행상을 하시는 분들을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재이고 먹이고 했어요. 그 기억들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편안히 잘 사는 것 같아요. 여기 와서 무엇을 시작할까 하다가 스님들이 면을 좋아하고 대중들도 좋아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짜장면 봉사를 4년 넘게 해온 남원 선원사 주지 운천 스님

 

- 짜장 봉사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요새는 주로 교도소를 많이 다닙니다. 교도소는 인원이 많아요. 많은 데는 삼천 명, 적은 곳은 2천 몇백 명인데, 그분들이 하는 얘기가 전체 수용자들에게 짜장면을 먹이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분들은 돈이 있어도 사먹을 수가 없는데 맛있게 먹고 고맙다는 얘기를 소장이나 직원들에게 들을 때 뿌듯하고 좋습니다.

 

▲ 남원 선원사에서 '착한스님짜장' 운천 스님을 만났다.

 

- 짜장 봉사를 하면서 어렵고 힘든 점은 없었는지요?

글쎄요. 지나고 나니까 그런 것들은 잘 모르겠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근데 안타까운 것은 같이 해 오신 분이 계속 그런 마음으로 처음과 끝이 이어졌으면 좋은데 하나둘 떠날 때 조금은 마음이 그렇죠. 일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일체유심조라고, 마음만 가면 다 되는데 그 마음이 안 가서 못하는 것 같아요.

 

 

- 봉사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나 봉사를 하면서 만난 분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요?

한번은 전라북도 도청에 갔더니 도지사실에서 그런 제기를 하더라고요. 위도에 짜장면 집이 없다고 거기를 한 번 가서 해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거기를 가기로 했는데, 네 번 만에 겨우 갔어요. 날짜를 잡고 가려고 하면 파도 때문에 배가 못 뜨고, 근데 거기 갔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경치가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우리가 한 달에 한두 번씩 부산 구서역에 가는데 한 노보살님이 짜장면을 드시면서 우시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참 좋아하는데 몸이 아파서 못 나오신다고, 할아버지 생각하면서 우시기에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아버지 생각도 나고요.

 

 

- 짜장 봉사를 하시려면 재료비 등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마련하나요?

선원사에서 돼지감자를 재배해서 판매한 수익금으로 비용을 마련합니다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요. 출가하기 전에 형님이라 그러죠. 친형이 도움을 많이 주고요. 고등학교 동창도 있고요. 힘들 때 연락하면 그 두 분이 도와주십니다.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잘 돼요. 작년에 그 친구가 2천만 원 기부를 했어요. 수원 시민에게 짜장면 2만 그릇 해주라고요. 그래서인지 3개월 만에 진급을 했다네요. 부장으로. 하하하. 지점장에서 7백 개 지점을 관리하는 부장으로 진급해서 오히려 저에게 고맙다고 하죠. 올해도 3천만 원 지원해줬답니다.

 

 

- 한 번에 만드는 짜장면의 양은 보통 어느 정도 인가요?

짜장면을 가장 적게 만들었을 때는 30인분, 가장 많이 만들었을 때는 4500인분을 만들어 봤습니다. 성동구치소는 2500인분을 혼자 했어요. 대전교도소 같이 큰 곳은 인건비를 주고 두세 명을 데리고 갑니다.

 

 

- 준비과정과 소요시간은요?

작년에 MBC뉴스 앵커 출동에 나갔는데요. 신동호 아나운서가 저에게 꼭 방송에 나왔으면 좋겠다 하기에 저는 방송은 싫다며 나가야 되는 세 가지 이유를 대라고 했지요. 성직자가 한 장소에서 하는 경우는 많은데, 전국적으로 한 달에 10번 이상 꾸준히 나가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요. 대개 돈을 주고 재료비를 사서 하는데 저처럼 농사를 지어서 하는 사람이 두 번째 이유였지요. 나머지 하나는 기억에 나지 않는데요. 직접 농사를 지어서 하니 농사짓는 시간까지 합치면 3월부터니까 짜장면을 준비하는 기간이 꽤 길죠. 농사는 양파, 감자, 무, 배추, 파, 깻잎 등 한 열 가지 넘게 농사를 짓죠. 작년에 6군데 4000평정도 지었지요. 4000평이라 하더라고 몇백 평씩 떨어져 있다 보니 참 힘들어요. 얼마 전에 청송교도소를 갔다 왔는데, 마침 청송에 가니까 땅이 몇만 평 있다는 거예요. 그걸 위탁을 받아서 한 군데서 농사를 지으면 더 많이 봉사할 수 있고 일하기도 수월하지 않을까 싶네요.

 

 

- 왜 하필 짜장면인가요?

저만의 추억인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짜장면이 워낙 귀해서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리고 스님들이 면을 좋아해요. 절에서는 매일 똑같은 밥에 반찬을 먹다가 면이 나오면 스님들이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죠. 처음에는 50인분 100인분 정도였는데, 이제는 몇천인분이죠. 짜장면은 쉬운 것 같아도 중국집에 가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먹기 힘들잖아요. 다른 메뉴로는 여름에는 냉짬뽕, 겨울에는 짬뽕을 생각하고 있어요.

 

 

- 체력관리를 별도로 하시나요?

이런 게 있더라고요. 일이라고 생각하면 체력이 들어가고 힘들겠지만요. 즐겁게 하면 힘든 줄 모르겠더라고요. 단지 운전이 힘들어요. 다른 건 힘든 건 없어요.

 

- 운전이 힘드시나요?

봉사가 있는 날이면 보통 새벽 5시에 절에서 출발을 해요. 온종일 봉사를 하고 돌아오면 대여섯 시에요. 거의 길 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셈이죠.

 

 

- 주로 교도소를 많이 가시는데요. 재소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굉장히 좋아합니다. 평소에 먹을 수 없으니까요. 그분들이 먹는 것은 대개 컵라면 등인데요. 생면을 바로 뽑아서 하니까 살아 있으니 굉장히 좋아하죠. 근데 모르겠어요. 우리나라 교도소가 문이 높아요. 계속 가고 싶은데, 문을 잘 안 열어줘요. 직원들이 번거로워서 그러가 봐요.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고 특별한 음식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나 봐요. 직원들이 잘 오케이 안 해요. 교도관들은 조금 싫어하는 것 같아요. 또 종교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고요. 불교보다는 기독교나 타 종교가 많으니까요. 사실 이런 일은 종교를 초월해야 되는데, 저는 불교기관에만 가지 않습니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원불교든, 원하고 부르면 다 갑니다.

 

 

- 결국 지금 스님께서 하시는 일이 어떻게 보면 사회복지에 관한 일인데, 우리나라 사회복지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 제가 복지관이라든가 이런 데를 나가보면 우리나라 복지는 조금 문제가 있는 같아요.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요. 보통 종교단체에서 복지관을 시 등에서 위탁을 받아 운영을 많이 하는데 자립을 다 해야 돼요. 예를 들어 인건비 정도는 나라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어도 다른 비용은 보통 한 10%정도를 부담하고 있는데, 차차 늘려가서 자립해야죠. 나랏돈으로 봉사를 한다는 것, 엄밀히 말하면, 봉사라는 의미하고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모든 복지관이 다 자립을 해서 전 국민이 보편적 복지로 다 이용할 수 있게 해야지, 일정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 스님께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요?제가 얼마 전에 팽목항에도 짜장면 해주러 갔다 왔는데요. 그걸 바라보면서 느꼈던 게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많이 발전했는데,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아픔을 깔고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게 참 안타까워요. 아름다운 세상을 서로 주고받으면…. 우리 민족이 참 대단한 민족이잖아요. 제가 싱가포르에 유학 갔을 때 교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민족이 한국 사람, 한민족이라 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IMF 터졌을 때를 이야기하더라고요. 서민들이 집안에 있는 금을 꺼낼 수 있는 민족은 우리 한국 사람밖에 없다는 거였죠. 근데 경제가 나아지면서 사람들이 마음이 넓어져야하는데 더 좁아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타까워요. 국민들뿐 아니라 정치인, 성직자들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도자들이 먼저 기부하고 베푸는 문화가 되었으면 해요. 스님들이 먼저 보시하는 거로 바뀌어야겠죠. 베풀고 사는 백의민족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6월 춘향제 기간 동안 운천 스님을 돕고 있는 아동문학가 소야 스님

 

- 지금까지 봉사한 짜장면의 길이를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요?

한 7만 그릇 가까이 돼요. 한 번 재보려고요. 기록은 해 뒀습니다. 그거 참 재밌겠네요.

 

 

 

 

- 앞으로의 봉사 계획은요?

보통 우리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왔잖아요. 중국 조선족들이 많이 있는 연길에 교도소가 있다고 하는데 연길에서 짜장 봉사를 시작해서 중국 교도소라든가, 인도까지 가서 짜장면을 직접 해줬으면 하는 게 꿈이고 계획입니다.

 

소야 스님과 운천 스님

 

이로써 운천 스님과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인터뷰 내내 막힘이 없었다. 최근에 방송출연을 많이 한 것도 있겠지만, 거침없는 당당함, 자긍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다. 보시, 무언가 준비 된 후에, 그리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욕구가 있다면 제대로 되겠는가. 자신의 모든 걸 비우니 비로소 채울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남도여행법> 북콘서트에서 축시를 낭송하고 있는 소야 신천희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