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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그림엽서 같은 제주 우도의 낭만 풍경

 

 

 

흐려도 좋다. 엽서그림 같은 제주 우도의 낭만 풍경

  

다시 찾은 우도, 횟수로 벌써 여섯 번째였던가요. 여행자가 우도를 찾는 날은 늘 비가 왔습니다. 날씨가 왜 이리 짓궂은 지를 탓해 보지만 비는 아랑곳없이 늘 내렸습니다.

 

우도봉에서 내려다본 우도 일대와 지미봉

 

이번에 우도를 찾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제주 동부의 세화종달해안도로를 달릴 때만 해도 하늘이 맑더니 우도로 가는 배를 타자마자 하늘이 잔뜩 찌푸리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우도에 내리자마자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한 번 맑은 날의 우도를 사진에 담을 수 있을까. 늘 고민이었습니다. 흐리며 흐린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운치가 있다곤 하지만 몇 번이고 비가 오니 이도 지칠 법합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 않고 가랑가랑한 비라는 사실입니다.

 

 

날씨는 늘 훼방을 놓곤 하지만 우도는 한결같습니다. 특히 우도봉(우두봉, 132m)은 드넓은 초원의 푸름이 있어 마냥 낭만적입니다. 젊은 커플들의 다정한 모습은 예쁜 엽서그림 같아 보입니다.

 

 

소가 돌아누운 모양을 닮아 우도라고 불리는 이 섬은 건너편 바다에서 보면 소가 정말 누워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상상력을 조금 보태어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도봉은 소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지요. 그래서 우두봉, 쇠머리오름, 혹은 섬머리오름으로도 불립니다.

 

우도봉(132m)과 1906년에 세운 우도 등대

 

우도에는 1983년에 우도의 경승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당시 제주 본섬 애월읍 연평중학교에 재직 중이던 김찬흡 선생이 이름 지은 ‘우도팔경’이 있습니다. 그중 우도봉은 제4경인 ‘지두청사(指頭靑沙)로 우도봉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우도 전경과 맑은 바다, 빛나는 백사장 풍경을 말합니다. 설문대할망이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망아지 한 마리가 거의 180도 가까이 목을 젖히는 놀라운 광경을 보여줍니다. 그 유연성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초원을 뛰어다니니 머리마저 유연해진 모양입니다.

 

 

온통 새까만 벼랑과 진녹색의 초원, 푸르다 못해 검은 바다 빛과 회색의 하늘이 묘하게 섬과 잘 어울립니다. 섬이 이토록 감성이 풍부하다 보니 영화 <화엄경>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나 봅니다. 누구나 이 섬에 서면 영화에 나오는 13살 주인공 선재가 될 것입니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툭툭 던지겠지요.

 

 

'이랴~, 워~워, 이랴~' 어디선가 채근하는 목소리에 잠시 한 생각을 접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말을 달리는 여자 둘이 보였습니다. 말을 타는 양이 제법 대담해 보였습니다.

 

 

말을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여행자로선 마냥 부럽기만 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사진 몇 컷을 찍고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초원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말이 달리니 그 넓이가 참 실없다, 여겨집니다. 여인 둘은 점점 멀어지고 남은 것은 말똥이었습니다. 푸른 초원 위에 나뒹굴고 있으니 더욱 선명합니다. 어느 말의 짓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말이 마치 자신의 초원이라는 작품에 낙관을 찍은 듯합니다.

 

 

그녀들이 사라지고 나자 초원에는 다시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낭만의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모든 감정들이 이곳 우도봉에서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공동묘지로 보이는 수십 기의 무덤들도 이제 초원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모든 아픔과 회한은 푸른 언덕 아래 깊이 잠들었습니다. 새로 돋아난 풀로 말은 배를 채우고 또 다른 생명을 이어갑니다.

 

정상은 막혀 있었습니다. 등대로 가는 길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보면 성산일출봉과 지미봉, 우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초원 위에 퍼질러 앉아 우도를 내려다보는 기분을 어찌 표현할까요?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세상의 시름쯤이야 끼어들 틈도 없습니다. 아예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고, 마음의 모든 집도 훌훌 벗어던지고 말입니다.

 

성산일출봉과 지미봉

 

갈매기 한 마리가 높이 날아옵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에 갈매기는 겨우 점 하나로 추억됩니다. 대자연에 들어오면 누구든, 무엇이든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떠한 욕심도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지는 못합니다.

 

 

풀밭을 따라 난 울타리가 하늘과 땅의 경계를 구분해줍니다. 그 경계의 선을 따라 사람들이 거닐고 있습니다. 땅으로 계속 걸어갈지, 아니면 하늘을 향해 걸어갈 지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사람 자신이 아니라 그 경계를 만든 하늘의 뜻일 겁니다.

 

 

그 경계를 옆에 두고 초원을 내려왔습니다. 말 한 마리가 말뚝에 매인 채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안마당임에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달릴 수 없는 말의 처지가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대신 소는 섬의 주인마냥 느긋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운명이 그들의 삶의 방식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멋진 풍광을 가진 우도. 그러나 마냥 낭만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거친 삶을 살아온 섬 사람들의 애환도 있을 것이고, 러일전쟁 당시에는 일본 해군제독 도고헤이하치로가 부하를 보내 이곳을 지나는 러시아 함대를 정찰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06년 3월에는 제주도 최초의 우도등대가 우도봉 정상에 생겼습니다.

 

 

우도봉 꼭대기 등대 아래... 이곳에서 여행자는 제주의 지난 역사와 현재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