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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세 번 놀란, 세상에서 가장 진기한 공원

 

 

 

세 번 놀란, 세상에서 가장 진기한 공원-제주돌문화공원

 

제주의 정체성은 과연 뭘까? 제주를 20번 넘게 드나들다 보니 이런 의문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제주도... 이번에 들른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제주의 정체성을 일면 엿볼 수 있었다. 제주라는 섬이 형성된 과정과 제주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돌문화를 통해 제주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처음 돌문화공원에 들어섰을 때 인적이 드문 그 황량함에 놀랐었고, 100만 평이 넘는 그 어마어마한 대지에 다시 놀라게 되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놀라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돌갤러리를 들러 갖은 화산석을 보고는 아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가 있다 한들 이 기묘한 조각을 따를 수 있겠는가.

 

전설의 통로

 

제일 처음 마주친 곳은 19계단이었다. 1999년 1월 19일 기존에 있던 탐라목석원을 돌문화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협약한 날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이 계단을 지나면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주제로 한 전설의 통로가 눈앞에 나타난다. 숲길에 잠시 들어서는가 싶었는데 이내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하늘연못'으로 불리는 곳이다.

 

하늘연못

 

박물관 옥상에 설계된 이 '하늘연못'은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죽솥'과 '물장오리'를 상징화한 원형무대이다. 둘레가 125m로 카메라 각도를 달리 하면 '제주에 이렇게 넓은 호수가 있었나,' 하고 사람들에게 눈속임을 하기에 충분하다. 수상무대로도 활용될 계획이라고 하니 제법 그럴싸하다.

 

마치 넓은 호수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하늘연못

 

하늘연못 아래는 돌박물관이다. 3000평 규모의 돌박물관은 깊이 8m로 패여 있던 낮은 구릉지를 이용하여 지상 1층, 지하 2층의 건물로,  제주형성전시관과 돌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다.

 

돌박물관 내부

 

제주형성전시관에는 제주의 화산활동을 소개하고 있고, 돌갤러리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화산암들을 전시하고 있다.

 

화산석

 

다양한 모양의 화산석과

 

두상석

 

머리처럼 생긴 수십 개의 두상석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건

 

구멍이 쑹쑹 뚫린 풍화혈

 

풍화혈이었다. 풍화혈은 암석이 풍화에 의해 형성된 것을 말하는데, 특히 작은 풍화혈들이 열을 이루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벌집풍화'라 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숨이 멎을 듯 기묘하다.

 

화산석

 

뛰어난 조각가가 평생 조각을 한들 이보다 나을 수 있을까.

 

화산석

 

자연이 만들어낸 이 진기한 화산암들 앞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화산석

 

처음엔 넓기만 넓고, 여름의 뜨거운 땡볕에 그대로 노출된 뭐 이런 공원이 있느냐, 는 불만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화산석

 

그 기기묘묘한 형상은

 어떤 것은 바벨탑 같기도 하고

 

화산석

 

또 어떤 것은 악마의 성처럼 생겼다.

 

화산석

 

자연이 빚은 조각에 감탄 한 번, 사진 한 컷... 다시 사진 한 컷, 감탄 한 번...

 

화산석

 

눈도, 손도, 심장도 쉴 틈이 없다.

 

화산석

 

나중에는 감탄사도 사치라는 걸 알고 묵묵히 수도승처럼 어두운 갤러리를 뚜벅뚜벅 돌아다녔다.

 

돌갤러리

 

분명 어둠 속에서 보니

 

화산석

 

한층 잘 보였다.

 

화산석

 

군더더기는 어둠 속에 묻히고

 

화산석

 

그 아름다움만 빛으로 남았다.

 

화산석

 

한참을 토굴 속을 헤매다 밖으로 나오니 빛이 강렬했다. 이방인의 뫼로소가 느끼는 감정이 순간 이는 듯했다.

 

용암구

 

집채만 한 바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생김새대로 용암구라 불린다.

 

돌민속품, 몰방애(연자방아)

 

돌문화공원은 정말 넓었다. 100만 평이라는 말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이 더운 여름에 이곳을 걷자니 사막에서 전시회를 관람하는 기분이다. 그늘 하나 없는 야외 전시관. 분명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돌민속품, 정주

 

드넓은 대지에는 제주의 돌민속품이 전시되어 있다. 과거 제주사람들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들었던 각종 생활도구들을 포함해서 농업, 어업, 축산 등의 생산활동과 운반, 통신, 방어시설까지 돌로 이용한 것이 약 27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돌민속품, 동자석

 

'몰방애'라 부르는 연자방아, 동자석, 돌확, 정주석 등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돌민속품, 동자석

 

돌민속품, 항아리

 

돌민속품의 끝에 돌하르방이 보인다. 제주의 돌하르방은 제주시 24기, 대정 12기, 성읍 12기로 모두 48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1기가 분실되어 현재 47기가 남았는데, 이곳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돌하르방은 분실된 그 1기와 짝을 이루던 것이라고 한다. 돌하르방만을 따로 모아 재현한 것이 군대에서 민간인을 모병하여 임시로 사열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돌하르방

 

한쪽으로는 제주의 초가가 보인다. 제주의 전통마을을 재현해 놓았는데 세거리집, 두거리집, 말방앗간 등이 있다. 그중 세거리집을 들렀는데, 가옥 구조가 왠지 과장되어 있어 아쉬움이 컸다.

 

제주전통초가, 삼거리집

 

어머니를 그리는 선돌

 

영실중앙무대를 지나 야트막한 길, 앞으로 어마어마한 바위 군상들이 나타났다.

 

오백장군 군상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오백장군 군상이다. 돌문화공원이 한라산 영실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신화를 중심 주제로 하여 꾸며진 신화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곳은 공원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백장군 군상

 

 오백장군 군상

 

군상들이 도열해 있는 끝자락에 '어머니의 방'이라는 곳이 있다. 대체 뭘까. 어두운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아'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벽에 비친 그림자... 그 앞의 용암석에서 비친 것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 돌을 처음 본 자는 그 그림자까지 미리 보았단 말인가. 저 돌을 만든 자연은 그 그림자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었단 말인가. 말문이 막혔다. 분명 이 용암석은 돌문화공원의 하이라이트였다.

 

어머니의 방(설문대할망을 상징한 용암석), 그림자를 보라

 

밭 가운데 쌓은 돌무더기를 제주에서는 '머들'이라고 부르는데, 그 머들로 석굴을 만들어 이 '어머니의 방'이라는 용암석을 설치해 놓았다. 설문대할망이 사랑하는 아들을 안고 서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석굴 밖에는 설문대할망이 발을 잘못 디디어 빠져 죽었다는 죽솥을 상징하는 연못이 있었다. 이 작은 연못 주위로 한 맺힌 오백 아들의 석상들이 있어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높은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고 있었다.

 

죽솥을 상징한 연못

 

☞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023에 있다. 관람료는 어른 5000원, 청소년 3500원, 만12세 이하와 만65세 이상은 무료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장할 수 있으며 관람은 오후 6시까지이다. 매월 첫째 주 월요일은 휴원인데, 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에는 개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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