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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味학

노무현 대통령이 다녀간 연밥식당, 우연히 갔더니

 

 

노무현 대통령이 다녀간 연밥식당, 우연히 갔더니

 

애초 이 식당에 갈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말 함양 상림에 갔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자주 가던 '늘000' 식당으로 갔습니다. 수술 후 식이요법을 하고 있어 외식은 이날 처음이었습니다. 식당 고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채식 위주의 식당으로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늘000’이었습니다. 건데 식당에 갔더니 단체손님으로 빈자리가 없어 식사는 1시 30분 이후나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때의 시각이 12시, 기다리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었고 아직은 제때에 식사를 해야 해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으로 가서 식사하기에도 너무나 멀었습니다. 인근에 채식 위주의 자연식 식당이 없나 물색하고 있는데, 마침 연밥전문점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란색 바탕의 안내판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드신 연밥전문점'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배도 고프고 식당을 새로이 찾는 것도 힘들어 외부가 깔끔하다는 인상에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손님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실내도 물론 깔끔했고요.

 

간단한 메뉴에 비해 함양의 향토주를 많이 파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짜지 않을지, 맵지는 않을지, 조미료는.... 요즈음 저의 입맛이 거의 궁극에까지 왔으니까요. 아내는 이런 저를 두고 '애기 입맛'이라고 합니다. 아기가 이유식 먹듯이 수술 후 아주 최소한의 간으로만 조리한 음식만을 먹고, 심할 정도로 꼭꼭 씹는 식습관으로 인해 입맛이 재료의 ‘원맛’에 아주 민감해졌으니 그도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요.

 

젓가락도 가지 않는 많은 가짓수 대신 풍미를 택하였다

 

한 20여 분 기다리니 연잎밥이 나왔습니다. 메인은 연잎밥에 오리훈제, 가오리무침, 콩불고기, 연근녹두전, 연잎두부 등이었습니다. 반찬 가짓수는 많은 편은 아니었지요. 그럼에도 이곳의 상차림은 중심을 이루는 주연배우와 명품 조연, 제 역할을 다해내는 엑스트라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흔히 '단돈 얼마에 무려 00가지나 되는 맛집'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그런 가벼움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명확한 주연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연도 아닌, 거개 우왕좌왕하는 엑스트라만 수십이 있는 상차림과는 달랐습니다. 젓가락 한 번 가지 않는 반찬의 가짓수에 감동할 이유는 없겠지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는 연밥

 

세 명인데도 2인분만 시켰습니다. 그렇게 주문한 것은 아홉 살 딸애 때문이 아니라 적게 먹을 수밖에 없는 저 때문이었습니다. 종업원에게 2인분만 주문해도 되겠느냐, 고 했더니 흔쾌히 괜찮다고 했습니다.

 

먼저 밥을 푹 감싼 연잎 꺼풀을 조심스레 벗겼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밥은 그 자체로 아주 먹음직스러웠습니다.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살짝 고이더군요. 한 숟가락 퍼서 입안에 넣었더니 그 향이 입안에 가득 돌았습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보았습니다. 고소하면서 약간은 찰진 것이 씹는 맛이 좋았습니다. 콩, 잣, 팥, 대추 등이 내는 갖은 향취가 입안에 감돌아 더욱 풍미를 내었습니다.

 

 

연밥집에 가면 대개 나오는 오리훈제의 맛은 어땠을까요? 제가 아직 훈제고기는 먹을 수 없는 상황인지라 살코기 몇 점만 조금 떼어내 맛을 보았습니다. 나머지 전체 맛은 아내와 딸아이의 평을 듣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딸애는 '굿'이라고 하더군요. 특히 딸애가 무척 좋아했습니다. 살코기의 부드러움과 약간 질긴 질감이 느껴지는 껍질이 적절히 섞였다고 하더군요. 느끼할 수도 있는 맛을 연근과 야채가 잡아주는 것도 좋았다고 합니다.

 

 

이날 가장 제가 좋아했던 건 '콩불고기'였습니다. 콩으로 만든 이 단백질 덩어리는 씹는 질감은 부드러운 소고기와 같았으나 콩 고유의 깊은 맛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간을 한 듯 안 한 듯, 심심한 그 미묘한 맛에 자꾸 젓가락이 가더군요. 같이 놓인 연근은 역시 밋밋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맛에 변화를 주는 역할을 했지요.

 

 

가오리무침은 아내가 '아, 찜을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겠군.' 하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이던 음식이었습니다. 보기에는 일반적인 찜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으나 실제 맛은 전혀 맵지도 짜지도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아주 담백한 맛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물에 씻어 먹어 보고 용기를 내어 양념이 묻은 가오리 살점을 그대로 먹어 보았더니 식감이 아주 좋더군요.

 

 

감칠맛이 있게 달짝지근한 연근녹두전은 처음에는 무심한 듯하나 점점 입안에 살며시 감도는 고소한 뒷맛이 좋았습니다. 역시 아직은 '애기 입맛'인가 봅니다.

 

 

연잎(근)두부는 딱 두 조각만 나왔습니다. 이쯤에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허기야 2인분을 시켰으니 그럴 수밖에요. 건데 나중에 이 두 조각이 양에 딱 들어맞았다, 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늘 음식을 남기면서도 푸짐한 양 위주의 식습관은 욕심이 앞서 일단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선호하게 습관을 낳게 되었나 봅니다.

 

 

머위줄기무침, 열무, 도라지, 무장아찌, 아주까리(피마자)와 당귀장아찌가 나머지 입맛을 자극했습니다. 그중 단연 으뜸은 당귀였습니다. 쌈 재료로 자주 먹는 당귀를 장아찌로 먹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건데 놀라운 건 장아찌인데도 전혀 짜지가 않다는 점입니다. 아주 잘 발효된 맛, 짜지 않으면서 밍밍하지도 않은 가장 최선의 맛이라고나 할까요. 아내가 감탄을 하더군요.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맛이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가 당귀장아찌에 감탄을 했던 이유는 당귀장아찌 자체의 맛도 뛰어났지만 이 당귀장아찌가 전체 메뉴를 조화롭게 해서 이 식단의 풍미(風味)의 중심에 있다는 겁니다. 다소 느끼하고, 심심하고, 밋밋할 수 있는 반찬들을 서로 조화롭게 하면서 그 자체의 맛매도 뛰어나 전체 식단을 이끄는 풍미(豐味)가 뛰어난 당귀가 썩 좋았습니다.

 

달콤해 아이가 좋아했던 연잎키위차와 연비누

 

이곳 음식의 장점은 천연재료에 있습니다. 주인에게 굳이 묻지 않더라도, 주인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화학조미료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차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양념 맛에 재료의 ‘원맛’이 묻혀 양념으로 얄팍한 혀를 유혹하는 식당들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적어도 이곳 음식에선 과다하지 않은 양념, 최소한의 간으로 재료의 ‘원맛’을 깊이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문을 나서는데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제 다녀가셨지요?"

"서거 6개월 전이었습니다."

"아, 예~에"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특별함으로 들뜨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그윽한 소탈함이 오래오래 곱씹어 남는 것이, 어쩌면 이곳 음식과 인간 노무현이 조금은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연밥전문점 옥연가는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1033-8에 있다. 상림 주차장에서 골목 안쪽으로 30여 미터 거리에 있다. ☎ 055-96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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