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길을 걷지 않으면 누가 여행자라 할까
홍류동 비경을 따라 걷는 해인사 소리길
붉은 빛이 흐르는 골짜기. 홍류동紅流洞. 그 길을 따라 소리길이 열렸습니다. 절로 가는 길에는 으레 계곡이 있습니다. 그 물소리하며, 바람소리를 그저 계곡에 흘러 보내는 게 안타까워 절로 가는 길은 계곡 옆으로 나 있습니다.
해인사로 가는 홍류동 골짜기도 절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십여 리에 걸친 그 골짜기는 첩첩이 포개져 그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양옆으로 우뚝 솟은 산자락이 가리고,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붉은 소나무가 가리니 넘치는 물에 정신마저 아득하게 멀어집니다.
봄꽃의 붉은 그림자가 이 계곡물에 비치고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이 계곡물을 붉게 물들이니 홍류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겠지요. 아직은 푸르지만 그 붉음이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겠습니다. 잎은 여전히 푸른데 홍류동 그 이름에 마음이 절로 붉어지려 합니다. 오히려 눈앞이 붉지 않으니 마음이 먼저 붉어지려 하는 거겠지요.
예부터 홍류동의 명성은 대단했습니다. 내로라하는 시인묵객들치고 이곳을 다녀가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아니 이곳을 다녀가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붓을 제대로 들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조선 초의 화가이자 문신인 강희맹은 이곳에 이르러 "이런 곳에 이름이 없으니 어찌 시인이나 글 쓰는 이들의 부끄러움이 아니겠는가." 라고 했습니다. 여행자도 어쭙잖게 감히 말해 봅니다. “이런 길을 걷지 않는다면 누가 여행자라 하겠는가.”
그러면서 강희맹은 이곳의 물과 바위에 이름을 짓고 시를 남겼습니다. '시를 읊는 여울 음풍뢰, 붓에 먹물 찍는 채필암, ' 등이 그것입니다. 이곳 홍류동의 경치 좋은 곳에는 이런 이름들이 널려 있습니다. 도원경에 드는 다리 무릉교, 옥구슬 뿜어내는 분옥폭, 비 갠 달이 비치는 제월담, 신선들이 모여 노는 회선대, 낙화암에서 떨어진 꽃이 모이는 낙화담, 암석이 층층 쌓여 있는 첩석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각기 이름을 주고 거기에 걸맞은 시 한 수를 적어 두니 그냥 소리길이 아니라 문기가 철철 넘치는 길이 되었습니다. 홍류동의 자연이 깊은 건 이런 문자향이 가득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명소마다 이름과 시를 적어둔 표지판이 너무나 커 눈에 거슬립니다. 글이라는 건 읽기에 족하면 그만인 것을.... 그 크기가 주변 자연을 압도해 버리니 문향은 간 데 없고 억지춘향에게 글을 읽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시향에 빠져 숲길을 걸었습니다. 앞서 가던 정 선배님이 흠칫 놀라며 쓰러진 소나무를 가리킵니다. 장정 몇이서 안아야 될 정도로 거대한 소나무가 쓰러진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주변을 살펴봐도 이 나무가 쓰러질 조건은 없는 듯했습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더라도 주위의 빽빽한 숲은 그냥 두고 이 나무만 쓰러뜨렸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이 나무 혼자 너무 잘나서 그런 것일까요.
쓰러진 나무의 거대함에 놀라고 그 나무가 남긴 나이테에 숙연해졌습니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도 결국은 쓰러지겠지요. 쓰러지는 건 외부의 요인이 더하겠지만 아름다운 나이테를 남기고, 남기지 않는 건 결국 각자의 몫이겠지요. 계곡가에 장대하게 서 있는 붉은 소나무를 보며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시가 마음에 드네." 앞서가던 한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는 시인입니다. 조금은 생뚱맞은 전시였지만 숲길 중간 중간에는 시를 적은 천을 걸어두었습니다. 옛 시인묵객들의 문향이 전해진 이곳 홍류동에 오늘의 시인들이 문기가 흐르는 자연으로 가득 채울 모양입니다. 여행자도 잠시 쉬며 시를 맛보았습니다.
중간 안내소에서 서명을 한 후 다리를 건너 길상암으로 향했습니다. 암자로 가는 길을 버리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홍류동의 비경은 절정을 향해 치닫습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숨을 죽인 채 계곡의 비경에 젖어 듭니다.
비는 내리고 안개마저 자욱한 계곡이지만 그 붉은 아름다움은 여전히 기억됩니다. 점필재 김종직이 남긴 홍류동 시가 문득 떠오릅니다. "아홉 구비 날아내리는 물 격노한 우레인가 / 떨어진 붉은 꽃잎 끝없이 물결 따라 흘러오네 / 무릉도원 가는 길 이제도록 몰랐더니 / 오늘에야 산빛조차 시샘하는 그곳에 다다르리"
안개가 날리고 비가 내린다 한들 '산빛조차 시샘하는' 홍류동의 벅찬 풍경을 어찌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너럭바위를 타고 흐르다 모습을 감춘 폭포수가 순식간에 나타나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그 모습에 어찌 시 한 수 나오지 않겠습니까.
푸르다 못해 검은 깊은 소에 잠긴 새파란 잎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백석의 시 한 구절처럼 "비 오듯 안개가 나리는 속에 / 안개 같은 비가 나리는 속에" 여행자는 우두커니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숲길에서 부부를 만났습니다. 마침 바위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더군요. 바위의 생김새도 그러하거니와 부부가 참으로 정겨워 보여 사진을 부탁했습니다. 부부는 선뜻 동의해주었고 자세를 취해주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려는데 혹시 사진이 잘 못 나왔을 수도 있으니 한 장 더 찍으라며 다시 자세를 취해줍니다. 그 마음씀씀이가 하도 고마워 다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무에 걸린 '하심下心'이라는 말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저 평범한 부부의 살가운 배려 앞에 저의 마음은 한없이 내려갔습니다. 누군가 '下心'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면 저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입니다.
농산정 가까이 온 모양입니다. 최치원이 은둔하여 수도하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건너편 제시석이라 불리는 바위벽에는 그의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의 친필이냐 아니냐는 나중의 일입니다. 오직 이 시가 있어 홍류동은 가장 홍류동답게 됩니다.
미친 듯 겹친 돌 때리어 첩첩한 산 울리니
지척간의 말소리조차 분간하기 어렵네
시비 소리 들릴까 저어하노니
흐르는 물 시켜 온 산을 감쌌네
청산이 좋다고 말만 하며 산문을 나서는 스님을 빗대어 말하던 그는 이곳 가야산에 숨어살다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홍류동 골짜기를 문기가 흐르는 자연으로 만든 것은 최치원, 그에게서 비롯되었던 셈입니다.
농산정 아래에서 여정은 끝이 났습니다. 소리길은 이 아래로 한참을 더 가야한다지만 걷는다는 것에 굳이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를 걷느냐는 적어도 여행자에겐 의미 없는 일입니다. 그저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는 것이 여행자의 여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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