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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창해의 푸른 관음도량, 여수 향일암




 

창해의 푸른 관음도량, 여수 영구암


 여행 "어머니,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어, 어디더라. 아이고. 기억이 감감하네."  몇 년 전 중국여행을 다녀 온 어머니께 내가 물었다. "자금성, 상해, 이화원....." 재촉하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아, 상해인데,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겠고, 아따 무슨 꽃이 그렇게 많던지.” 중국여행 7박 8일 동안 어머니가 최고로 꼽은 여행지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각종 꽃을 가꾼 상해의 어느 공원이었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지만 여행지에서의 느낌은 사람들마다 다른 모양이다. 영구암(향일암)도 처음 찾는 이에게는 한없이 좋은 곳이지만 몇 번 찾은 이들에게는 예전의 소담한 암자를 그립게 만드는 곳이다.


 

 향일암.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벌써 여섯 번째인가. 투박하지만 정겨운 옛길 대신 화강암으로 바닥을 깔고 볼썽사나운 일주문을 세운 후 여행자는 향일암에 발길을 끊었었다. 대개 큰절에서 멀리 떨어진 암자에는 별도로 일주문을 세우지 않는 것이 관례이지만 근래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암자가 번성해서인지 일주문을 세웠다. 사찰의 구조와 형식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암자의 규모에 비해 주위를 압도하는 일주문은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장점도 하나 있다. 사찰을 처음 방문하는 이에게는 일주문이 좋은 공부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암자 부근에는 거북이 등의 줄무늬 모양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픈 발바닥. 향일암을 다녀오면 누구나 발가락과 발바닥이 아프다고 한다. 심한 내리막길을 걷다보면 발가락에 힘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원래 바위 덩어리인 암자에 발바닥이 아픈 건 수긍하지만 화강암과 시멘트길이 번갈아 있는 길은 그다지 유쾌한 길이 아니다. 발이 숨을 쉴 수 있는 흙길과 자연석을 바라는 건 관광객들로 붐비는 향일암에는 애초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석과 흙을 섞은 정겨운 길을 만드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향일암 가는 길. 발을 힘들게 하는 시멘트길이 영 불편하지만 매표소로 가는 길거리는 즐겁다. 갓김치 한 번 맛보라는 가게 아주머니들의 성화와 그에 농을 건네는 관광객들의 입담이 걸쭉하다. 아삭아삭한 갓김치가 입에 감돌고 시원한 물갓김치는 더위를 날리기에 충분하다. 한 젓가락 얻어먹고 나면 은근히 사갈 것을 종용하지만 살가운 말투에는 정이 넘친다. 푸근한 남도의 정을 오래 간직하려 무식하게 생긴 일주문을 쏜살같이 지나쳐 버린다. 아픈 발은 어이할 수 없는 일. 석문에 이르러서야 잠시 숨을 돌린다. 왜 일까. 석문이 자연 일주문이 되는데 굳이 일주문을 세운 연유를 모르겠다.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가다듬어야할 석문 앞에서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느라 여유마저 잃어버렸다. 한숨을 석문 사이에 내뱉고 깊이 합장을 한다.



 

 내 마음의 암자. 사람들이 절집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절집이 주는 분위기.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 절로 가는 길에서 돌아보는 내면, 소박한 휴식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모든 것들 중 여행자가 가장 우선에 두는 것은 절집으로 가는 길이다. 법당에 오르기 전 사람들은 절로 가는 길에서 마음을 씻어 일상을 지워버리고 나 자신을 찾으려 사색에 잠기게 된다. 볼거리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사람으로 붐빈다 할지라도 더불어 교감을 얻을 수 있고 땅의 기운과 바람의 소리와 풍경의 그윽한 울림에서 자신을 찾게 된다.


 

화려한 법당. 눈이 부신다. 아, 저 화려한 금빛,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컥거린다. 매스껍다. 역겹다. 토할 것 같은 지붕과 금칠한 벽면. 향일암은 더 이상 수도처임을 포기하고 관광의 최일선에 부처를 앞세우고 있다.


 



 금빛,
인류가 만들어낸 욕망의 결정체이다.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고 바람처럼 살다간 부처의 생은 간 데 없다. 암자는 그 껍데기만 부여잡고 먹구름 가득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왜 그랬을까. 주변 산세와 잘 어울리던 소담한 법당을 왜 그랬을까.






 

 형해화의 정수. 감탄할 일이다. 권위와 화려함의 상징인 금은 이미 부처의 것도 중생의 것도 아니다. 일체 중생을 구제하려던 부처의 정신을 금빛 몸에 가두다 못해 이제 진리의 공간마저 대중과 차단해 버린다. 삭막한 금탑 방에 갇혀 황폐화된 정신을 부여잡고 일생을 마쳤던 중국의 야윈 황제처럼 우리의 정신도 야위어지리라. 금으로 덮인 법당은 권위에 싸여 있고 사람들은 접근하기를 꺼려 그 화려함에 눈길만 줄 뿐이다. 부처는 이미 중생과 고락을 함께 하지 않고 기도와 소원, 경외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일까.

 

 염불 소리 어둡고 습한 돌길을 벗어나니 간절한 염불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바람에 묻히고 어둠의 공간에 하얀 빛이 비치더니 어느새 관음전 앞마당이 나온다. 사람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 어디를 응시하는 것일까. 말이 없다. 오로지 거친 숨소리와 끊임없이 들리는 염불소리만이 가득하다.


 

 관음전. 어두컴컴한 돌문 안처럼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에 거미줄이 걸린다. 무엇에도 걸리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이렇게 가난했던가. 깊숙이  토해 낸 말마저 거추장스럽다.


 

 4대 관음도량. 원효스님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곳. 낙산사 홍련암, 석모도 보문사,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 이곳은 관음도량으로 그 명성을 같이하고 있다. 해맑은 미소를 던지는 관음보살상에 마음이 간절해진다.



 탁 트인 바다. 난간의 거북처럼 사람들도 따닥따닥 붙어 있다. 원효 스님이 좌선을 하였다는 바위도 푸른 바다를 향해 있다. 멀리 오가는 배들, 잔뜩 찌푸린 하늘에 햇빛이 내린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여행자의 불평을 멈추게 하였다.



 동백. 동백 두 그루가 뿌리가 붙은 연리근이 있다. 그 옆에는 관음상이 멀리 바다를 향해 있다. 동백나무에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기암절벽에 우거진 동백나무숲은 그 자체로 일품이다.



 중년의 사내.
다시 암문을 내려오니 중년의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미동도 없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을 앉아 있다. 중년의 여인은 바다를 등지고 그 곁에 앉아 있다.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영구암. 지금은 향일암으로 더 많이 부르지만 원래는 영구암이었다. 영구암으로 불린 연유는 암자가 들어선 자리의 지형에서 비롯되었다. 절에서 금오산에 이르는 이 일대의 바위들에는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줄무늬가 드러나 있다. 암자가 들어선 자리는 거북이 등이고 암자 뒤의 바위들은 책 무더기에 해당하고 임포마을 쪽은 거북이 머리처럼 보인다. 이 형세는 거북이가 불경을 등에 지고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바라보자'라는 뜻의 향일암이라 강제로 부르게 하여 널리 쓰였다고 한다. 또는 망망대해의 바다 위에 떠오르는 해돋이가 장관이라 그렇게 불렸다고도 한다. 아무래도 영구암이라고 다시 부르는 게 지형상이나 역사적으로도 올바른 게 아닌가 싶다.


 

영구암 앞은 섬이 많은 남해에서 쉬이 볼 수 없는 망망대해이다. 막힘없이 끝없이 펼쳐진 깊은 바다를 응시하고 있노라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절로 이르게 된다. 수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영구암은 일출뿐만 아니라 일몰 또한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우뭇가사리를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

임포 마을 전경(거북의 머리에 해당된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