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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해인사 암자 1번지, ‘원당암’




 

해인사 암자 1번지, ‘원당암’

-가야산 제일의 전망대


 

 분주한 해인사 일주문에서 왼쪽 산길로 접어들면 홍제암이 나오고 그 길 끝에 원당암이 있다. 원당암은 ‘해인사 일번지’같은 상징적인 암자이다.


 

 신라 애장왕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게 되자 부처의 가호로 여겨 순응, 이정 두 대사의 발원에 따라 해인사를 창건하게 된다. 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들어와 불사를 독려하면서 국정을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원당암이다.


 

 원당암은 서라벌의 북쪽에 있는 궁궐이라 하여 북궁으로도 불렸으며 진성여왕 시대부터 신라왕실의 원당이 되어 왔기 때문에 원당암으로 부른 것이다.


보물 제518호인 다층석탑과 석등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고적했던 암자는 혜암스님이 머문 후부터 활기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혜암스님은 성철스님 열반 이후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방장을 역임한 분이다. 스님은 하루 한 끼만 먹는 ‘오후불식午後不食’ 정진과 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는 ‘장좌불와長座不臥 수행을 수 십 년 동안 계속하셨던 분이었다.


 

그는 음식과 잠으로부터는 완전히 해탈한 삶을 살았다. 스님은 늘 제자들에게 한 벌의 옷과 하나의 밥그릇을 가지고 청빈하게 살아갈 것과 공부하다 죽을 것 등 다섯 가지 계행을 강조하였다.


 

스님이 월정사에서 수행할 당시 손에 작대기 하나를 들고 월정사와 적멸보궁을 오가며 수행한 일은 너무나 유명하다. 6개월 동안을 불도 때지 않고 물과 잣나무 가루만 먹으며 서서 수행하였다. 공양을 비롯하여 모든 일을 서서 처리하였다고 한다.

 원당암에서는 가야산 정상의 묘한 모습과 장쾌한 가야산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스님이 주석하였던 미소굴 옆에는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스님의 생전 가르침이 나무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원당암에서는 스님들과 같이 일반인들도 여름과 겨울에 안거安倨에 들어간다고 한다. 
 

 원당암 운봉교에 오르면 해인사의 큰법당과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각 등 해인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혜암스님이 달마선원을 세워 재가불자在家佛者들도 출가승려와 같이 참선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당암은 우리나라에서 재가불자들의 선방이 유일하게 개설된 산중 암자인 셈이다.


 

 미소굴 옆의 층계를 오르면 운봉교이다. 이곳에 서면 가야산 정상이 신묘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해인사 큰 법당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 등 해인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히 가야산 제일의 전망대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원당암은 해인사 일주문에서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 낮에는 찾는 이들이 많아 번잡하다. 아침 이른 시간이나 해질녘에 가면 암자를 거닐기에 한적하니 좋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