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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노무현님을 추모하는 슬픈 여행


 어두운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났습니다. 이틀동안 어떻게 보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분노를 삼키는 일 뿐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의 죽음을 난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토요일 오전 10시 40분경 친구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날라 왔습니다. "참으로 충격이구만." 그 의미를 몰라 친구에게 무슨 일 있나보다하고 바쁜 일로 인해 가볍게 넘겼습니다.

 아내가 하는 일을 도우러 후배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렀다 우연히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 어, 이게". "몰랐습니까?" 당황하는 나를 보며 후배가 되물었습니다. "난 알고 계시는 줄 알고 말씀을 안드렸더니만",  "......"

 어떻게 집에 왔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부랴부랴 일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떨리는 손으로 TV를 켰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TV안이라도 들어가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저녁에 동문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행사 준비로 모임을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라 슬픔을 묻어두고 나갔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간단한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이건 아니다. 해도해도 너무 했다." 내가 사는 곳이 경남이지만 이번 사건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모두들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故 노무현님을 추모하였습니다.

 술자리를 파하고 편의점에서 향을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아내에게 부탁하여 분향을 할 수 있도록 간단한 상을 차렸습니다. "담배 있느냐?" 마지막 그 말이 너무 서러워 담배 한 개비도 올렸습니다. 서럽게 울다 동이 트서야 쓰러졌습니다.

 그분을 기억해 봅니다. 저는 386도, 노사모도 아닙니다. 80년대의 끝자락인 90년대 초 대학에 들어왔습니다. 평범한 대학 새내기였던 나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같은 학번이었던 강경대군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죽음을 당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이후 나의 삶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후 남들보다 늦게 군에 입대한 저는 서울에서 군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해 겨울 전두환이 잡혀 가고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저도 'ㅇㅇ수산'이라고 적힌 기무부대의 지하실로 끌려 갔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십여일 남짓 조사를 마치고 군교도소의 어두운 독방에서 그해 겨울을 넘겼습니다. 정신마저 몸을 떠나는 고통 속에서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두 해의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고향에서 몸을 추스린 후 복학을 하였습니다.

 사회활동을 권하는 주위의 요구도 있었지만 저는 그저 평범한 삶을 택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민주화도 되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면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정치에 뛰어드는 386들과 그들의 오류를 보며 착잡한 심정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후 노무현님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전두환이 잡혀가던 해에 저도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두려웠지만 청문회에서 당당했던 님의 모습에 나약한 자신을 다잡았습니다.
 
 노무현님의 5년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생활인이였던 저는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진보 성향이든, 보수 성향을 가진 지인들도 모두 그를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아니다라고 어줍잖게 전공을 했던 역사적인 시각으로 반박도 하였지만 그후 저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에 대한 비판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한 포퓰리즘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퇴임 후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그에게서 보았습니다. 옛날 전쟁에 임했던 로마장군들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 그런 평범한 모습을 그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았던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떠난 후 추모하는 열기가 대단합니다. 다만 저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이명박정부일까요. 검찰일까요. 언론일까요. 부분적으론 맞지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때 믿어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부인 핑계를 댄다고 모두들 손가락질 하였습니다.

 저는 무섭습니다. 집단체면 같은 것이 무섭습니다. 감정과 편견이 이성을 묻어버리는 현실이 무섭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마라" 그분이 마지막 남기신 말씀을 새겨듣고자 합니다. 그분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적인 분노보다는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평범한 저의 심정으로야 치솟는 분노를 어쩔 수 없지만 그분의 높고 넓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고자 합니다.

 살아 생전 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전 대통령 노무현님의 장례식까지 여행 관련 글은 쓰지 않을 것입니다.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