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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비오는 날의 보리밭 산책

 

비오는 날 맥주보리밭 산책



가뭄이 심하다 싶었더니 요즈음 비가 자주 내립니다.
백석의 싯구처럼 '......비 오듯 안개가 나리는 속에/안개같은 비가 나리는 속에.....' 
고향 인근의 보리밭을 찾았습니다.


어릴 적 보리밭에 대한 추억은 복잡합니다.
동네 총각이 이웃 동네의 어느 처자와
보리밭에서 진한 애정 행각을 벌였다는 소문이 바람결에 들리곤 하였지요.

춘궁기에 덜 익은 보리이삭을 삶아 허기를 채웠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보리 타작을 할 즈음이 가장 싫었습니다.
오뉴월 뙤얕볕이 내리쬐는 데다 보리이삭이 옷을 파고 들어오면
땀과 보리 지푸라기가 몸속에서 범벅이 되어 사람을 괴롭히곤 하였습니다.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보릿대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는 것이죠.


이곳의 보리밭은 맥주보리입니다.
호남지역에서는 쌀보리를, 제가 살던 영남지역에서는 주로 겉보리를 재배하였지요.


그러다 맥주보리라는 것이 동네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맥주를 만드는 보리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보리에 맥주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맥주보리를 재배하는 집의 아이들은
겉보리를 재배하는 농가의 아이들에게 은근히 자랑을 하곤 하였습니다.


맥주보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맥주를 판매하는 양조장이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왕 시대에 이미 여러 곳에 있었다 하니
맥주의 기원도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하류 지역에서 농경이 시작된 시점에 
맥주원료인 여섯줄보리와 에머소맥이 재배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3년 OB맥주의 전신인 소화기린맥주의 영등포공장이 설립되면서
제주도에 처음으로 맥주원료인 두줄보리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소량재배만 하여 수입에만 의존했던 맥주보리는
 1975년 이후가 되어서야 국내에서 활발하게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던 고향에도 80년대 초반이 되어 맥주보리를 재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겉보리에 비해 수익이 좋아 너도나도 맥주보리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족 수가 많아 보리가 주된 양식이 되는 가난한 농가는
맥주보리가 돈이 됨을 알면서도 당장의 생존을 위해 겉보리를 재배할 수 밖에 없는 아픔이 있었지요.
당시의 빈익빈, 부익부가 시골 농가에도 깊이 배여 있었습니다.


논두렁에서 캔 엄지손가락만한 달래

풍작이 들면 보리수매를 하는 날은 어른들이나 아이들에게 모두 신나는 날이었지요.
소가 끄는 리어카에 자루에 담은 보리를 가득 싣고 마을창고로 향합니다.
맥주보리는 낟알 입자의 크기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졌지요.
등급을 잘 받던 못 받던 아버지는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며 긴 노동의 피로함을 풀었지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굴뚝과자라는 긴 봉지가 수고의 대가로 주어지곤 했습니다.

노지 상추는 하우스 상추보다 그 맛이 훨씬 쌉싸래하며 고소하다.

비오는 날 옛 추억을 떠올리며 보리밭을 거닐어 보았습니다.
멀리 떠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여행도 즐겁지만 
때론 일상의 소소한 흔적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또 하나의 여행도 기쁨이 됩니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