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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남해 최고의 바다 산행길, 응봉산

남해 최고의 바다 산행길, 응봉산
- 앵강만과 다도해,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응봉산 산행


나비 모양의 섬, 남해섬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곳이 남면이다. 남면의 깊숙한 곳에 한적한 사촌마을이 있다. '아름다운 모래가 많다'하여 마을 이름이 사촌이다. 300여 년이 넘은 해송들이 해안 모래밭을 감싸고 있는 바람마저 잠든 평온한 마을이다.

사촌마을

사촌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선구마을이다. 원래 마을 이름은 '배가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하여 '배구미' 라 하였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와 광양만으로 드나드는 큰 배들, 낚시를 하는 작은 어선들이 마을 앞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다. 고구마를 다 캐낸 밭은 황토색을 발하여 안개 속의 바다 빛깔과 묘하게도 어울린다.



선구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 윗당산에서는 풍년을, 아래 당산에서는 풍어를 위한 제를 올린다. 그런 후 바닷가 몽돌밭에서 남편과 북편으로 나누어 고를 끼워서 줄긋기를 하여 이기는 쪽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선구줄긋기'를 한다. 뒤풀이로는 달집을 태우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액운을 태우며 마당놀이로 마무리 한다. '선구줄긋기'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선구마을

이번 산행은 선구마을 당산나무에서 시작하였다. 남해 토박이 분이 매봉산과 설흘산의 풍광이 제일이라며 오늘의 산행지를 추천하였다. 일행들과 충무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산을 올랐다. 초입의 산길은 여느 야산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마에 땀이 채 맺히기도 전에 탄성이 절로 났다.


첫 너럭바위에서 시작된 바다 산행길은 등산의 끝까지 바다와 함께 하는 길이었다. 산능선을 타고 오르는 암릉 산행이지만 그다지 가파르지도 힘든 코스도 아니었다. 아름다운 해변 마을 사촌, 뾰족 솟은 시리봉의 기암, 계단식 논의 변주 운암 마을, 남해 바다를 한가로이 오가는 어선들, 벼랑 끝에서 위태위태하게 바람에 몸을 맡긴 억새, 어디를 둘러 봐도 절경 아닌 곳이 없다.

임포, 운암마을

멀리 계단식 논이 정겨운 임포, 운암마을이 보인다. 운암마을에는 최씨 불망비가 있다. 예전 공씨에게 시집온 최씨가 남편을 잃고 유복자를 낳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율곡 마을의 홀아비가 최씨를 보쌈해 갔으나 최씨는 도망쳐 아이가 있는 운암마을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그후 최씨는 아이를 잘 길러 며느리를 보고 이후 자손들이 번창하여 공씨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후손들이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홀로 자식을 키워 온 최씨의 자식 사랑을 기려 불망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처럼 남해섬의 마을들은 갖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마을 이름도 예쁠 뿐더러 예전에 썼던 순우리말 이름을 다시 찾으려는 노력들이 대단하다. 
 

목조계단을 지나니 두번 째 너럭바위가 나온다. 매봉산과 설흘산의 암봉들이 줄지어 있고, 남해섬의 북쪽만 제외하고 삼면의 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바위산 능선을 타고 가는 산행길이라 바람이 불 때면 아찔하지만 그칠 게 없는 조망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너럭바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였다.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쉬는 와중에도 계속된다. "금산이 유명세가 있고, 망운산도 조망이 좋지만,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내가 말했더니 일행 중 한 명이 우스갯소리로 답한다. "금산은 그래도 비단을 두른 산인데....."


나는 사실 금산과 망운산을 수어 번 올랐다. 금산에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르면서도 오르는 동안은 바다를 볼 수 없다. 쌍홍문을 지나 보리암에 서야 비로소 기암괴석인 금산의 위용과 망망대해의 남해 바다를 볼 수 있다. 망운산은 호젓한 산길이 좋고 노을과 일몰이 좋다. 멀리 보이는 육지의 해안선과 남해 북단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곳 매(응)봉산은 산행 처음부터 아름다운 바다와 기암과 함께 하는 산행이니 세 곳의 순위를 매길 수는 없지만 이 곳의 매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설흘산

응봉산이 가까워지자 매 한 마리가 산자락을 휘돌고 있었다. 산봉우리의 모양도 매부리처럼 생겼지만 실제 매가 있는 것으로 봐서 매 응자를 써서 응봉산인가 보다. 해발 472m 인 정산에 이르니 산꾼이 직접 담은 막걸리를 팔고 있었다.


막걸리 한 잔을 들며 산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주 보이는 설흘산으로 하산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육조바위로 내려갈지를 물었다. 가천다랭이마을과 앵강만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니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기 때문이다. 설흘산도 좋겠지만 사진 찍기에는 아무래도 육조바위로 하산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는 산꾼의 추천에 일행은 육조바위를 택하였다.


여섯 개의 봉우리로 된 육조바위가 앵강만 위를 우뚝 솟아 있다. 층층이 쌓인 가천의 다랭이가 바다로 점점 빠져드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가천다랭이마을과 육조바위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득히 보인다. 사진을 찍느라 바위 봉우리를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어느덧 체력이 고갈되었다. 아니 멋진 풍경에 눈마저 멀 정도였다.  세 시간이면 족한 아름다운 산행은 가천다랭이마을에서 끝이 났다. 아름다움은 함께 하자. 오랫만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한 즐거운 산행이었다.

가천다랭이 마을

이날 안개가 유독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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