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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하늘에 닿은 모산재, 황금빛으로 물들다



하늘에 닿은 모산재, 황금빛으로 물들다

2주일 만에 다시 모산재를 찾았습니다. 황매산이 여행자에게 어머니 같은 산이라면 모산재는 맏형 같은 산입니다. 언제나 푸근한 황매산과는 달리 매섭다가도 때론 살뜰한 풍경 한 자락 내어주는 산이 모산재입니다.

경남도민일보와 합천군의 지원으로 지난 29, 30일 합천에 다녀왔습니다. 합천이 고향이어서 이번 투어에는 꼭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이틀 동안 대장경 축제장과 해인사, 홍류동 계곡 소리길, 합천영상테마파크, 영암사지와 모산재 등을 들렀습니다. 전체 23명의 블로거가 참여했는데, 이튿날 합천 구석구석 탐방에서 모산재와 영암사지는 모두 8명이 등반을 했습니다.


첫날 해인사에서는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이튿날이 되자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 되었습니다. 산행은 황매산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영암사지에서 출발하는 것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무리가 따르는 일정이어서 부득불 황매산에서 영암사지로 내려가는 길로 잡았습니다.

황매평원과 황매산

주차장에 내리니 바람 한 번 서늘했습니다. 각종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나왔던 곳이 이곳 황매평원입니다. 사극에서 초원의 주요 전투 장면이나 말 달리는 장면은 대개 이곳에서 촬영되었을 정도입니다. 인근에 합천영상테마파크가 있어 촬영지로 더욱 이름나 있습니다.

초원과 철쭉군락지를 지나다

예전 이곳은 목장지대였습니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이 이국적이었지만 한편으론 황매산 계곡이 심하게 오염되는 결과도 초래했습니다. 지금은 목장이 없어지고 능선 너머의 철쭉군락지가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흔히 산철쭉이라고 하는 개꽃입니다. 그런데 최근 공원을 조성하면서 철쭉을 심어 놓았더군요. 참! 고의가 아니라면 무지에서 비롯된 일일 터인데, 무지 또한 죄가 되는 경우가 이렇습니다.

모산재 돛대바위와 철계단

황매산에서 모산재로 가는 길은 아주 평탄합니다. 능선 따라 걷는 길이라 풍광 또한 시원합니다. 눈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탁 트인 전망은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합니다. 첩첩 산중이란 말이 실감나는 곳이지요. 황매평원의 잘 관리된 철쭉과는 달리 모산재가 가까워질수록 자연 그대로의 철쭉군락지를 볼 수 있습니다.

돛대바위와 다랭이논

모산재 정상에 오르기 직전 약간의 비탈이 나옵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려는 순간 어느새 황매산성 터가 보이고 모산재 정상이 나타납니다. 해발 767m 모산재 정상. 하나의 거대한 암반 덩어리가 산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이고 바위의 형상들이 기기묘묘합니다. 그 아찔한 벼랑에 손발이 떨리고 바람이 빚은 바위조각에 가슴이 떨립니다.


하늘에 맞닿은 모산재는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하늘 아래에 산이 있고, 그 아래에 들판이 있게 마련인데, 오늘은 하늘도, 산도, 들도 그저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의미가, '아름답다'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말로 매듭이 지어질 뿐입니다.


층층 다랭이논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황홀한 단풍보다 황금빛 다랭이논은 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합작품이 바로 가을 다랭이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늘이 허락해준 땅을 층층 쌓아 구불구불 논두렁을 만들고 다시 하늘에게 생명을 의탁한 것이 다랭이논입니다.

복치동(복암)마을과 다랭이논. 복치동 뒤 산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마을이 여행자의 고향이다

모산재 인근에는 복치동, 덕만, 동곡, 대기, 목곡 등의 산마을이 있습니다. 명나라에서 귀화한 이가 살았다는 곳이 복치동이고 이곳에서 다랭이논은 절정을 이룹니다. 멀리 돛대바위가 보입니다. 마치 배의 돛대처럼 솟아 있어 거대한 배, 모산재가 항해하는 것 같습니다.

모산재 바위능선

돛대바위는 어느 곳에서 봐도 눈에 확 띕니다. 그만큼 모산재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돛대바위 아래는 족히 200m는 됨직한 바위절벽입니다. 어릴 적 이곳에 오면 돛대바위 옆으로 기어가서 바위에 엎드려 겁에 질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아이들끼리 하는 일종의 담력놀이였던 셈이지요.


정상에서 영암사지로 길을 잡으면 숲길이 잠시 나옵니다. 암반 덩어리인 모산재 능선에서 아주 잠시 만날 수 있는 숲길이지요. 어느 장인이 깎은 장승이 눈길을 끕니다. 뿌리가 박힌 채 서 있는 나무에다 그대로 장승을 새겼습니다. 장인의 남다른 시선에 자꾸 장승을 돌아보게 됩니다.

국사당과 순결바위 쪽 모산재 바위능선

능선에서 본격적인 내리막이 시작되기 전에 무지개 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조선 제일의 명당이라고 전해지지만 왜 그런 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예전에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디딜방아를 둘러메고 이곳에 와서 묘를 파내곤 했습니다. 이곳에 묘를 쓰면 가뭄이 온다는 이야기였지요. 지금도 묘를 쓰지 못하도록 마을 사람들이 파낸 웅덩이가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철계단이 놓인 지금은 모산재 등반이 수월한 편입니다. 물론 땀 한바가지는 흘려야 하지만요. 철계단이 없던 시절엔 바위벼랑에 있는 소나무와 이끼 등을 잡고 올랐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등산화도 아닌 고무신을 신고 풀쩍풀쩍 산을 잘도 올랐었습니다.

모산재에 서면 왼쪽으로 허굴산과 악견산, 오른쪽으로 의령 자굴산이 보인다

2시간 30여 분이 지나서 영암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전체 일정을 감안하다 보니 일행을 재촉해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암사지는 가을이 한창이었습니다. 보수 공사로 어수선한 영암사지는 다음에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고 삼가로 향했습니다.

영암사지

모산재 풍경 사진 보기
영암사지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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