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 리어카 정말 고맙습니다”
-종묘광장공원에서 만난 박원순 시장과 리어카 할아버지
지난 20일 한양에 갔다. 도성은 역시나 번잡한 곳, 시골여행자에겐 낯선 세계다. 늘 그렇지만 서울에 가면 볼일만 보고 냉큼 내려와 버린다. 서울사람들이 들으면 우스울 얘기지만 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늘 안쓰럽고 존경스럽다. 그 땅 밑으로 가는 지하철하며 매캐한 공기하며 콩나물시루 같은 그 번잡한 거리하며 도무지 정이 안 가는 도시다. 난 역시 어쩔 수 없는 촌놈인가 보다.
종로3가에 내려 종묘 앞 광장공원을 지나치게 되었다. 엄청 추운 날씨인데도 수백 명의 노인 분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바둑이며 장기를 두거나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 또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다. 노인 복지가 참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쑥 내밀었더니 누군가 소리쳤다.
“박원순 시장이다. 시장님이야!”
사람들은 삽시간에 그를 둘러쌌고 여행자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뒤늦게야 박원순 시장을 무리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바둑을 두며 자신의 일상을 즐겼고, 어떤 이들은 시장 주위를 따라 다니며 환호를 질렀고, 또 어떤 이들은 큰소리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외쳤다.
잠시 후 박원순 시장은 걸음을 멈추더니 공원에 모인 노인 분들과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시장은 귀담아들었다. 수행원들은 한 자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받아 적고 있었다.
간혹 바로 해결이 가능한 것은 수행원들에게 실무관계를 물어보고 즉석에서 지시하고 해결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날의 가장 큰 수혜자는 조범장(71) 할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조범장 할아버지가 시장에게 요청한 건 리어카였다. 폐지를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조 할아버지는 얼마 전 오래된 리어카가 아예 박살이 나서 더 이상 폐지를 주울 수가 없어 생계가 막막하다고 했다.
조범장 할아버지의 고충을 듣고 있는 박원순 시장
시장은 할아버지에게 리어카의 가격을 물었고 30만 원이라는 말에 보좌진에게 사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보좌진이 끄덕이자 시장은 할아버지에게 겨울을 잘 나시라고 당부했다.
할아버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을 원하는 여행자에게도 기분 좋게 포즈를...
시장에게 리어카를 약속받은 조범장 할아버지
덤으로 시장이 준 선물도 한 상자 받았다. 연세를 묻자 일흔 하나인데, 주민번호 상으론 43년생이라고 말했던 조 할아버지는 “이런 고마운 일이 있나. 이젠 살았어. 시장님, 우리 시장님!”을 중얼거리며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박원순 시장이 골목으로 사라지자 노인 분들은 다시 삼삼오오로 모여 한담을 나누고 장기를 두거나 혹은 바둑을 두며 혹독한 겨울을 잊으려 했다. 매서운 북풍이 불어왔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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