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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길 위의 사람들

영화 철도원이 떠오르는 횡천역 명예역장을 만나다

 

 

 

 

영화 <철도원>이 떠오르는 경전선 횡천역 명예역장

 

 

경전선 순천행 기차 2호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찰나, 1초의 순간 그도 나를 훔쳐봤고 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데 그렇다고 해서 아는 척은 할 수 없었다. 누굴까? 궁금히 여기며 예약된 자리를 찾아 앉았다.

 

횡천역 정용태 명예역장

 

기차가 횡천역에 도착하자 그도 내렸다. 지난번에 통화했던 그 역장이 맞을까, 하고 있는데 마침 그가 아는 체를 먼저 했다.

 

“김 선생님 되시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그가 다가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와는 달리 그는 생각보다 젊었다. 동그란 얼굴형에 귀여운 상을 가진 그는 한눈에 보아도 맑아보였다.

 

경전선 노선도와 아래의 사진들은 동호회에서 기증했다

 

정용태(29) 횡천역 명예역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서울에 사는 그와 만나게 된 건 코레일을 통해서다. 명예역장과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여행자의 요청에 코레일에서는 정용태 역장을 소개해주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그는 진주선이 복선화되면서 기차 시간표가 바뀌어 마침 11월 초에 횡천역에 내려올 계획이 있다고 했다. 망설일 필요 없이 한 번 만자자고 하니 흔쾌히 응했다.

 

정용태 명예역장은 원래 수원이 고향이다. 하동 옥종면이 아버지의 고향이라 어릴 적 다솔사역 인근에서 놀았던 추억이 횡천역의 명예역장을 신청하게 된 동기였단다. 1995년 여름 기차표를 줍는 등 어릴 적 뛰어놀던 다솔사역의 역사가 없어진 기억이 아쉬워 간이역을 덜 외롭게 떠나보내려 명예역장을 신청했단다. 어느 날 다솔사의 역 명판이 사라진 걸 알고 사방에 수소문했더니 다행히도 진주역에서 수리를 하고 있더란다.

 

 

횡천역은 2009년 9월 15일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는 무배치 간이역이 되기 전만 해도 3~4명의 역무원이 교대로 근무했다. 지금은 명예역장 정용태 씨가 한 달에 한두 번 다녀가는 한산한 간이역이 되었다.

 

                                  정용태 명예역장이 수집한 옛 기차표

 

그는 현재 철도 동호회 Rail+의 동호회원이다. 동호회에서 만든 경전선 노선도는 KTX가 들어오고 변화가 생길 때마다 지우는 게 아니라 회색으로 색상을 조절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이곳 횡천역에 오면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스탬프를 손보는 것이다. 도난 방지를 위해 단단히 고정된 스탬프는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도장이다. 고무도장은 수원에 하나 더 있는데 다 닳으면 교체를 하기 위해서다. 기름칠을 하고 먼지를 털어내고 이 작은 기계 하나에 그가 쏟는 애정은 각별했다.

 

다음에 그가 한 일은 얼마 전 진주선이 복선화되면서 바뀐 기차 시간표를 수정하는 것이다. 2010년 4월에 제작을 시작해 5~6개월 만에 완성한 이 기계는 번개가 쳐도 끄떡없단다. 정전 대비, 데이터 보관, 보호 장치, 자체 배터리 등 단순하게 보이는 이 기계는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장비다. 이 기계도 동호회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횡천역 내에는 철도 동호회에서 기증한 것들이 제법 있다.

 

단단히 만든 스탬프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정용태 씨는 공식적으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횡천역 명예역장이었다. 당시에는 승차 할인권 30~40장이 주어졌고 제복까지 있었다고 한다. 물론 봉사가 기본이었다. 부전역에서 횡천역 유물을 전시도 하고 북천역 코스모스 축제도 1~2주 정도 지원을 나갔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40여 명의 명예역장이 있었다. 무료봉사의 의미가 강했던 명예역장은 공식적으로 2011년에 끝났고 2012년에는 임대를 통한 명예역장 제도가 있는데 그마저도 흐지부지되는 모양이다. 경전선만 해도 평촌역, 갈촌역, 낙동강역, 수영역, 완사역 등에 명예역장이 있었다고 한다. 전라도 방면은 교류가 없어 잘 모르겠단다.

 

횡천역도 임대를 몇 번 시도했다고 한다. 만약 임대가 되지 않는다면 계속 활동하고 싶은데 횡천역의 존재가 깔끔히 정리된다면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다.

 

기차 시간을 조정하는 정용태 명예역장. 이 기계 역시 철도동호회에서 만들어 기증했다.

 

횡천역에는 다른 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 있었다. ‘피난선’이었다. 예전 제동력이 낮은 기차가 다니던 시절, 양보역에서 횡천역으로 들어오는 철로가 워낙 경사가 심해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기차가 역사로 바로 진입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700m의 피난선이 설치되었다. 기차 한 대가 긴급하게 올라설 수 있도록 산 중턱까지 철로가 이어졌다. 피난선은 몇 번 사용되었다가 기관차의 성능이 향상되어 제동력이 좋아지자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 특이한 풍경도 2010년 5월에 철거되면서 사라졌다. 피난선은 전국에 4~5 군데 있었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철로에 쓰는 돌도 달랐다. 예전에는 주로 강자갈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깬 돌을 사용하고 있었다. 선로가 저중량에서 고중량으로 바뀌면서 생긴 것이다. 횡천역은 또한 2, 3년마다 한 번씩 신문에 나기도 한다. 장마기간이면 상습 침수구역이기 때문이다.

 

피난선이 철거된 자리

 

옛 피난선 사진(횡천역내 임병국 사진)

 

하동군 횡천면에 있는 횡천역은 양보역과 하동역 사이에 있다. 1967년 10월 5일 역사를 착공했으며 이듬해인 1968년 2월 29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했다. 1968년 2월 7일 순천~진주 간 경전선의 개통식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횡천역의 역사는 순천 진주 간 노선이 개통되면서 지어져 처음에는 건물 모양이 같았다가 지역에 따라 편의대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지금 역사 내에 화장실이 있지만 예전에는 역사 밖에 별도로 있었단다.

 

 

예전 이곳 주민들이 나무를 가져와 직원들과 함께 심곤 했는데 지금도 승객 중 자신이 심은 나무라고 옛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단다. 2011년에는 국화축제를 열기도 했고 해바라기도 심고 나무를 손질하기도 했었는데, 하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어둠이 내렸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나타났다.

 

“이곳엔 별이 엄청 많아요. 밤에 승강장으로 나가면 하늘은 온통 별빛이지요. 빌딩도 없고, 70, 80년대 예전 모습 그대로 간직한 이곳... 조용해서 너무 좋아요. 그래서 이곳을 계속 찾게 되는 지도 모르나 봅니다.”

 

기차 도착이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역내의 안내방송과 벨 알림은 하동역에서 제어된다.

 

 

횡천역도 지금 한창 공사 중인 광양 진주 간 철로가 복선화되면 어떤 운명이 될지 모르겠다. 장소를 옮겨 간이역 형태로 남는다고도 하고 아예 기차역이 사라진다고도 한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자 멀리 기차 불빛이 들어왔다.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끝까지 손을 흔들었고 나는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