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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기행

하동 평사리의 깊어가는 가을 풍경

 

 

 

 

하동 평사리의 깊어가는 가을 풍경

 

 

한산사를 내려와 최참판댁으로 향했다. 허구가 현실이 된 평사리엔 최참판댁과 용이네 집, 칠성이네 집, 김훈장댁... 소설 <토지>의 마을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작은 밭뙈기라도 있을라치면 어른 주먹만 한 악양의 명물 대봉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풍경에 가을이 깊어 감을 알겠다.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비탈길을 걸어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짐이라도 들어줄 요량이었으로 말씀을 드렸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신다. 유모차 모양의 손수레가 할머니의 지팡이 노릇을 해서 그마저도 없으면 걸음을 옮긴 재간이 없어서다.

 

 

관광객들이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 반들반들해진 산비탈 밭에도 가을일이 한창이다. 농부들은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잠시의 짬이라도 부지런히 놀려야 한다.

 

 

조붓조붓한 돌담 너머의 초가에는 가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부지런히 따서 말린 옥수수며, 수수며, 고추 따위가 가을 햇볕을 바짝 말라가고 있다.

 

 

초가 툇마루에는 마을 사람 몇이 모여 대나무 바구니를 엮고 있다. 예전 장이 설 때면 이 또한 심심찮은 벌이가 되었겠지만 지금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소용이다.

 

 

여름 내내 잘 버텨온 호박은 다 늙어 지붕에 매달려 있기도 힘겹다. 제풀에 떨어지기 전에 바지런한 농부의 손에 따져 바람 자는 골방을 차지할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황금빛의 볏짚으로 지붕은 새로 단장을 할 것이다.

 

 

그때는 꽃도 지고, 잎도 떨어지겠지만 추운 겨울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질 터, 아무런 걱정이 없다.

 

 

최참판댁 별당채에선 별당아씬 간 데 없고 난데없이 가야금 소리가 들린다.

 

 

최참판댁 사랑채엔 최치수가 아닌 명예참판이 글을 읽고 있다.

 

 

그 깊고 고요한 글 읽는 모습에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이다.

 

 

사랑채 누마루에 서니 너른 악양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지리산 삼신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시루봉 인근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악양 들판을 에워싸고 그 너머로 섬진강이 흐른다.

 

 

마을로 나왔다.

 

 

역시나 붉은 대봉감, 아직 지지 않은 늙은 호박꽃이 따사로운 가을 햇볕을 쬐고 있다.

 

 

"오늘 아니면 없어."

밤을 팔던 할머니는 다음에 사겠다는 여행자의 말이 못내 아쉽고 서운한 모양이다. 배낭에 여유를 두지 못한 게 못내 죄스럽다.

 

 

관광지가 된 평사리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지붕 위에는 토란대가 토란토란 익어가고 사다리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마을 아낙의 발길은 따사롭기만 하다.

 

 

늘 그렇듯이 사람이 몰리는 건 최참판댁 주위뿐이다.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곳도 여느 시골처럼 한갓지다.

 

 

상평, 하평 마을의 오롯한 돌담길을 걸었다. 어느 시인은 이 돌담길을 ‘어머니 눈웃음 닮은 돌각담 길 조붓조붓 나 있다’고 했다.

 

 

‘끊어진 세상의 길을 잇는 저렇게 예쁜 돌각담’에 오늘은 앵두꽃 대신 노란 탱자가 알알이 불을 밝힌다. 가을햇볕 한 줌 돌각담에 들어섰다.

 

3시 20분, 봉대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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