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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味학

'이 냉면 기가 막혀' 겨울에 제맛이었다는 진주냉면

 

 

 

‘이 냉면 기가 막혀’ 겨울에 제맛이었다는 진주냉면

- 조선의 2대 냉면 진주냉면의 맛

 

지난 주말 진주냉면집 ‘하연옥’을 찾았다. 예전 서부시장에 있을 때 간혹 들렀었는데 작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난 후부터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몇 번 가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지나치기만 했다. 이번에는 날씨도 제법 쌀쌀해져 손님들이 뜸하겠지 생각하며 찾았으나 역시나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이른 점심시간에 가서 10여 분을 기다린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이 식당은 ‘부산냉면’, ‘진주냉면’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가 2011년 5월에 ‘하연옥’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으로 옮겨왔다.

 

진주의 대표적인 음식을 들라면 단연 비빔밥과 냉면이다. 비빔밥은 전주비빔밥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최근의 일이고 그 역사와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비빔밥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00년대 말엽에 발간된 <시의전서>인데, ‘부븸밥’으로 표기하고 있다. 다만 육당 최남선은 <조선 상식>에서 지방마다 유명한 음식으로 전주의 콩나물과 진주의 비빔밥을 들고 있어 이때만 해도 진주의 비빔밥이 훨씬 유명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식당은 늘 만원이다. 여름이면 기다리는 건 예사고, 쌀쌀한 가을인데도 번호표를 뽑고 대기를 해야 할 정도다.

 

냉면 또한 지금이야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유명하지만 사실 예전에는 북에는 평양냉면, 남에는 진주냉면이었다. 오늘날 이름을 얻고 있는 함흥냉면은 그 역사를 쳐봐야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물냉면

 

북한에서 출간된 <조선의 민속전통(1994)>이란 책을 보면 ‘랭면 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진주냉면은 냉면의 본고장 북한에서도 인정하는 맛으로 진주 지방에서는 옛날 양반의 특식이자 기방의 야식으로 유명했다.

 

냉면에 나오는 육전은 별도로 판매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별미로 통한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메밀국수에 볶은 고기를 가늘게 썰어 넣어 배와 생강으로 맛을 여민 육수로 된 이른바 진주냉면이 구사마의 호물이었다. ‘이 냉면 기가 막혀.’ 구사마는 한꺼번에 두 그릇을 먹곤, ‘진주를 떠나면 영영 이 맛있는 냉면을 못 먹게 될 텐데...’ 하고 숙연히 한숨을 지었다.”

 

소설가 이병주의 <지리산>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본인 교사 ‘구사마’가 진주를 떠나면서 다시는 냉면을 못 먹게 되는 것을 한숨짓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진주냉면은 그 맛이 유명했다.

 

허영만의 식객에 소개된 진주냉면

 

조선시대 진주냉면은 화려했던 진주의 교방문화와 함께 전성기를 누렸다. 진주의 한량들이 기생들과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다 선주후면의 식사법에 따라 입가심으로 즐기던 고급 음식이 냉면이었다. 교방문화가 꽃폈던 진주의 ‘귀족냉면’ 이었던 셈이다. 당시는 냉면의 고명 또한 교방청 별식답게 전복, 해삼, 석이버섯 따위의 비싸고 귀한 재료가 올라갔는데 이후 냉면이 서민 음식이 되면서 소박해졌다.

 

예전의 나무전거리, 이곳에 진주냉면을 팔던 식당이 1960년대까지 7~8개가 성업 중이었다고 한다.

 

<한국향토전자문화대전>에 따르면 진주냉면은 중앙시장 대화재로 1960년대 중반에 진주지역에서 사라졌다가 1999년 진주냉면 원형을 중심으로 식생활문화연구가에 의해 재현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옥봉동을 중심으로 수정식당, 평화식당, 은하식당 등 7~8개 업소가 성업 중이었으며, 옛날에는 이러한 식당들이 하인을 두고 직접 배달을 하였다 한다.

 

 

진주냉면을 하던 식당들이 사라지고 그 맥이 끊겼는데 유일하게 서부시장에 자리 잡은 ‘부산식육식당’이 당시의 맛을 간신히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60여 년 전 진주의 나무전거리(지금의 중앙시장)에서 냉면장사를 시작했던 황덕이 할머니의 냉면집이었다. 이후 이 식당은 ‘부산냉면’, ‘진주냉면’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가 2011년 5월에 ‘하연옥’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으로 옮겨왔다. 허영만화백의 '식객'에도 등장하기도 했다.

 

▲ 육전은 냉면의 또 다른 별미다.

 

진주냉면은 고명과 육수가 다른 냉면과 확연히 다르다. 다른 재료들은 일반적인 냉면과 차이가 없으나 고명으로 올린 두툼한 육전이 별미다. 계란을 입힌 소고기를 기름에 부쳐 썰어낸 육전은 쫄깃한 면과 묘한 조화를 이뤄 진주냉면만의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다.

 

▲ 물냉면

 

육수는 멸치, 홍합, 다시마, 소고기 사태를 주재료로 하여 만드는 데만 꼬박 2박 3일이 걸리며 이후 15일간의 저온 숙성으로 맛을 갈무리한다고 한다.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냉면 육수의 맛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해물 특유의 풍부한 향미와 감칠맛 나는 풍미는 두고두고 입맛을 당기게 만든다. 특히 벌겋게 달궈진 쇠막대기를 사용하여 육수의 잡내를 없애는 방법은 진주냉면의 숨은 비법이다. 면은 메밀가루에 고구마전분을 섞어 면발을 뽑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 진주냉면은 메밀가루에 고구마전분을 섞어 면발을 뽑아 쫄깃하다.

 

비빔냉면은 아주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매운 맛이라 젊은 층에 인기가 좋다.

 

▲ 고명과 지단이 만들어낸 색이 참으로 예쁘다. 비빔냉면과 함께 나오는 육수는 해물육수가 아닌 양지사태를 우린 고기육수다.

 

▲ 육전과 면, 야채를 같이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 난다.

 

근데 재미있는 사실은 예전에는 냉면이 겨울음식이었다는 데에 있다. 냉면에 관한 기록이 문헌에 보이는 건 19세기 중엽 무렵이다. <동국세시기>에는 냉면을 여름음식이 아닌 ‘겨울시식’으로 꼽고 있다는 점이다. 쌀쌀해진 요즈음 진정한 미식가라면 냉면 한 그릇 시원하게 들이키는 건 어떨까?

 

진주냉면집은 한식 세계화를 위한 음식으로도 인정받았다. 2008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한식요리대회에서 '대령숙수 전통음식상'을 받기도 했다.

 

☞ 진주냉면의 본점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다. 현재 장남인 하연규 씨는 ‘황덕이 진주냉면’을, 그의 남동생은 평거동 진주냉면들말점을, 여동생 하연옥 씨는 하연옥을, 그녀의 남편 정운서 씨는 진주시 하연옥 하대직영점을. 언니 하귀옥 씨는 하연옥 사천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연옥(055-746-0525) 본점은 경남 진주시 이현동 1191 이현웰가 앞에 있다.

 

점심 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은 계속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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