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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늘 버릇처럼 찾는 이곳!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늘 버릇처럼 찾는 이곳!

- 경남 함안의 무진정

 

함안에 오면 늘 버릇처럼 들르는 곳이 있다. 함안의 군청 소재지인 가야읍에서 67번 도로를 따라 함안면으로 가다보면 길옆으로 왕버들나무가 제법 우거진 큰 연못을 만나게 된다. 무진정이다. 무진정은 조삼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지만 연못은 그가 직접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안에는 남강을 따라 악양루, 와룡정, 합강정 등의 정자가 더러 있지만 자연에 있는 이들과는 달리 우리 선조들이 손수 만들고 즐긴 전통정원을 꼽으라면 칠원면의 무기연당과 이곳 무진정을 들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풍광 못지않게 자연을 닮은 정원을 즐기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부자쌍절각과 노비 대갑의 비

 

수십 그루의 왕버들에 둘러싸인 연못의 초입에서 부자쌍절각을 만나게 된다. 부자쌍절각은 어계 조려 선생의 6세손이자 이곳 정자의 주인 무진 조삼 선생의 증손인 조준남과 그의 아들 조계선의 효와 충을 기려 세운 전각이다. 부자쌍절각 옆에는 충노대갑지비(忠奴大甲之碑)라는 비가 있는데, 정유재란 때 전사한 주인 조계선을 따라 죽은 노비 대갑을 기려 세웠다. (관련 글: 왜 노비를 위해 비석을 세웠을까?)

 

영송루

 

무진정에 오르려면 길게 놓인 다리를 지나 영송루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어야 한다. 연못 가운데에 있는 이곳에서 주변 경치를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정자에 오르면 된다.

 

영송루

 

목백일홍으로 불리는 배롱나무가 붉게 피어 선경을 자아낸다. 배롱나무는 원래 이름이 '자미목'으로, 도교의 선계를 일컫는 ‘자미탄’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조들은 정자 주위에 배롱나무를 심어 자신만의 선계와 이상향을 추구하였다.

 

 

영송루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목을 보면 늘 올려다보는 습관이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를 보면 야릇한 흥분이 인다. 마치 오랜 시간이 하늘에 멈춰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고목을 보면 늘 여유롭고 느긋해진다.

 

 

이곳의 연못은 제법 너른 편이라 배를 띄우기에도 좋다. 마을에서 관리하는 듯한 뗏목이 있어 긴 장대로 옛 풍류를 흉내 내어 보지만 그 깊이야 따를 수 있겠는가. 다만, 즐거우면 그만인 것을....

 

 

연못가에 심은 왕버들나무가 흐느적거린다. 함안의 낙화놀이가 매년 초파일 이곳에서 벌어지는데, 물에 드리워진 수많은 버들가지가 푸른 불꽃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그 푸른 기운에 온갖 시름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무진정은 연못 한쪽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붉은 배롱꽃이 만발한 바윗길을 오르면 한여름의 더위조차 비켜선다. 정자와 연못을 잇는 작은 문인 '동정문'을 넘어서 정자에 올랐다.

 

동정문

 

무진정은 조삼 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명종 22년(1567)에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로, 그의 이름을 따 '무진정'이라 했다 지금의 건물은 1929년에 중건한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에 한 칸짜리 방이 있으나 온돌방이 아니라 마루방이다. 사방의 문이 모두 들어 올려 있어 주변 경치가 한눈에 시원스럽게 들어온다.


 

무진정

 

무진정

 

조삼 선생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의 손자다. 어계 선생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고향인 함안에 내려와 평생 은둔하며 살았다. 어계선생의 고택과 채미정, 서산서원은 인근의 군북면 원북리에 있다.

 

 

‘무진정’이라는 편액과 정기(亭記)는 주세붕이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운 주세붕은 이곳 함안 사람이다.

 

 

 

무진정 마루에 걸터앉았다. '동정문(動靜門)' 으로 들어오는 연못 풍경이 자못 조촐하고 여유롭다. 아이도 그걸 눈치 채고 사진에 담으려 애쓴다. 문이 창이 되고, 그 창에 한 폭의 그림이 담겼다.

 

 

☞ 무진정은 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다. 1976년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무진정 일대는 흔히 ‘이수정’으로도 불리는데 이 명칭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읍지의 효시인 ‘함주지’에 따르면 선비 한종유가 그의 시에서 관아의 객사였던 삼수정(三樹亭)을 일컬어 이수정(李樹亭)으로 읊고 있다고 했다. 이수정이 삼수정의 하나였는지, 아니면 삼수정을 이수정으로 잘못 표기하였는지는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아울러 무진정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있는 이름보다 지금은 실체가 없는 이수정으로 불리는 게 합리적인 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지적할 것은 무진정이 누가, 언제 지었느냐의 문제다. 함안군이나 안내문에는 조삼 선생이 직접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나 다른 자료에는 조삼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무진정을 지었을 때가 명종 22년(1567)이라면 1473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조삼 선생의 생몰연대와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 연못을 조삼 선생이 조성하고 정자는 그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생각된다.

 

정자의 건립 시기도 어떤 백과사전에는 명종 2년(1547)으로 기록한 곳도 있다. 문화재 정보가 이처럼 어지러우니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제대로 관리나 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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