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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백마강의 풍광, 이곳이 제일이더라




백마강을 바라보는 풍광, 이곳이 제일이더라

부여, 왠지 모를 스산함과 애잔함이 흐르는 곳이다. 600년이 넘는 백제의 역사에서 123년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부여에 이렇다 할 흔적들이 너무 적은 것에서 오는 소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도 쉼 없이 흐르고 있는 유장한 백마강에는 낙화암, 조룡대, 구드래 나루, 수북정이 있어 숱한 전설들을 말하고 있다.

백마강과 규암 나루

부여읍에서 백제대교를 건너면 수북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이 있다. 다리에서 보면 정자는 높은 바위벼랑 위에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자에 올랐다. 이끼가 잔뜩 낀 돌층계가 오히려 편안하다. 수북정은 조선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면서 지은 정자로 그의 호를 따서 이름 붙였다.

수북정

김흥국은 김장생, 신흠 등과 친했는데, 지금도 신흠이 쓴 팔경시판이 걸려 있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간략한 구성인데, 칸의 간격을 넓게 잡아 제법 널찍한 것이 시원하다. 정자의 마루가 다소 낮은 편이나 높은 벼랑 위에 있어 시야는 그칠 것이 없다.


이곳은 부여팔경 중의 하나다. 바로 아래로는 백마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 동으로는 부소산과 나성이 보인다. 백마강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 물이 많을 때에 마치 강물에 뜬 섬과 같다 하여 '뜬섬'이라 불리는 부산浮山도 지척에 있다

수북정에서 본 백제대교

다리를 건너면 부여 읍내로 곧장 이어진다. 강을 따라 나성의 흔적과 그 한쪽 숲속에 금강의 시인 신동엽 시비가 있다. 오늘은 수북정에 올라 백마강을 굽어보고 나성의 흔적을 따라 시인의 백제를 회상하는 여정이다.


정자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니 바로 아래가 규암나루이다. 한때 어패류의 집산지로 유명했던 이곳은 다리가 놓이면서 그 기능을 잃었다. 대신 유람선을 운행하고 있는데 잔잔한 물살에 몸을 맡겨 부여를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규암나루, 구드래 나루, 고란사 선착장까지 뱃길로 백제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수북정을 내려와 백제대교를 걸었다. 수북정 아래에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 이름은 규암이다. 규窺는 '엿보다'는 뜻인데 부여사람들이 '엿바위'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규암과 나루

이 규암에는 자온대라는 붉은 글씨가 굵게 새겨져 있었다. '자온대自溫臺', 저절로 따뜻해지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곳이 이렇게 불린 데에는 백제 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시대 왕이 왕흥사로 행차하는 일이 많았는데, 자주 이곳 규암나루를 건너야 했다.

규암과 수북정

왕흥사는 규암나루 건너에 있었는데 법왕 2년(600)부터 짓기 시작하여 무왕 35년(634)에 완공한 백제의 국찰이었다. 왕이 왕흥사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너 이 바위에서 잠시 쉬고 있으면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구들돌이라고도 불렸다. 이 전설에 따라 자온대라 불리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아첨하는 사람들이 왕이 이 바위에 오르기 전에 미리 바위를 데워 놓았던 것이라고도 한다. 이 큰 바위를 데웠다는 게 사실이라면 아첨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암벽의 붉은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한다.

자온대라고 적힌 규암

다리 위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다리 아래를 흐르는 백마강은 하류에 있는 강경으로 쉼 없이 흘러간다. 은빛으로 빛나던 강가 하얀 모래밭은 이제 옛 풍경이 되어 버렸다. 누런 황톳물이 구역질을 하며 꾸역꾸역 흘러가는 것이 오늘 백마강의 풍경이었다.

강 건너 강둑에는 옛 백제의 부여 나성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백제의 수도 사비를 지키는 외곽성이었던 나성은 8km에 달했다. 대부분 다 사라지고 신동엽 시비가 있는 이곳 강변에 강둑처럼 남아 있고, 능산리 고분군 인근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부여나성의 흔적

신동엽 시비는 여전히 말없이 호젓했다. 시인은 이곳 부여에서 태어났다. 60년대 김수영과 함께 한국문단을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백성의 시인이었다. 최루탄 날리던 대학시절의 어느 날 봄, 나는 교양학관에서 노교수가 낭송하는 <껍데기는 가라>를 듣고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안동의 선방에서 참선을 하며 긴 겨울을 보내던 어느 날, 지금은 아내가 된 그녀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신동엽의 시 한 편과 함께.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山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人情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신동엽의 시 <산에 언덕에>

신동엽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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