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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피서와 풍류를 한꺼번에 즐기는 동호정



 

그 천연함에 더위마저 물러서는 동호정


물이 푸르다 못해 검은 거연정의 깊은 소는 탁족을 즐기기에는 위험하다.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주위 경관에 세상의 시름을 잠시 놓아두면 그만인 곳이 거연정이다. 

거연정에서 나오면 땀 한 줄기 채 흘릴 시각도 없이 군자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나 지금이나 주위 민박집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아예 정자 위에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신다. 풍류는 간 데 없고 식도락으로만 치닫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사진이라도 남길까 했으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군자정은 담을 수 있겠으나 옛 선조들의 풍류를 사진에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어서였다.

 

계곡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동호정이 나온다.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에 가장 크고 화려한 정자이다. 사실 이곳 화림동은 ‘팔정팔담’으로 불리며 여덟 개의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연정, 동호정, 군자정만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경모정과 남천정도 있지만 이 두 정자는 근래에 지어 예스러운 맛이 없다.

 
동호정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정자 바로 옆에 있는 민박집 겸 음식점 건물이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인지 폐허가 되다시피 하고 한쪽에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노송에 둘러싸인 동호정을 오르자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나무층계이다. 통나무 두 개를 잇대어 비스듬히 세우고 도끼로 내리쳐서 홈을 만든 그 천연덕스러움에 빙그레 웃게 된다. 그 자연스러움은 암반 위에 턱하니 세운 기둥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나무의 멋을 자연스레 그대로 살린 1층 기둥은 꽤나 운치가 있다.







 

정자에 오르면 푸른 남계천과 수백 명은 족히 앉을 정도의 너럭바위인 차일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에 올라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곳 화림동 정자의 또 다른 매력이다.

 

징검다리로 계곡을 건너 차일암에 이른다. 길이가 60여 미터, 폭이 40여 미터에 달한다는 차일암은 계곡 한가운데에 섬처럼 솟아 있다. 암반 곳곳의 작은 웅덩이에는 물이 고여 있다. 이 웅덩이에 고인 물을 걷어내고 술 한 동이를 부어 옛사람들의 풍류를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은 여행자의 한낱 욕심에 지나지 않을까. 암반에 새겨진 금적암, 영가대 등의 글씨를 보니 옛사람들도 여행자의 생각과 별반 차이가 없었나보다.


사실 동호정은 차일암에서 봐야 제맛이다.  여행자는 흔히 말한다. 정자에서 풍광을 내려다보는 맛, 정자가 앉은 자리를 바라보는 맛, 정자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맛, 이 세 가지 맛이 잘 조화되어야 최고의 선경이라고. 


동호정을 보고 있자면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훈남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넉넉함에다 잘생긴 외모와 쭉 빠진 몸매를 가진 미남이다. 아무 옷이나 걸쳐도 빛이 나는 소박함까지 갖춘, 그런 매력적인 사람 말이다.


 

동호정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등에 업고 의주로 피난을 하여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 선생이 이곳에서 머물자 이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1890년경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를 따 동호정이라 하였다. 동호정은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에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이다.

 

최근 화림동 계곡에는 ‘선비문화 탐방로’가 만들어졌다. 거연정이나 동호정에서 보면 계곡 건너편에 보이는 숲길이 그것이다. 황암사에서 출발해 남천정과 동호정 등을 지나 봉전교에서 끝나는 전체 길이 6.2km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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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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