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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길 위의 사람들

한 예인의 너털웃음에 도자기마저 웃었다.



 

한 예인의 너털웃음에 도자기마저 웃었다.

 

여주 고달사지를 지나 산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즘골이라는 곳이 있다. 서울이 가까이 있어 제법 소란스러운 여주땅이지만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느릿한 일상이 있다. 장마 가운데 모가 쑥쑥 자라는 무논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하였다.

 

다음날은 흙가마에서 구운 도자기를 꺼내는 날이었다. 잠을 쫓으며 24시간동안 가마에 계속 장작을 지펴야 하는 긴 노동의 결과를 보는 날이었다. 물레질과 도자기 빚는 광경은 종종 봐왔지만 가마에서 완성된 도자기를 꺼내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가마 옆에서 지켜보았다. 가마는 아직도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최근 도자기도 편리성을 위해 가스가마에서 많이 구워내지만 아직도 전통 방식의 장작가마를 고집한다는 건 장인의 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일종의 자존심이다. 사실 가스불은 불 온도를 설정해두면 일정한 온도로 도자기를 편리하게 구워낼 수 있는 반면 장작가마는 가마 옆에서 24시간 동안 불을 지켜보며 조절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게다가 한 번 불을 땔 때마다 수십만 원 어치의 장작이 필요하다. 장인의 세심한 눈길과 장작의 자유로운 불길이 서로 잘 맞아야 제대로 된 도자기가 나오게 된다.

 

지우 김원주 화가가 가마에서 도자기를 하나 둘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1992년부터 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하였다. 부부화가인 그는 그림도 그리며 도자기도 굽는 화가이자 도예공이다. 경제관념은 빵점이라고 자타가 인정을 하지만 그림과 도예에 대한 열정만큼은 백점이다. 사그락사그락. 도기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낸다. “정말 잘 되었네요.” 아랫마을에 산다는 분이 도자기를 보고 말을 건넨다. 도자기를 빚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도자기를 많이 보아온 탓에 보는 눈은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24시간 동안 한숨의 잠도 자지 못하고 불을 때는 것에 비하면 가마에서 도자기를 꺼내는 일은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여행자가 보기에는 그것 또한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다. 가마에서 도자기를 꺼내느라 그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가마 여기저기에 흩어진 도자기를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지난한 일이었다. 한참을 살피던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자기를 보며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도자기도 덩달아 웃기 시작하였다. 긴 작업의 끝에 그와 그가 빚어낸 작품은 어느덧 하나가 된 것이다.


 “천령, 하나 골라 봐.”
“어유, 괜찮습니다. 팔고 나서 남는 것 있으면 하나 주십시오.”

그가 여행자에게 다기 하나를 골라 보라고 하였다. 사실 전날 밤에도 도자기를 구웠으니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내일 하나를 골라서 가져가라고 하였다. 꼭 하나 선물하고 싶었다고 하면서....

두어 번 사양을 했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골라보라니까.”

“에이, 정 그러시면 형님이 하나 골라 주시오.”

그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보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이리저리 다기를 살펴보더니 그중 한 놈을 골라 물을 담아 시험을 해본다. 그러기를 한참. 다관, 찻잔, 숙우 등을 챙겨 한지에 감싼 후 종이 박스에 담아 여행자에게 주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매번 얻어만 가는 아우가 야속도 하려니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었다.


며칠 후 전주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행여나 구겨질세라 똘똘 말은 물건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다포였다. 다구만 주고 덮을 수 있는 다포를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가 직접 그린 ‘차 향기 내리는 자리’ 다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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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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