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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비오는 날 간이역에서 - 원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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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하고도 달포나 지났을까. 기찻길 옆 정자, 채미정에 다녀 간지가. 봄기운에 온 몸이 해체되던 그날. 무슨 이유에선지 바로 옆 간이역인 원북역에는 가보질 못했었다. 언젠가 가야지 하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문득 원북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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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원북역은 밀양의 삼랑진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경전선의 간이역이다. 이 역은 철도공사의 계획으로 설립된 역이 아니라 주역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역문을 열었다. 역사는 이 동네사람인 박계도라는 분이 기증하였다고 한다. 역사 벽면에는 '기증 박계도'라고 쓰여진 대리석판이 붙여져 있고 역사 옆에는 박계도씨의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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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북역은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에 12회 정차한다. 역 건물은 나무판자를 덧댄 긴 의자와 소파 셋이 전부이다. 그나마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어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래도 열차 시간표가 건물 입구에 붙여져 있고 인근 군북역과 통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역을 이용하기에 큰 불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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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정을 지나자마자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원북역으로 향했다. 역에는 할머니 한 분이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자 카메라를 보고 아는 체를 하신다. "아따. 이 비오는 디 사진찍으러 왔나 보네. 엊그제에도 사람들이 떼지어 왔더니만. 비오는 디 고생하것어" 위로 겸 말을 건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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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흔다섯인 이순년 할머니다. 마침 오늘이 할머니 생신인데 창원에 있는 자식들이 오라고 해서 가신단다. "길도 멀고 안가도 되는디. 하도 오라삿서 안갈 수도 업고 해서 가는기라." 성가시다는 투로 말하면서도 자식에 대한 애정과 뿌듯함이 말씀 중에 묻어난다. 의자 위에는 자식들에게 줄 묵직한 짐바구니가 세 개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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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 있는 원북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기차가 언제 오느냐는 물음에 몇시냐고 반문하신다. 2시 46분이라고 하니 '어. 올때 다 되앗어. 쫌만 기다리면 와." 시골 사람 특유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제서야 나는 건물에 있는 열차 운행표를  보았다. 나는 시계를 보고 열차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한다. 할머니는 비가 내리는 들녘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여유롭게 기차를 기다린다. 시간에 쫓기는 요즈음 사람과 여유롭게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 누가 더 행복할까.
'느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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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멀리서 경적 소리가 울린다. 세 개나 되는 짐을 어떻게 기차에 싣느냐고 하니 승무원이 도와줄 때도 있다며 걱정말라는 시늉을 하신다. 할머니가 짐을 들고 일어섰다. 나도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우산을 들고 철로가로 나섰다. 기차가 멈추었다. 할머니 짐을 열차에 올려드리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고맙다는 말과 생신축하의 인사도 끝나기가 무섭게 기차는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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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떠나자 사위가 조용하다. 철로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 토닥토닥 거릴 뿐이었다. 우산을 쓴채 철로 위를 한없이 걸어 본다. 비가 와서 걱정이었는데. 이 긴 철로에 나 혼자 있으니 되려 평온하다. 날씨가 좋았다면 사진 찍는 이들로 인해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을 게 아닌가. 비 오는 날. 간이역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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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옛 정자 '채미정' 보러 가기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036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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