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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테마가 있는 여행

이색 화장실 다 모였다. 화장실로 떠나는 이색 여행



 

이색 화장실 다 모였다. 화장실로 떠나는 여행


 

 오늘날 화장실로 불리는 우리네의 뒷간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 우리의 전통 뒷간은 대개 똥을 직접 퍼내는 수거식(푸세식)이었다. 뒷간, 통시, 잿간, 정낭, 정방, 북수간, 해우소, 변소, 측간, 매화틀 등이 화장실의 다른 이름들이다. 수거식이면서 으슥한 뒤쪽에 있어 뒷간, 아궁이의 재를 이용하는 잿간. 절의 언덕배기 공간을 활용한 해우소, 인분을 먹는 돼지와 공존하는 통시, 북쪽에 있다 하여 북수간, 밀물을 이용한 측간 등이 있었다. 임금의 똥을 매화라 하고 그 변기를 매화틀이라고도 하였다. 우리네 전통 뒷간에서 나오는 똥은 주로 거름으로 재활용되었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 통풍이 잘 되게 하였으며, 쌀겨나 풀, 짚, 재 등을 이용하여 발효와 숙성을 시켜 농사에 알맞도록 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축의 먹이로도 사용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사라질 처지에 있는 '똥돼지'이다. 우리네 뒷간은 한마디로 생태적, 친환경적이다. '변소'가 일제시대 때 붙여진 용어이고, '화장실'은 서구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다양한 화장실의 모습을 통해 옛 것과 오늘날의 화장실, 지역마다의 특색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 제주도 흑돼지와 뒷간-제주도 민속촌박물관 사진 제공

 통시라고 하는 제주도 재래식 뒷간은 대개 지붕이 없다. 돼지우리와 통시 주위를 돌로 낮게 울타리를 둘러쌓는다. 돼지우리의 한 쪽에는 돌을 높이 쌓아 단을 만들어 그 위에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넓은 돌 두 개를 올려놓았다. 이곳에 사람이 올라 볼일을 보면 돼지가 그 아래로 왔다 갔다 하면서 똥을 집어 먹는다. 지금은 제주도 통시는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실제로 인분을 먹여서 키우는 똥돼지도 없다. 다만 민속촌 등에 가면 전시용으로 재래식 뒷간을 복원하여 돼지를 키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돼지 얼굴에 묻은 것은 인분이 아니라 쌀겨 등의 곡물이다.

# 지리산 마천면 도마마을 한평호씨댁 똥돼지 뒷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똥돼지를 볼 수 있는 곳이 지리산 마천면 일대이다. 여행자는 똥돼지가 있다는 지리산 산마을을 둘러보았으나 그것은 소문일 뿐 찾기가 어려웠다. 대여섯 마을을 헤매다가 도마마을에서 겨우 똥돼지와 뒷간을 찾을 수 있었다. 부엌 한쪽에 자리 잡은 뒷간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하였지만 볼일도 볼 수 있고 아직도 똥을 먹는 똥돼지가 있었다. 대가족인 예전에 비해 인분이 부족하다 보니 쌀겨나 음식찌꺼기를 먹이기도 한다. 그래도 일반사료를 먹이지 않는데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지리산에서 키우니 고기 맛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사료를 먹이는 일반돼지에 비해 육질이 쫄깃쫄깃하다고 한다. 이 똥돼지도 경제성이 없어 키우는 농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깝다.

 

# 문화재로 유일하게 등록된 선암사 해우소

 우리의 사찰 해우소 중 가장 으뜸은 단연 선암사 해우소이다. 유일하게 문화재로 등록된 아름다운 절집 뒷간이다. 해우소는 경사진 언덕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상, 하층의 2층으로 된 건물이다. 여느 사찰의 해우소보다 그 건축미가 단연 돋보인다. 정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옆에서 보면 팔자 모양이다. 바람을 막기 위한 풍판도 설치되어 있어 뒷간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문화재자료 제214호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선암사 경내에 있다. 이 해우소는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1920년대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 허물어져 가던 것을 원형 그대로 살려 근래에 복원을 하였다.


 

# 충주호 제천 정방사 해우소

 제천 정방사는 충주호가 한눈에 보이는 장쾌한 전망을 자랑한다. 이곳의 해우소는 벼랑 끝에 있어 전망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창문도 따로 내지 않고 자연을 해우소로 끌어들이기 위해 벽면만 뚫어 놓았다. 굽이치는 산자락과 푸른 충주호를 볼 수 있는 멋진 절 뒷간이다.


 

# 김천 수도암 텃밭 해우소

도선 국사가 이 암자 터를 발견하고 칠일동안 춤을 추었다는 수도암, 수도처로 이름나 있다. 이곳의 해우소는 가장 일반적인 사찰 해우소의 모습이다. 채마밭 끝에 해우소가 있어 자연스럽게 거름이 되고 양분이 되어 생명을 키운다.


 

# 거창 동계 고택 뒷간

경남 거창군에 있는 동계 정온 고택의 뒷간이다. 특이한 점은 뒷간에 오르기 위해 디딤돌이 놓인 점과 나무판으로 마루를 만들어 오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전통가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남녀의 칸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 지리산 칠불암 스님전용 해우소

 가락국 일곱 왕자가 성불하였다는 칠불암은 아자방으로 유명하다. 절 마당에 들어서기 전 왼쪽 비탈에 소담한 해우소가 하나 있다. 흙과 토막 난 나무토막으로 얼기설기 엮은 벽면, 그리고 녹슬은 양철 지붕. 스님 전용이라는 팻말이 주는 특권의식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소박하다.


 

# 안동 병산서원의 머슴뒷간

 서원중에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병산서원이다. 서원 밖에 달팽이 모양으로 지어진 뒷간이 있다. 복례문을 지나 연못 한쪽에 있는 뒷간은 양반들의 차지이고, 서원 밖 이곳은 하인들이 사용했다하여 '머슴뒷간'으로 불리었다. 예전에는 풀섶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몇 년 전 가 보니 흙담을 쌓은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 지리산 국사암 해우소

 계곡의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단아한 건물이 보인다. 처음에는 요사채 이겠거니 여겼는데 알고 보니 해우소였다. 지리산의 깊은 수림과 계곡에 있어 공기가 맑기 그지없다. 물소리 들으며 볼일을 보면 꿈을 꾸는 듯 아득한 느낌이리라. 다만 계곡에 바짝 붙어 있어 조금은 불안해 보인다.


 

# 변산 개암사 화장실

 요즈음 지어진 화장실이 편리성과 일률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곳의 화장실은 전통 한옥의 특징을 살려 지어졌다. 려하지는 않지만 소담한 우리네 한옥을 닮아 정이 간다.


 

# 지리산 서암정사 해우소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해 오래된 벽송사보다 찾는 이가 더 많은 암자이다. 해우소는 현대적으로 지어졌으며 벽면은 붉은 벽돌로 구성하였다. 다소 딱딱하게 보일 수 있는 건물이지만 지붕에 돌을 얹어 변화를 꾀하고 풀이 자라도록 하여 주변 풍광에 어울리도록 배려하였다.


 

# 여수 사도 화장실

 화장실이 게 모양을 하고 있다. 섬에 어울리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크고 시멘트의 거침이 그대로 드러나 위압감마저 준다. 외관의 보완이 필요하다. 아쉬운 것은 물이 없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담양 죽녹원 화장실

 죽녹원 대숲 안에 화장실이 있다. 대향도 은근하거니와 대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다. 화장실 문짝에 대숲 사진을 붙여 실내가 한층 상쾌하게 느껴진다. 남자 화장실의 경우 창으로 보이는 푸른 대숲이 싱그럽다.


 

# 관광안내소 같은 거창 월성계곡 사선대 화장실

 거창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월성계곡의 사선대 앞에 화장실이 하나 있다. 얼핏 보면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관광지의 여느 화장실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상당히 공을 들인 화장실임을 알 수 있다. 화장실 외벽 면에 월성계곡이 있는 북상면의 13경을 사진과 함께 설명한 글이 부착되어 있다.


 

# 남해섬 앵강만 전망대의 배 모양 화장실

 앵강만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있다. 육지 깊숙이 들어와 남해섬의 잘록한 허리에 있는 앵강만의 풍광은 가히 으뜸이다. 이 아름다운 앵강만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 배 모양의 화장실이 있다. 관광전략의 일환으로 보물섬으로 명명되는 남해섬, 포구를 드나드는 배의 모습인 이 화장실은 바다 풍경과 제법 어울린다. 돛도 달고 선창도 있으니 배 위에서 볼일을 보는 상상을 하면 속이 후련해진다.



#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마라도 화장실

 한반도의 최남단. 마라도는 풍광도 좋지만 화장실도 걸작이다.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화장실은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드넓은 바다가 온 몸 구석구석 들어오는 느낌이다.


 여행지에서의 화장실은 배설을 하는 공간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음 여행지를 고르는 쉼터의 구실도 한다. 화장실이 가지는 본래의 기능에다 여행자의 휴식처, 여행 계획의 중간 점검지로 이곳 화장실은 유용할 듯하다. 지자체에서도 규모의 관광 유치에만 혈안이 되지 말고 화장실 하나라도 지역적 특성에 맞추어 문화 공간의 의미로서 접근한다면 예기치 못한 관광 수입을 얻는 등 관광객 유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