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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장쾌한 오대산의 설경을 품고 있는 '상원사'

장쾌한 오대산의 설경을 품고 있는 '상원사'
- 국내 유일의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문수신앙의 성지



 월정사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가면 상원사다. 보기 드문 비포장 흙길은 끝도 없이 깊은 산중으로 이어진다. 깊은 산사의 고요한 설산은 여행자의 마음마저 차분하게 만든다. 계곡을 가로지른 눈쌓인 섶다리가 정겹다.


 등산객들로 다소 붐비는 주차장을 뒤로 하면 제일 먼저 '관대걸이'가 길손을 맞이한다. 세조가 상원사에 참배하러 와서 목욕을 하고 여기에다 옷을 걸었다 한다. '갓거(걸)이, '관대걸' 이라고도 불리는 버섯 모양의 이 관대걸이 주위로는 오대산의 깊은 수림들이 둘러싸 있다.

관대걸이 상원사를 참배하러 온 세조가 목욕을 할 때 여기에 의관을 걸었다고 한다.

 절집으로 가는 길이 미끄럽다. 다져진 눈과 빙판길이 걸음을 더디게 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심상잖은 돌층계가 앞에 버티고 있다. 미끄러운 돌게단을 조심스레 걸어 오르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설산에 둘러싸인 절마당엔 따뜻한 햇살이 넘치고 있었다.


 절집은 어디 가도 명당이라 했던가. 영하 15도나 되는 강추위임에도 바람 한 줌 불지 않는 양지바른 곳에 상원사는 천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월정사의 말사인 상원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문수신앙지이다.

청량선원(문수전)

 기록에 의하면 효명태자(성덕왕)가 왕위에 올라 재위 4년 만인 705년에 진여원眞如院을 지금의 상원사터에 창건하면서 문수보살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후 왕위 찬탈 등으로 인해 종기를 심하게 앓고 있던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문수보살을 만나 병을 치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양이 석상 청량선원(문수전) 앞마당에 있다. 세조가 자객으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에게 석상을 만들고 전답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월정사를 참배하고 상원사로 가던 도중  더위를 식히고자 주위 신하들을 물리고 계곡물에 목욕을 하였다. 그때 한 동자승이 지나가길래 등을 씻어 달라고 하였다. 세조는 등을 씻고 있는 동자승에게 "임금의 옥체를 보았다고 아무한테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자 동자승이 "대왕도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마시오."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세조가 정신을 가다듬고 난 뒤 몸을 살펴보니 종기가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상원사 동종 보호각 보호각인지 감옥인지 참담한 보호 방식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병을 고친 세조가 다음해 상원사에 참배를 하러 갔다. 법당에 들어갈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고양이가 튀어나와 세조의 옷을 물어 당겼다. 순간 이상한 예감이 들어 법당 안을 샅샅이 뒤지게 했더니 불상 탁자 아래 자객이 숨어 있었다. 이에 세조는 자객을 참수하고 자신의 목숨을 건져 준 고양이에게 석상을 만들어주고 전답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상원사 동종 신라 성덕왕 24년인 725년에 만든 종이다. 성덕대왕신종보다 45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다. 국보 제26호이다.

 상원사는 세조와 관련이 깊은 절이다. 세조는 상원사를 중창하기 위해 친필 어첩인 권선문 두 권을 작성하였다. 기존의 진여원을 확장하여, 이름을 상원사上院寺라 바꾸고 원찰로 정하여 문수동자상을 봉안하였다. 상원사 중창권선문과 문수동자상은 각기 보물 제140호, 국보 2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원사 동종 비천상 금세라도 날아오를 듯한 아름다운 비천상이다. 악기인 공후와 생에서 소리가 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그 소리는 아마 천상의 소리이리라.

 상원사는 대웅전이 따로 없다. 비로봉 아래 적멸보궁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산전이 있어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다. 상원사 하면 빠뜨릴 수 없는 분이 방한암스님이다. 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일화로 감동을 주었던 방한암스님은 경허, 만공, 수월 스님과 함께 근대 선풍을 일으킨 대표적인 선승이다.
  한국전쟁 당시 오대산 일대가 군사 거점으로 되자 월정사와 상원사에 소각 명령이 떨어졌다. 군인들이 월정사를 불태우고 상원사마저 태우려 하자 방한암스님은 법당과 함께 자신도 소신고양하겠노라 하여 꼼짝을 하지 않았다. 스님의 굳의 의지에 감명을 받은 군인들은 절의 문짝만을 떼어 불태우고 철수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과 상원사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



영산전마당에 서면 장쾌한 오대산 자락이 끝없이 펼쳐진다. 눈이 쌓인 하얀 설산에 둘러 싸여 바람마저 멈춘 양지바른 절집은 오늘도 고요하다.


영산전 앞 석탑은 심하게 파손되어 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몸돌에 새겨진 부처 조각이 매우 귀여우면서도 사실적이다.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자성自性 밖에 법이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티끌처럼 많은 겁을 몸을 태워 기도하는 고행을 하고 팔만대장경을 모조리 독송한다 하더라도,
이는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이 오히려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

금강산 유람 중에 출가를 결심한 방한암 스님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고국사의 수심결修心訣의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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