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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동방사찰 제일의 전망 '수종사'

동방사찰 제일의 전망 '수종사'
- 북한강을 한 눈에 내려다보다


양주땅 수종사. 남한강과 만나기 직전의 북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운길산에 있다. 지금은 남양주지만 예전에는 인근의 양주, 구리, 남양주, 의정부가 모두 양주땅에 속하였다. 송촌리 마을에서 운길산을 올려다 보면 수종사가 산꼭대기에 까마득하게 걸려 있다.


산은 그닥 높지 않지만 강변 가까이 우뚝 솟아 있어 그윽한 정취가 있다.
절 아래로 북한강과 양수리가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문장과 글씨에 능했던 조선의 문인 서거정은 가을비가 내리는 수종사를 찾았다.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 ....../ 흰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꺼나./..... 라며 가을비 내리는 수종사에서 시를 지었다. 그는 수종사를 '동방사찰 중 제일의 전망' 이라고 하였다.


서거정의 말처럼 수종사의 전망은 제일이다. 남도의 절집에서는 이런 풍광을 흔히 보지만 수도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시원한 조망이 좋다. 서거정은 비오는 가을날, 발 아래로 자욱한 흰구름을 걸었건만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겨울날에 수종사를 찾았다.


사실 흰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수종사를 보고 싶었다. 운해로 묻히는 일몰도 보고 싶었다. 허나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전망이라 햇빛 넘치는 한낮을 택하였다. 절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사람들로 붐빈다. 차와 사람이 뒤엉켜 난리도 이런 법석이 없다.


수종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세조 4년인 1458년에 왕명으로 크게 중창하면서 연혁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유물로종 21년인 1439년에 세워진 '정의옹주 부도'가 있고  그 뒤 세조 6년인 1460년에 조성된 팔각오층석탑이 있어 조선시대에 번창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수종사라는 이름은 세조와 관련이 있다.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던 세조가 양수리 쯤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이 인근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저녁 세조의 귀에 지금의 수종사 부근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아침 세조는 종소리를 따라 갔는데, 종소리가 난 곳은 기이하게도 바위굴이었다. 굴 속에는 16나한이 앉아 있었고 종소리는 굴 속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였다.

약사전과 절이름의 유래가 담긴 약수

이에 세조는 그곳에 절을 짓고 절이름을 수종사水鐘寺라 하였다. 현재 약사전 앞에 약수가 있는데, 이곳이 수종사를 중창하게 된  바위굴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들어오는 길 반대로 가면 500년이 넘은 장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은행나무의 키는 40여 m, 둘에는 약 7m 정도이다. 수종사를 중창하고 난 후 세조가 기념으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절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좋지만 수백년된 거대한 은행나무와 수천년을 유유히 흘러온 북한강을 볼 수 있는 이곳이 한층 더 매력적이다.


팔각오층석탑과 태종의 다섯번째 딸인 정의옹주의 부도

수종사가 자리한 운길산은 해발 610m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한강을 조망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듯 하다.



수종사 은행나무 나무의 키는 40여 m, 둘레는 약 7m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