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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기행

온통 가을빛에 물든 한국의 그랜드캐니언 미인폭포의 장관

 

 

 

 

온통 가을빛에 물든 한국의 그랜드캐니언 미인폭포의 장관

- 남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가을 미인폭포

 

청옥산을 넘어 강원도에 들어서자마자 온통 붉고 노란 빛이다. 숙소로 가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먼저 단풍 세상에 푹 빠져 볼  요량으로 태백에서 곧장 통리협곡으로 갔다. 벌써 다녀온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미인폭포를 다시금 보기 위해서다.

 

 

 

딴엔 기억이 선명치 않았다. 산기슭에서 아래로 푹 꺼진 가파른 협곡을 한참이나 내려갔던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폭포가 얼마나 높았는지, 폭포수의 수량이 많았는지 등은 전혀 기억이 없다. 암자 같은 작은 절 하나가 폭포 어딘가에 있었던 것도 나중에야 어렴풋이 떠올랐다.

 

 

차에서 내렸을 때도 기억은 여전히 희미했다. 낯선 공간과 낯선 풍경도 잠시, 온몸을 불태우는 듯한 초입의 단풍나무 두 그루가 모든 신경을 앗아갔다. 이어지는 폭포 가는 길은 벌써 낙엽이 산길을 덮고 있어 사각사각 가을의 정취를 더해가고 있었다. 어느덧 희미한 옛 기억은 화려한 가을빛의 오늘에 잊히고 말았다.

 

 

폭포로 가기 위해선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곳은 협곡지대. 대개 폭포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아래로, 아래로만 내려가야 폭포를 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빛이 경계를 갈랐다. 하늘에 닿은 잎들은 울긋불긋 색깔을 드러내고 땅으로 가까운 잎들은 제빛을 잃은 먹색이다. 산의 비탈진 사면이 절로 경계가 되어 가을의 빛을 밝음과 어둠으로 나누고 있었다. 하나에서 나온 둘은 결국 하나임을 넌지시 말해주는 듯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흔들다리가 있고, 그 너머로 작은 절 여래사가 보인다. 철제다리 끝에 놓인 시주함에 입장료라고 생각하고 얼마간 성의를 표했다. 좁은 절마당을 돌아 법당 앞마당에 섰다. 갑자기 앞이 탁 트이더니 폭포 물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봐도 가을 가뭄에 폭포 물이 많이 줄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붉은 벼랑에 둘러싸인 폭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시 지그재그 내리막 산길. 몸이 앞으로 쏠리는가 싶으면 붉은 단풍이 등을 잡고, 뒤로 미끄러지는가 싶으면 노란 생강나무가 가슴을 잡는다. 길은 비뚤어도 가을은 제대로다.

 

 

폭포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계곡 낭떠러지로 불쑥 내민 언덕의 끝에 서니 발아래가 까마득하다. 여기서 폭포까지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급경사다. 다행히 밧줄이 놓여 있어 조심조심 내려간다.

 

 

먼저 내려간 딸아이가 저 아래서 손을 흔든다. 저 붉은 석벽 아래에 있는 아이는 이미 선경 속의 동자 같다. 묘연한 풍광에 마치 꿈속을 거닐 듯 아득하다. 순간 현기증이 났다.

 

 

계곡으로 들어섰을 때 무엇보다 놀란 건 옥빛의 계곡물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뿌연 것이 석회석 물 같았다. 어떻게 이런 물빛이 가능할까. 옥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물빛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 그제야 거대한 석벽에 둘러싸인 미인폭포가 제대로 들어왔다. 통리협곡의 미인폭포라! 길이가 10km, 최대 깊이가 270m에 달하는 통리협곡은 만들어지는 데만 1000만 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1억 5000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되어 2600만 년 전쯤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이곳을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비교하곤 하는데 실제로 생성과정이나 지질학적 특성이 비슷하단다.

 

 

미인폭포는 마치 거대한 날개를 펼친 듯한 오봉산과 백병산이 만나는 곳에 V자 형의 암벽에서 떨어진다. 폭은 100m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이를 사이에 두고 거의 300m 높이의 퇴적암 절벽이 마주하고 있어 올려다보면 까마득하다. 폭포의 높이는 50m, 오십천으로 흘러간다.

 

 

협곡은 온통 붉은 색을 띠고 있다. 고운 모래와 진흙이 굳어 몇 겹으로 차곡차곡 쌓인 구조로 점토암과 실트(미사)암으로 이루어진 이암, 자갈로 이루어진 역암, 모래입자가 굳어져 만들어진 사암 등이 비바람에 깎이면서 만들어졌단다.

 

 

아무래도 이 폭포는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에 오거나 비가 많이 온 뒤에 와야겠다. 그때가 되어야 암석의 질감이 제대로 살아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실낱같은 폭포수는 아쉬울망정 해질녘 더욱 붉어진 통리협곡 절벽의 웅장함과 계곡을 흘러내리는 옥색 물빛, 산을 물든 단풍구경을 제대로 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미인폭포는 폭포의 높이를 가늠하여 ‘오십장폭포’라 부르기도 했고 심포리에 있다 해서 ‘심포폭포’라고도 했다. 미인폭포는 마치 여인이 치마폭을 펼친 것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대개의 폭포가 그러하듯 여성을 닮았다. 그래서일까.

 

 

미인폭포라는 이름이 붙은 데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나는 예부터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에는 미남이 많고 폭포 인근의 ‘구사’에는 미녀가 많았는데, 어느 때 두 지역의 미남미녀가 서로 사랑을 했다가 황지의 남자가 떠난 후 오랜 세월 동안 소식이 없자 미인이 투신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는 폭포 옆 높은 터에 살던 한 미녀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다가 남편이 알 수 없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홀로 3년을 보내게 된다. 그 후 재혼을 하기로 결심했으나 옛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민하던 끝에 미인의 집 옆에 있는 폭포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외에도 콧대가 높은 아름다운 처녀가 신랑감을 고르다 나이가 들었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 결혼을 허락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남자가 할머니가 된 그녀를 거절했다. 얼굴을 물에 비춰 할머니처럼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본 처녀는 절망하여 치마를 뒤집어쓰고 폭포에 빠져 죽었다. 그 뒤 진짜 신랑감이 나타났으나 신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낙망하여 물로 뛰어들었고 미인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미인폭포. 그 이름만큼이나 남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풍경이었다. 가을빛이 제대로 들었는지 선녀를 훔쳐본 나무꾼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다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가을이 왔긴 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