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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애불

1200년만에 개방된 해인사 마애불, 직접 가보니

 

 

 

1200년 만에 개방되었다는 해인사마애불 직접 가보니

 

지난 10월 3일, 해인사를 찾았다. 합천이 고향인데다 대장경축전도 이미 다녀왔던 터라 굳이 해인사를 다시 찾을 필요는 없었으나 연일 방송 등의 매체에서 요란을 떠는 통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1200년 만의 개방이라는데, 당최 안 가보고 배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해인사는 야단법석이었다. 주차할 공간을 찾느라 몇 번이나 빙빙 돌고 난 후에야 해인사 경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야산 해인사'라고 적힌 해강 김규진의 글씨가 단연 눈에 띈다. 절 구경은 나중으로 미루고 마애불로 곧장 가기로 했다.

 

 

천왕문을 지나 범종각, 청화당을 돌아가니 마애불 가는 길 안내문이 나왔다. 해인사 마애불 입상까지는 2.3km, 왕복 5km에 채 미치지 못하는 거리다. 2013대장경세계문화축전 기간 동안인 지난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45일간 개방된다. 개방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다. 왕복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애불 가는 초입부터 붐비더니 산길을 들어서자 점점 사람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스님, 그 뒤를 따르는 수녀 두 분. 다시 뒤를 따르는 스님 대여섯 분. 예닐곱 살 된 딸을 앞세우고 서너 살쯤 뵈는 아들을 들쳐 메고 가는 중년의 부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낯설지 않다.

 

 

천 년의 시간이 흐르니 서로간의 경계가 사라진 모양이다. 너와 나를 구분 지을 필요 없이 마애불은 이미 종교를 넘은 우리의 공동유산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번잡함을 깨뜨린다. 누군가 그랬지. 이 길은 셋이 가면 좋고, 둘이 가면 더욱 좋고, 혼자라면 가장 좋은 길이라고. 계곡 따라 졸졸 이어지는 이 순례의 길은 유쾌하고 넉넉하다. 오늘처럼 사람만 많지 않다면 이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고 수행이 되겠다.

 

 

산길 곳곳에는 관리인들이 보인다. 국립공원구역인데다 해인사 스님의 식수원으로 쓰고 있는 계곡이 있어 출입금지구역이다. 그럼에도 감시의 눈을 피해 계곡 곳곳에서 음식을 먹는 이들이 더러 보인다. 일시 개방이 아닌 상시 개방으로 갔을 때의 문제점을 미리 보는 듯해 가슴이 아렸다. 산길 중간 중간에 서 있는 ‘출입금지’라는 붉은 글씨가 너무나 선명하다.

 

 

여태까지의 평탄한 길이 300미터를 앞두고 갑자기 오르막으로 돌변한다. 잠시 헐떡이는 숨을 고르는데 길은 이미 불통이 되어 버렸다. 올라가는 이, 내려오는 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이가 뒤엉켜 꼼짝을 하지 않는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겨우 발 옮길 공간을 찾았다. 저 멀리 마애불의 옆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암벽에 새겨졌으리라 짐작했던 마애불은 일부러 세운 것처럼 독립된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뒤에는 또 다른 바위가 등을 받치고 있어 한결 안정성이 있어 보인다. 1200년 만에 드러낸 모습인가. 사실 이 길은 오랫동안 미공개 구역이었지만 다른 등산로로는 마애불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산꾼들도 다녔을 테고, 스님들과 불자들도 다녔을 테고, 수십 년 전에는 사람들이 다녔을 텐데, 1200년 만에 개방되었다는 것은 다소 과장이 아닌가 여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달에 토끼와 계수나무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둥근 달을 보며 토끼와 계수나무를 상상할 수 있는 감성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풍부하게 하듯, 때론 냉철한 이성과 과학 대신 신성과 설화가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한다.

 

 

야단법석이 따로 없다. 불단 주위를 정리하느라 중년의 스님은 진땀을 빼고 젊은 스님은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는지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이다. “스님, 정리 좀 해주시오.” 급기야 젊은 스님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호통을 친다. 이럴 때는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없다. 다행히 부처님 앞이라 소리 지르는 이는 없다. 겨우 자리 한 곳을 잡아 마애불을 담기 시작했다.

 

 

보물 제222호인 이 불상의 정식 이름은 ‘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이다. 가야산 중턱 중봉에 있다 해서 ‘중봉 마애불’로도 불린다. 돋을새김한 마애불의 키는 약 7.5미터, 넓이는 약 3.1미터이다. 들리는 이야기에는 해인사의 지형이 마치 물위에 떠가는 배의 형국인데, 이 마애불은 그 배의 선장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마애불의 생김새를 묘사해보면 대략 이러하다.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고 높직하며 이마는 좁다. 미소가 없는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에 눈꼬리는 위로 치켜졌으며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두껍고 턱주름이 있다.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고 목에는 3개의 주름(삼도)이 뚜렷하다. 얼핏 보면 아이의 얼굴 같아 보이나 귀엽지는 않다.

 

 

둥근 어깨는 넓고 당당하다. 양 어깨에 걸친 옷(통견)은 아주 두꺼워 몸의 굴곡이 적혀 드러나지 않으며 발등까지 흘러내린다. 왼쪽 어깨에서 매듭을 지어 고리를 만들었다. U자형으로 연 가슴에는 내의가 보이고 띠매듭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검지와 중지를 구부려 가슴에 대어 손등을 보이고 있다. 특히 몸에 비해 작은 두 손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처리하여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불상의 제작 시기는 형식화 경향이 나타나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9세기로 짐작된다.

 

 

 

 

 

 

마애불입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진본이 공개되는 팔만대장경판과 함께 앞으로 해인사의 상징적인 유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스님과 불자에게만 접근이 허용됐던 이 불상은 27일부터 오는 11월 10일까지 열리는 '2013대장경세계문화축전' 기간인 45일 동안 만나볼 수 있다. 축전 기간 이후에도 일반에게 공개할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단풍 들면 다시 와야지.”

동행했던 아내가 무심코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마애불이 있는 곳엔 소나무가 쭉쭉 뻗어 있더니 그 아래로는 온톤 단풍나무다. 아직 붉으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잎만 봐도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 해인사에서 마애불 입상까지는 2.3km, 왕복 5km에 채 미치지 못하는 거리다. 2013대장경세계문화축전 기간 동안인 지난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45일간 개방된다. 개방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다. 왕복 2~3시간 정도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