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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남도 800리

이곳에선 정치인도 유명인도 동네사람일 뿐

 

 

이곳에선 정치인도 유명인도 동네사람일 뿐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33진영역-봉하마을-한림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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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역은 1905년 5월 13일 영업을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기차로 이곳에서 내려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진영역에서 봉하마을 가는 버스와 택시를 탈 수 있다.
ⓒ 김종길

 

 

"오늘만 벌써 봉하마을을 일곱 번째 다녀옵니더. 이상하게도 20대 남녀들이 많이 찾아오네예."

진영역에서 택시를 탔더니 기사가 하는 말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봉하마을. 버스는 1시간 30분 뒤인 낮 1시 40분에 있었다. 점심시간인데다 일행이 셋이어서 버스비와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아 택시를 탔다. 역안 매점 아주머니가 택시비가 7000원 정도 나올 거라 했는데 봉하마을에 도착하니 미터기는 7200이라는 숫자를 가리켰다. 진영역이 콜택시의 집합소여서 택시는 손쉽게 탈 수 있었다.

히트 예감! 봉하마을 쌀아이스크림

멀리 사자바위가 보인다. 부엉이바위도 보인다. 4월 말, 부엉이바위에서 한 청년이 몸을 던졌다고 기사는 말했다. 벌써부터 먹먹해 온다. 봉하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했다. 명계남씨가 운영한다는 마을 입구 식당에 들러 소고기국밥과 비빔밥을 주문했다. 뷔페식 식당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들이 소박한 액자에 더러 담겨 있었다. 소고기국밥, 몇 년 전 소식을 듣고 눈물인지 빗물인지도 모르고 꺽꺽거리며 말아먹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순간 콧등이 시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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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에선 친환경 생태농업으로 생산된 쌀을 '영농법인 봉하마을'이 전량 수매해 운영한다. 그 쌀로 만든 '봉하밥상'의 '봉하라이스칩'과 '쌀아이스크림'.
ⓒ 김종길

 


노란 현수막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봉하밥상 봉하쌀가게'라고 적힌 초록색 간판 글씨와 함께 산뜻한 황토색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쌀아이스크림'. 오월인데도 유난히 더운 날씨 때문인지 절로 눈길이 간다. 눈이 내린 듯 소복이 쌓인 하얀 쌀아이스크림은 입에 대자마자 미끈한 게 부드럽다. 쌀 특유의 은근히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사르르 녹는 듯 씹히는 맛이 달콤 시원하다. 보성차밭의 녹차아이스크림처럼 쌀아이스크림이 이곳 봉하마을의 명물이 될 것 같다. 히트 예감이다. '봉하라이스칩'도 보인다. 맛보기로 내놓은 과자를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넣었더니 바삭바삭한 게 담백하니 맛있다.

더운 날씨엔 걷기도 힘들겠다. 쌀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전열을 가다듬은 자전거 무리를 바라본다. 마침 봉하마을에서 화포천까지 임시로 노란 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있었다. 하루에 세 번, 오전 11시 30분, 낮 1시 30분, 오후 3시 30분에 이곳에서 출발한다.

 

가슴 먹먹한 '노무현을 쓰다'

고 노무현 대통령 4주기인 5월 23일을 앞두고 봉하마을에선 서서히 추모 열기가 더해지고 있었다.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 앨범도 나왔고 추모의 집에선 추모특별전시 '노무현을 쓰다'도 열리고 있었다. 유시민·명계남·이광재 등의 사인회도 5월 셋째 주말에 행해졌고 추도식은 5월 23일 오후 2시 30분에 묘역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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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1946년 9월 1일에 태어나 8살까지 살았던 생가.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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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에는 각종 유품과 사진, 기록물들이 전지돼 있다. 5월 31일까지 추모특별전시 ‘노무현을 쓰다’가 열리고 있다.
ⓒ 김종길

 

                          

 

낮 1시를 넘기자 햇볕이 뜨거워진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특별전 '노무현을 쓰다'가 열리는 추모의 집에 들어섰다. 입구 마당에 세운 패널에는 '바보 노무현'의 지난 삶들이 오롯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서른쯤 됐을까. 아가씨 한 명이 훌쩍거린다. 눈은 이미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젠장, 햇볕이 너무 따가웠나. 임옥상이 만든 '대지의 아들 노무현'이 전시장 입구를 강렬하게 붙들고 있다.

신영복·이철수·명계남 등이 노무현을 추모하며 쓴 글씨들이 전시장 가운데를 가득 메우고 그 끝으로 노란 리본으로 촘촘히 조각 모은 '바보 노무현'의 얼굴이 있다. 한쪽 벽에는 그가 탔던 잔디 썰매·자전거·옷가지들·친필 메모 등이 있어 한동안 발길을 붙든다. 생전에 그가 사랑채에 걸어두고 감상할 만큼 좋아했다는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가 출입문에 꼭 달라붙어 있다.

대통령의 길에는 이야기가 있다

박석을 깐 묘역은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한낮인데도 묘역에는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다. 스님 두 분이 앞장서고 뒤이어 아빠와 어린아이가 뒤따른다. 할머니들이 우르르 단체로 몰려오는가 싶더니 몇몇 분이 묘지 앞 방명록에 서툰 글씨로 몇 자 적는다.

"대통령님, 반갑습니다. 대통령,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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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5월 23일 오후 2시 30분에 추도식이 묘역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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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지 앞 방명록에 적힌 할머니들의 글씨.
ⓒ 김종길

 

 

                        
봉화산에 올랐다. 부엉이바위를 숙연하게 바라보며 오르는 길, 제일 먼저 마애불에 이른다. 봉화산은 해발 150m 정도의 낮은 산이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는 호미든관음보살상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봉화산에 올라가 보지 않고는 봉하마을 방문은 헛일입니다"라고 했다.

봉화산은 야트막한 산임에도 산세가 다양해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발아래로 손바닥만 한 봉하마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화포천 둑길이 장난감 기찻길처럼 내려다보인다. 가운데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볼 때마다 손을 뻗어 잡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고인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은 오늘도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봉화산 구석구석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김수로왕의 다섯째 아들이 지었다는 자은암이란 암자 터와 수리부엉이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부엉이바위, 누워 있는 마애불, 봉하들판과 화포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자바위,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 대통령의 49재를 지내고 위패를 모신 정토원. 이 작은 산에 이처럼 옹골찬 것들이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원래는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누워버린 봉화산마애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은 운주사의 와불이 일어난다면 언젠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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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엉이바위.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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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봉화산의 '누워 있는 마애불'.

 

부엉이바위는 철책으로 온통 둘러쳐 있었다. 땀이 길게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정토원에서 참배를 하고 사자바위에 올랐다. 발아래로 고인의 묘역과 사저, 생가가 보인다. '사람사는세상'이라 부르던 생태연못도 보인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 했던가'. 쨍하는 햇빛에 순간 어지럽다. 현기증이 난다.

고인이 부엉이바위에 몸을 던지기 전 언론사 기자들이 진을 치고 감시하던 곳, 사자바위. 기자들이 사저 취재를 위해 상주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망원 렌즈 등을 통해 고인과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촬영했던 그들이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다. 왜 150m밖에 되지 않는 봉화산을 일러 노 대통령이 '낮지만 높은 산'이라고 했는지 그들은 끝내 알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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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의 49재를 지낸 정토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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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바위에서 내려다본 대통령 묘역과 봉하마을 일대. 

 

화포천 따라 대통령의 길을 가다

소나무숲길을 따라 약수암으로 내려와 화포천으로 향했다. 들판은 농사철이다. 물을 댄 논에 경운기며, 트랙터며 분주히 오간다. 이따금 백로들이 주위를 맴돌며 날갯짓을 한다. 아니 농사의 기쁨에 겨워 춤을 추는가 보다. 들판의 가장자리를 크게 휘돌아가는 둑길이 있다. '북제방길'로도 불리는 둑길은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씨가 연애시절 자주 걷던 데이트 코스로 철둑길과 뱀산 아래 논둑길로 이어진다.

땡볕이다. 그래도 바람은 선들선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고 화포천으로 걷는다. 멀리 4량짜리 경전선 무궁화호가 느릿하게 지나가더니 뒤이어 나타난 KTX가 커다란 뱀처럼 뱀산 아래로 순식간에 꼬리를 감춘다. 본산배수장을 지나 경전선 철길 굴다리 밑을 통과하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초록의 화포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은 포장과 비포장길이 반복된다. 흙먼지가 폴폴 나는 흙길이 되레 고맙다. 멀리 편백나무 숲길이 화포천을 향해 초록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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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숲길은 대통령이 손님이 오면 늘 함께 거닐었던 길이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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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포천은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100대 하천' 중 하나다. 21.2km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하천형 습지다. 사진 왼쪽의 미루나무가 인상적이다.
ⓒ 김종길

 


화포천은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100대 하천' 중의 하나다. 21.2km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하천형 습지다. 다양한 물고기와 꽃창포, 버들 같은 습지식물들이 사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쓰레기와 폐수로 황폐했던 이곳이 노무현 대통령이 귀향한 이후 '화포천 살리기'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이곳에선 정치인도 유명인도 동네사람일 뿐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한 무리의 자전거가 지나간다. 아까 봉하마을에서 봤던 화포천 생태여행을 온 노란 자전거다. 오후 3시 30분에 출발한 것이겠지.

"아는 사람이야?"
"음, 당신도 알잖아. 김경수 비서관."
"아, 저기 제일 뒤에 양복입고 보릿대 모자 쓴 사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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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에선 지난 5월 11일부터 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있어 화포천까지 자전거로 탐방을 할 수 있다. 사진 제일 뒤 양복입은 이가 김경수 비서관이다.
ⓒ 김종길

 


자전거 무리 중에 제일 뒤에 탄 김경수 비서관이 여행자에게 인사를 먼저 건넨 것을 본 아내의 말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사에 아내는 아는 사람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는 사람이지만 친분은 없다. 근데 이상하다. 적어도 이곳에선 정치인을 만나도 유명인을 마주쳐도 우쭐댈 것도 없고 새롭지도 않다. 사인받으려 촌스럽게 나불댈 일도 없다. 그저 마주치는 동네사람일 뿐이다. 그도 아니라면 너와 나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인 그저 그런 평범한 존재들일 뿐이다. 지난번 봤던 문재인도, 명계남도, 안희정도, 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곳에선 동네사람들이었다.

화포천에서 만난 특이한 집, 장방리 갈집

"아, 여기였네. 하하!"

여행자의 탄성에 아내가 더 신난 듯했다. 사실 진영역에서 내려 봉하마을로 와서 한림정역까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일정을 잡았는데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장방리 갈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1호)이었다.

손에 쥔 지도에는 한림면으로 나와 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날을 잡아 따로 찾아야 할지 아니면 한 번 오기 힘드니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오늘 찾아야 할지 갈등을 하고 있었다. 마침 화포천 주변 안내문을 보던 아내가 '갈집(영강사)'이라는 글귀를 발견했고 "바로 저기네"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게 아닌가.

철길 아래 굴다리를 건너자 산기슭에 스머프의 집처럼 생긴 갈집이 보였다. 얼핏 보면 무슨 버섯 같기도 하다. 절벽 아래에 지어진 영강사라는 절의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는 장방리 갈집은 안채·사랑채·아래채로 구성됐다. 모두 세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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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포천에 있는 장방리 갈대집은 봉하마을에 가면 꼭 가볼 만한 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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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방리 갈집(갈대집)은 낙동강 지류의 화포천에 있다. 낙동강 주변이라 갈대가 흔했고 이를 이용해 갈대로 지붕을 이었다. 갈대집은 '초막집'으로도 불리는데 이 일대를 '초막골'이라고 불렀다. 예전에 이곳 마을 일대가 거의 갈대집이었다고 하나 1970년대 초가지붕이 사라졌던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갈집들도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방 두 칸에 마루 한 칸, '초가 삼 칸'의 오막살이집의 구성이지만 내부는 의외로 넓고 서까래는 튼실했다. 다만 50cm가 넘는 두꺼운 갈대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채와 아래채 외벽에는 이곳을 방문한 노 대통령 부부의 사진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천했던 여행코스
"둑길을 걸어서 화포천까지 갔다가 들판을 한 바퀴 돌아오면 한 시간, 마애불을 거쳐서 봉화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한 시간, 자은골로 걸어서 봉화대-관음보살상을 거쳐 도둑골로 내려오면 두 시간, 계속 걸어가서 재실 앞 낚시터를 거쳐 화포천까지 갔다 오면 두 시간, 화포천을 지나 뱀산을 돌아오면 세 시간, 이렇게 조금씩 욕심을 부리면, 1박 2일을 해도 모자랄 만큼 코스는 풍부합니다." - 2008년 3월 6일 노무현.

다시 흙길이다. 화포천은 경전선 철길과 나란히 달린다.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드러눕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습지는 오른쪽 등 뒤로 사라지고 마을의 집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한림정역이 가까워진 것이다. 오후 5시 37분 마산행 경전선 기차를 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대통령의 길(봉화산숲길)은 노 대통령이 예전에 손님이 오면 함께 거닐었던 길이다. 대통령 묘역에서 시작하여 마애불·사자바위·정토원·호미든관음보살상·편백나무숲길·장방리 갈대집·화포천·본산배수장·둑길(북제방길)·약수암·생태연못을 거쳐 대통령 추모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약 5.3km로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 호미든관음보살상에서 도둑골로 내려오는 길은 2km 정도로 1시간 남짓 걸린다. 5.7km의 화포천 습지길도 있다. 여행자는 이날 봉하마을 입구에서 출발해 봉화산에 올랐다가 둑길을 따라 화포천을 거쳐 한림정역까지 5km 남짓 걸었다. 느릿느릿 걸어도 두어 시간 남짓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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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포천에서 한림정역 가는 길.
ⓒ 김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