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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포천의 명소, 영평팔경 금수정에 취하다



포천의 명소, 영평팔경 금수정에 취하다

포천抱川.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은 없고 나가는 물만 있다고 해서 안을 ‘포’자를 썼다고 한다. 그만큼 포천은 물이 많은 고장으로 많은 내들이 있고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국사봉에서 발원한 산내천과 동서를 가로지르는 영평천이 한탄강과 만나면서 수려한 풍광을 빚어내는 곳이다.

금수정 인근에 있는 김씨 고가

이곳에는 영평팔경으로 불리는 포천의 명소가 있다. 영평천 일대는 조선 말기의 영평군으로 그 이름이 남아 있다. 흔히 ‘영평팔경’ 하면 백로주, 선유담, 와룡암, 창옥병, 청학동, 금수정, 낙귀정지, 화적연을 이른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사암 박순 선생이 포천의 빼어난 경치를 여덟 군데로 나누어 영평팔경가를 사암집에 실었다.


영평팔경 중의 하나인 금수정으로 갔다. 예부터 이곳은 양사헌, 한석봉, 이덕형 등 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들어가는 길에서 보면 금수정이 무성한 숲에 사뿐히 내려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자 위에 올라서면 강변 깎아지른 벼랑에 정자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태산이 놉다 하되 하늘 아래 뫼히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업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흘 놉다 하더라.”
정자 옆에는 봉래 양사언의 유명한 시가 적혀 있다.

양사언 시비

정자 앞을 영평천이 크게 휘감아 흐른다. 금수정의 현판 글씨는 물가 바위에 새긴 양사언의 글씨를 모사하여 걸었다고 한다. 척약재 김구용이 이곳을 소요하다가 그 모습이 소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고 칭했고 그의 아들인 김명리가 정자를 지으면서 우두정이라 했는데 양사언이 개축하면서 금수정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정자 앞에는 봉래 양사언 시비와 척약재 김구용의 시비가 있다.


정자에서 영평천으로 내려갔다. 암벽에 새겨져 있다는 글씨를 보기 위해서였다. ‘금수정’, ‘취대’ 등의 글씨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벼랑에 걸쳐 있는 좁은 농수로를 따라 이리저리 살피었으나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동북쪽 암벽에 있다는 양사언의 ‘금수정’이라는 글씨를 못 본 게 내내 아쉬웠다.


하는 수 없이 글씨를 찾는 것은 포기하고 물가로 내려갔다. 하얀 모래벌이 펼쳐졌다. 소주병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쓰레기들이 더러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래도 낚시꾼들은 태연히 고기를 낚아 올린다.

인간이 버린 물욕들도 이곳의 풍광을 일시 어지럽힐 수는 있어도 그 흔적마저 없앨 수는 없었나 보다. 물결이 비단처럼 아름다워 ‘금수정錦水亭’이라고도 불리기도 했으니 그 수려함이 쉬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기묘하게 새긴 거대한 바위가 마치 물속에 엎드린 거북이처럼 둥둥 떠 있다. 어찌 보면 하얀 속살을 가진 몸매 수려한 여인네의 곡선 같다. 등짝에는 경도
瓊島라는 글씨가 또렷이 보인다. 마치 구슬을 깔아놓은 듯한 아름다운 빛깔이 감도는 바위섬으로 보여 ‘경도’라 불렀다 한다. 이 글 역시 양사언의 글씨라고 한다.



잔잔한 물살에 꿈틀대는 저 글씨를 보니 옛사람의 풍류를 짐작하고도 남겠다. ‘경도’는 금수정 일대의 암각문에서 가장 미려하고 중요한 글씨로 평가받고 있다. 초서의 대가로 알려진 양사언의 글씨를 성호 이익은 “표표하여 마치 하늘에 치솟고 허공을 걸어가는 기상이 있으니 그 글씨 속에 선골
仙骨이 있음을 속일 수 없다”라고 평했을 정도다. ‘경도’가 새겨진 바위 중앙에는 술동이처럼 움푹 파인 구멍이 있는데, ‘술동이 바위’라는 뜻의 ‘준암樽巖’이란 양사언 글씨가 옆에 새겨져 있다.


바위 주위를 한참 맴돌다 다시 정자로 올라왔다. 바위벽의 글씨를 본떠 새로 건 금수정
金水亭의 글씨를 다시 보니 왠지 어색하다. 미려한 ‘경도’의 글씨를 보았기 때문일까.


“화적연
禾積淵(볏가리)에 벼를 베어/금수로 술을 빚어/창옥병에 담아놓고/와룡말 치켜 타고/백운암 찾아가니/청학은 간데없고/백로만 날아든다/장암(마당바위)에고요히 쉴까.” 옛사람들이 영평팔경의 지명을 풀이하여 부른 민요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한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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