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마애불

다시 되살아난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랫만에 함께하는 여행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 익숙한 나였지만, 동행하는 벗들이 있다는 것도 여간 다행이 아니다. 애초 변산으로 갈 예정이었다. 일행 중 한 분이 뜬금없이 '서산마애불'을 보고 싶다고 하자 모두들 맞장구를 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7월 1일에 보호각이 완전히 철거되어 서산마애삼존불이 그 미소를 되찾았다.

서산마애불. 나에게도 좋은 여행지로 기억된다. 해질녘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마애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다시 되살아난다. 그때가 십여년 전으로 기억된다. 가야산 자락의 한 모롱이에 수줍은 듯 제 모습을 감추고 있던 마애불을 찾아가는 설레임이 아직도 느껴진다. 기대 반, 설레임 반, 첫날 밤 신부의 옷고름을 쑥스럽게 푸는 심정으로 마애불을 찾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부부가 삼존마애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 분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당시에는 마매불을 보호하는 전각이 있었다. 이 보호각은 올해 7월 1일에 완전 철거되었다. 1959년 4월에 발견된 마애삼존불은 6세기 말~7세기 초의 유물로 추정되어 천오백여 년 동안 자연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왔다. 마애불이 입체감을 드러내는 양각인데다, 자연의 풍화작용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하여 1965년에 문화재청은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보호각의 설치로 햇빛이 차단되자 '백제의 미소'는 사라져 버렸다. 그 미소를 찾기 위해 불상에 전등을 비추어 봐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안내판의 사진으로 그 미소의 아름다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보호각이 통풍과 채광을 막아 내부에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애삼존불은 가운데에 여래입상, 왼쪽에 보살상, 오른쪽에 반가사유상이 있다.

이에 2005년 11월에 서산시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보호각 벽면을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2006년 3월에 벽면을 뜯어 내었다. 그럼에도 전각 지붕을 남긴 탓에 햇빛이 불상 얼굴에 닿지 않아 마애불의 미소는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후 불상의 풍화상태 등 보존상태를 지켜본 후 지붕을 포함한 보호각 전체를 철거하기로 하여 43년 만에 백제의 미소는 되살아 난 것이다. 물론 자연풍화가 계속 진행되는 만큼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히 백제의 미소를 전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애삼존불은 용현계곡 외진 산의 바위 벼랑에 있다. 왜 백제인들은 이런 외진 곳에 불상을 조성하였을까? 6세기 말엽 백제는 장수왕의 남하로 한강유역을 상실하게 되었다. 고구려와 사이가 좋을 때에는 육로를 통해 중국과 교역을 하였지만 한강 유역을 빼앗기자 바닷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길이 바로 중국의 산동반도와 가까운 이곳의 당진, 태안지역이다. 수도인 공주나 부여에서 이곳 가야산길을 거쳐 서산, 태안으로 이르는 길에 석불을 조성하여 교역로의 안녕과 평안을 빌었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산마애삼존불은 가운데에 본존인 여래가 있고, 왼쪽에 보살상, 오른쪽에 반가상이 있다. 특히, 오른쪽의 반가사유상은 7세기 초 삼국에 공통되었던 신앙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 마애불의 연대 추정에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한다. 장난기가 얼굴에 가득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측면에서 본 삼존불 햇빛의 방향에 따라, 보는 위치에 따라 그 표정이 다양하다.

마애삼존불은 햇빛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바위에 생명을 불어 넣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살아있는 듯한 미소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표정에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삼존불이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어 해가 비추면 한층 신비롭다. 바위벽면에 돋을 새김으로 하여 빛의 시간뿐 아니라 보는 위치에 따라서도 그 표정이 다양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행자는 오래 머물고 싶었다. 남서쪽이 트여 있어 역광이 비치는 게 조금 아쉬웠다. 해가 떨어지면 더욱 신비로울 마애삼존불과 애써 작별을 해야만 했다. 첫날 밤만 치르고 먼 길을 떠나는 새 신랑처럼, 복잡한 마음에 쉬이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스크랩 하러 가기 (http://blog.daum.net/jong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