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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여기가 남해안 최고의 해안길이라고!



여기가 남해안 최고의 해안길이라고!
-거제도 무지개길 도보여행③-다포마을에서 홍포마을까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 이따금 말에서 내립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다시 말을 타고 달린다고 합니다. 지친 말을 쉬게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쉬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 너무 빨리 달려 자신의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영혼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무지개가 뜬다는 거제의 여차 홍포 해안길을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쌍근에서 여차까지 걸었던 지난 22일과는 달리 이번에는 반대로 다대에서 홍포까지 약 7km 정도를 걸었습니다.


서해가 어머니의 자궁처럼 푸근하고 동해가 아버지의 장쾌한 호연의 기가 있다면, 남해는 잔정 많은 누이 같습니다. 아기자기한 남해에는 저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길들이 많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항공촬영 사진작가인 얀 (Yann Arthus-Bertrand)은 한국의 남해안을 항공 촬영하면서 "한국의 남해안에 일주일만 머문다면 사진첩 한 권은 족히 만들 수 있다."고 하며 한국의 남해안 풍광을 극찬한 바 있습니다.

다대항 전경

남해안에는 부산 기장해안, 통영 산양해안, 사천 실안해안, 남해 물미해안, 순천 와온해안, 여수 돌산도해안, 완도 서부해안, 강진 마량해안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도해의 아름다운 길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이곳 여차 홍포 해안길을 남해안 최고의 해안길로 꼽는데 여행자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감탄사가 절로 나는 이 길은 망산의 등허리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 올망졸망 점점 떠 있는 섬들과 쪽빛 바다를 보는 순간 풍경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내게로 다가옵니다. 해가 뜰 때도, 해가 질 때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빛을 따라 걸으면 더욱 좋습니다.

여차마을

다포에서 내려 여차까지 걸었습니다. 여차까지는 3km 남짓, 느릿느릿 걸어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길입니다. 비가 그친 하늘은 눈이 시리다는 상투적인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하늘빛을 닮아 바다빛도 옥빛입니다.


다대항이 내려다보이는 비탈길에 서니 신선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해금강은 산자락을 남겨 두어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천장산이 바다를 향해 쭉 뻗는가 싶더니 그 끝에 다포도가 점점 떠 있습니다.


고갯길 너머로 쪽빛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그 그림의 중심에 여차마을이 있습니다. 예전의 투박했던 어촌마을의 모습은 간 데 없고 현대식 펜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 풍경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사람은 변해도 자연은 묵묵히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있습니다.


앞서가던 이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언덕에 앉습니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처럼 느긋하게 풍경을 음미합니다. 영화 <은행나무침대>의 촬영지로 알려진 여차에는 주먹만 한 몽돌들이 널려 있는 해변이 아름답습니다.

여차의 상징은 대소병대도입니다. 8개의 크고 작은 섬 가운데 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대병대도와 3개의 섬이 모여 있는 소병대도를 합쳐 대소병대도라 부릅니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과 합류를 했습니다. 전망대까지는 비탈길입니다. 햇빛은 따가워도 나무 그늘이 있어 제법 걸을 만합니다. 포장이 안 된 흙길이 발에 푹푹 감깁니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요. 주말 낮에는 지나가는 차들이 일으키는 흙먼지 때문에 걷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곳을 찾을 때에는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에 걷는 것이 좋습니다.


길을 가다 처음에 맞닥뜨리는 전망대는 바람이 거셉니다. 바다 쪽으로 몸을 쑥 내민 전망대의 거센 바람은 등줄기의 땀을 단번에 날려 버립니다. 이곳에 서면 천장산과 다포도, 몽돌 해변 등 여차 일대가 시원스레 들어옵니다.


여기서부터는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섬과 이야기하며 걷는 길입니다. 이 길에는 숨은 포인트가 있습니다. 번듯한 전망대도 없고 언덕 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바위전망대입니다. 지금은 사진작가들과 눈치를 챈 몇몇 사람들이 아름아름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만, 예전에는 꼭꼭 숨어 있는 자연전망대였습니다.

차로 가면 절대 알 수 없는 곳인데, 오늘은 불행히도 차가 몇 대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히 여기며 바위를 올랐더니 역시나 사진가들이었습니다. 셔터를 누르느라 다들 정신이 없습니다.

대소병대도

이곳에서 풍경은 절정을 이룹니다. 마치 섬의 교과서처럼 그 생김새가 반듯합니다. 대소병대도, 등가도, 대매물도, 소매물도, 어유도, 국도, 가익도, 가왕도 등 수많은 섬들이 풍경의 주연이 됩니다. 조연급의 어선이 섬 사이를 지나갈 때면 모두 절로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소매물도 등대까지 훤히 보입니다.


이 길은 망산의 허리에 걸려 있습니다. 망산에 오르면 대마도, 부산까지 볼 수 있습니다. 예전 이곳에 왜구의 침범이 빈번하자 그것을 감시하던 곳이라 망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어유도, 노랑손대, 가왕도(왼쪽부터)

홍포에 도착해서 “홍포 귀신 할머니”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뵙겠다는 약속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나 할머니를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어디 마실 중이신가 봅니다.

다시 찾은 홍포 할머니의 집

명사해수욕장에서 여정은 끝이 났습니다. 걸으면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이 길을 잘 보존해야겠다고.

거제시에서 이 일대를 대규모로 개발한다는 이야기가 무성했습니다. 여행자는 생각합니다. 이 길만은 꼭 살려야 한다고. 아니 오히려 시멘트로 된 일부구간을 다시 흙길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대규모 개발보다는 현재의 상태에서 조망시설만 보완하고 차량 통행을 일체 금지하여 걷는 길로 탈바꿈하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차마을과 홍포마을에 셔틀버스를 운영해서 도보여행의 편리를 도모하면 됩니다. 물론 셔틀버스는 이 길이 아닌 홍포에서 저구, 다포, 여차로 이어지는 우회 포장도로를 이용해야겠지요.

아울러 여차 홍포가 걷기 좋은 길이 되기 위해서는 순창 강천산이나 대전 계족산처럼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즉 길의 반은 흙길 트레킹 코스로, 길의 반은 맨발 걷기 코스로 만들고 길의 가운데는 나무를 심어 그늘을 주면 단번에 전국이 주목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적어도 환경과 개발을 동시에 생각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명사해수욕장

※ 이 글은 경상남도가 지원하고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주최한 <경남의 길, 소셜미디어와 만나다>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필자가 여행 강사로 강의와 답사에 참여하여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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