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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철새 날아든 주남저수지 안개 속 풍경

 


철새 날아든
주남저수지 안개 속 풍경


지난 주말 경남 팸투어의 일환으로 주남저수지를 다녀왔습니다. 전체 일정은 경남지능형홈산업센터 방문과 대산면에 있는 감미로운 마을에서의 감 따기와 와인제작 체험을 하였습니다. 저녁에는 김두관 경남도지사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주남저수지를 찾은 건 이튿날 오전 9시를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사방을 가립니다. 어디가 들인지, 어디에 사람이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밤새 마신 술에 정신이 어지러워 아무 것도 분간하지 못한다고 굳이 변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한치 앞도 분간 못 하는 것이 우리네 인간의 삶이겠지요.

 

해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안개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차에 올랐습니다. 물러서지 않는 안개를 애써 기다리기보다는 안개를 뚫고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두터운 안개를 헤치고 차창에 햇살이 비춥니다. 초겨울 아침인데도 차안은 이내 더워집니다.

 

해와 안개가 잠깐 다투는 사이 버스는 주남저수지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젓가락을 두드리며 희뿌연 연기를 내뿜었는데도 연기에 대한 갈망은 여전합니다. 안개 탓을 하며 매점을 찾았으나 이곳은 안개만으로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생태학습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도 안개 속에 가물가물, 실내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방죽에 섰습니다. 앞서가는 일행과는 적당이 거리를 두며 걸었습니다. 철새가 몇 마리 왔고 지금 있는 새는 무슨 새인지 설명하는 마이크 소리가 안개 속으로 퍼집니다.

 

이토록 안개가 짙을 줄은 몰랐습니다. 오리들이 아침을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기러기인 줄 알았는데 오리라고 하더군요. 안개가 심하니 그 형체만 있을 뿐 생김새는 육안으로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몇 마리의 철새가 오는 지 매일매일 개체와 숫자를 확인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여행자를 더 슬프게 합니다. 가창오리는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불리는 걸 알까요. 기러기는 왜 자신이 기러기인 줄 알고는 있을까요. 자신들을 하나하나 감시하고 그 수를 파악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을까요.

 

아마 그들도 이렇게 되어버린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는 있겠지요. 주위 동료들이 하나둘 없어지고, 매년 겨울이면 가끔 만나던 친구들이 어느 해 겨울 갑자기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겠지요. 이제는 누군가 지켜봐야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겠지요.

 

시간이 지나도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접으니 처음의 답답함도 사라집니다. 안개가 모든 것을 가리니 오히려 새들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됩니다. 내 맘속에 더 다가갑니다. 

 

저도 모르게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를 흥얼거립니다.

....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

 

일행들과 떨어져 방죽을 내려갔습니다. 한 떼의 새들이 군무를 추며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먼저 자리한 사진가는 연신 셔터를 눌러댑니다.

 

가까이 다가서니 새소리가 귀를 때립니다. 사정없이 울리는 새소리에 하늘이 빙빙 돕니다. 그 사이 안개를 뚫으려 해는 빈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안개도 서서히 밀려날 징조가 보입니다.

 

새들의 군무가 시작됩니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갈대숲으로 사라집니다. 태양을 쫓아 오르는가 싶으면 땅으로 곤두박질칩니다. 그 다양한 군무에 잠시 넋을 잃었습니다.

 

줄을 지어 나는 기러기 떼와는 달리 이런 오리 떼들은 무리지어 날기만 할 뿐 질서는 없다고 하더군요. 잘 훈련받은 정연한 이동보다는 이런 어수선한 모습이 여행자는 더 좋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역광이라서 새의 사진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실루엣만 보이는 새의 비상이 오히려 안개와 잘 어울립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꼭 필요할 때 모습을 드러내는 성실한 겸손을 안개 속에서 보았습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곁눈으로 보니 방죽 위에 있던 일행들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단체 행동에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지요.

 

그래도 아쉬워 고개를 돌리니 농부로 보이는 이가 안개 속으로 걸어갑니다. 추수를 끝낸 논에 볼일이 있는가 봅니다. 농부는 잠시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손질하더니 다시 논둑길로 나아가길 몇 번, 어느새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여행자의 옆을 지나갑니다. 제 아무리 짙은 안개라도 농부의 바쁜 일상을 방해하진 못합니다.

 

매년 수만 마리의 철새가 다녀간다는 이곳의 감동도 이제는 불확실해졌습니다. 시인 기형도가 어느 소읍에서 본 그로테스크한 안개를 여행자는 이곳에서 보았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불확실하고 괴기합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강바닥을 긁어내는 저 괴기한 삽질은 언제 멈출까요.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기형도의 <안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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