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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금지된 땅, DMZ 비경 두타연을 가다




금지된 땅,
DMZ 비경 두타연을 가다
나 이 길로 금강산 갈 거야

예정된 일은 아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금단의 땅 두타연을 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반세기 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2004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비경, 두타연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 끝에 가게 되었다.


언젠가 두타연에 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억을 꺼낸 것은 강원도 고성의 어느 바닷가에서였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더위를 피하며 한담을 나누던 중 누군가 두타연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여행자는 두타연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랫동안 기억의 저 아래 묻어두었던 것을 찾으리라 곧장 마음먹었다.


멀고도 먼 두타연 가는 길

양구군청에 전화를 하니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라고 했다. 마침 내일 예약을 마무리하려던 중이었으니 예약을 서두르라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양구군 홈페이지에 들어갔으나 이미 예약 불가능이었다. 다시 군청에 전화를 하니 예약이 가능하도록 홈페이지를 열어두겠다고 했다. 혼자라고 했더니 인적사항을 불러달라고 했다. 7월 30일 오전 10시로 두타연 출입을 신청하였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설악산 아래 숙소는 아직 한밤중, 푸른빛이 도는 첫새벽이었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비무장지대를 몇 번이나 여행한 경험이 있지만 두타연은 왠지 모르게 특별한 여행지로 다가왔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레스토랑이 문을 열자마자 아침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출발했다. 미시령을 넘어 인제를 지나 양구로 접어들었다. 길은 광치의 깊은 계곡을 한참이나 따라가더니 어느새 양구읍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기 장소로 오라던 군청직원의 말을 되새기기를 몇 차례, 명품관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군사지역임을 감안하여 서약서에 인적사항을 적고 기다렸다. 관광안내해설사로부터 주의사항을 간단히 듣고 차에 올랐다.


해설사의 차량이 제일 선두에 서고 관광을 온 이들의 차량들이 뒤를 이어 달렸다. 한 30여분 달렸을까. 눈앞에 군부대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다시 신원절차를 거친 후에 비로소 DMZ로 접근할 수 있었다.


군부대를 지나면 비포장길이다. 덜커덕거리는 흙길이 묘하게 긴장감을 준다. 공사 중인 흙길이 반듯한 포장길로 바뀌면 긴장감이 줄어들까.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깊이 숨어있는 비경을 찾아가는 설렘도 같이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그 옛날 금강산으로 가던 길

그렇게 10여분,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두타연 안내문 앞에서 해설사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듣고 두타연을 둘러보았다. 공터 오른쪽으로 금강산 가는 길이 보였다. 물끄러미 그 길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자유로이 드나들었을 그 길을 쳐다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다. 길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거쳐 금강산으로 향했겠는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금강산에서 처음 시작한 지류가 이어져 만들어진 곳이 바로 이곳 두타연이다. 50여 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곳 DMZ, 그래서 생태환경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먼저 계곡 왼쪽으로 난 비탈길을 따라 전망대에 올랐다. 우레와 같은 폭포 소리가 귀를 울린다.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서 흘러내리던 계곡물이 쉴 새 없이 몰아치더니 이곳에서 수십 길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그 소리에 바위도 놀라 부서지고 사람도 놀라 서로 부둥켜안는다.


우레와 같은 폭포수에 놀라고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물이여서 그런지 물은 푸르디푸르다. 마치 옥이 부셔지듯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다시 옥빛으로 흘러내린다. 가픈 숨을 내몰던 계곡물은 건너편 바위가 듬직하게 막아서고 나서야 점점 느린 호흡으로 숨을 고른다.


1천 년 전 이곳에는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두타연이란 이름도 이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수심이 최대 12m에 달한다. 10m의 물이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 형성된 두타소 주위로 40여m의 바위벼랑이 병풍을 두른 듯 에워싸고 있다.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굴이 있는데 ‘보덕굴’이라고 했다. 바닥에는 머리빗과 말구박이 반석위에 찍혀 있다고 하나 직접 보지는 못했다.


혹여 지뢰를 밟을까 두렵기도

계곡 옆으로는 울창한 수림이다. 곳곳에 ‘지뢰’라고 적힌 푯말이 있어 섬뜩하다. 혹시나 비가 많이 와서 지뢰가 떠내려 와 있지는 않나 싶어 괜스레 겁이 난다. 실제 장마철에는 지뢰가 떠내려 올 수 있어 계곡의 출입을 통제한다고 했다.


조심조심 순한 양처럼 정해진 길만 따라갔다. 망아지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여행자도 이곳에서는 순해졌다. 각종 야생화들이 앞 다투어 뜸한 손님들을 반긴다. 인간들에게 무참히 꺾이고 짓밟혔던 꽃들도 이곳에서는 안심을 한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길은 계곡에서 끝이 났다. 원래 징검다리가 있어 계곡을 건널 수 있었으나 장마로 물에 잠겨 건널 수가 없었다. 대신 발을 담갔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마자 사람들이 펄쩍펄쩍 뛰었다. 시원하겠거니 생각했다가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물에 놀랐던 것이다. 물가에 서 있기만 해도 에어컨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소스라치게 만들었다.


다시 전망대로 돌아 나와 출렁다리로 향했다. 전망대 못 미쳐 옛 두타사 터가 있었다. 두타연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곳으로 아직도 축대와 기와조각이 더러 보였다. 두타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되어 있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 학자였던 이만부가 방문했던 1723년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타소 앞 바위에 잠시 앉았다. 바위틈 사이에 원추리가 피어 있었다. 가만히 잎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개구리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이 하도 생동감 있어 한동안 바라보았다.


계곡을 따라 아래로 걸어갔다. 숲 사이로 난 길은 출렁다리로 이어졌다. 두타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 있었다. 이곳에서 보니 마치 남녀가 키스를 하는 듯한 두 바위 사이로 거침없이 폭포수가 쏟아졌다. 물살은 잠시 소용돌이를 치더니 계곡 아래로 유유히 흘러갔다.


두타연, 물빛마저 산빛을 닮아 푸르더라

출렁다리를 건너 연어처럼 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흐르는 강물처럼 느긋하게, 깊은 골짜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박타박 한 걸음씩, 더는 욕심 없이 걸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일까. 사람마저 드물다.

혼자 물가로 내려갔다. 이 물을 거슬러 오르면 내금강으로 이어지리라. 물이 뿜어내는 냉기에 땀을 훔치고 흐르는 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곳은 물빛마저 산빛을 닮아 푸르다.

갑자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류 쪽은 벌써 한바탕 비가 쏟아지는지 계곡물이 이내 흙탕물로 바뀌었다. 쪽빛 물빛은 사라지고 누런 황토로 물색이 바뀌었다.


박수근의 그림 항아리가 DMZ에 묻혀 있다고 했다. 부인 김복순 씨가 중동부전선 DMZ일대를 지나다 남편의 그림 수백 편을 항아리에 넣어 묻었다는 것이다. 박수근의 젊은 시절 그림은 상당히 귀한 편이라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 보물들을 찾으려면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야겠지. 아니 통일 자체가 최고의 보물이 아닐까, 하나 된 한반도 그림이 최고 비싼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여행팁
두타연은 내금강에서 발원한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인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의 지류로 동면 비아리와 사태리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최대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두타연은 민통선 이북지역으로 최소 1일전 오전 12시 전까지 양구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예약신청자에 한해 1일 2회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출입가능하다. 입장료는 2,000원이고 출발시간 20분 전에 도착해야 한다.

지난 8월 5일부터 양구군은 백석산 전적비 앞 두타연 입구에 관광안내소를 설치했다. 예전 두타연에서 다소 먼 읍내 명품관에 집결하여 출발했던 불편이 해소되고 가까운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하게 되었다.(문의: 양구군청033-480-2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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