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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산사로 가는 잊혀진 간이역, 다솔사역을 찾아

 

 

 

 

산사로 가는 잊혀진 간이역, 다솔사역을 찾아

 

딱히 무엇 때문에 간 것은 아니다. 산사로 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찾은 곳이 다솔사역이었다. 어쩌면 폐역이 되어 그 쓸쓸하고 황량한 것이 그때의 내 마음과 꼭 같아서 위로라도 해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아 다솔사역을 찾아가는 길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우리의 도로사정도 길을 찾는데 혼란을 주었다. 굴다리를 지나니 휑하게 너른 공터가 나타났고 두 줄기 선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얼핏 보아서 선로는 녹슬었지만 아직도 기차가 쌩쌩 지나가는 듯 선로 위는 번득거렸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늙은 장수가 적을 압도하는 그 형형한 눈빛이 살아 있듯 선로는 마지막까지 제 있는 힘을 짜내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역사로 향했다. 예전에는 번듯한 역 건물이 있었으나 철거된 지 오래됐다. 대신 버스정류장 형태의 간이 역사가 남아 있다. 다솔사역은 인근에 있는 다솔사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으로 1968년 2월 8일 보통역으로 처음 영업을 시작하였다.

 

 

역은 코스모스역으로 잘 알려진 북천역과 완사역 사이의 경전선에 있다. 경전선 순천~진주 구간을 개통하면서 동시에 개통되었다. 1986년 10월 16일에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 간이역이 되었고, 2007년 6월 1일부터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 되었다.

 

 

시인 고은은 자전소설 <나의 山河 나의 삶>에서 하동을 찾아 장바닥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서 다솔사로 걸음을 놓았다. “정작 다솔사는 다솔사역에서 멀다. 그 먼 산길을 터벅터벅 올라가면 퇴락할 대로 퇴락한 고찰이 있는데 그것이 다솔사이다.”

 

 

시인의 말대로 예전에는 다솔사를 가기 위해서 대개 다솔사역에서 내려 제법 먼 길을 걸어가거나 아니면 사천과 다솔사를 오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대학시절 다솔사를 가기 위해 진주역에서 경전선을 타고 다솔사역에서 내린 적이 있었다. 역에서 다솔사까지는 제법 먼 거리,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걷기로 했다. 걷다가 지치면 마을을 기웃거리고, 그도 지치면 길가 옆 저수지에 올라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곤 했었다. 그때는 왜 그리 지겹던지.... 다솔사 산문에 다다라서야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고 억울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었다.

 

 

간이 역사는 휑하였다. 먼지가 소복이 쌓인 텅 빈 허름한 역사에는 형광등 하나, 액자 하나가 전부였다. <완사역 열차시각표>. 지금은 다솔사역이 없어지면서 인근 완사역에서 기차를 타야한다. 이곳을 지나는 기차는 무궁화호, 하루에 네 번 완사역에서 탈 수 있다.

 

 

선로를 따라 걸었다. 꽃이 진지 오래여서 오히려 다행이다. 이 쓸쓸한 폐역에 꽃잎이라도 바람에 나부꼈다면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 묶었을까. 꽃이 떨어진 자리, 잎이 짙어간다.

 

 

역사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대한통운’이라고 적힌 낡은 창고가 보인다. 솟을지붕을 머리에 인 창고도 폐역과 더불어 쓸쓸하다. 드러누워 하늘을 보았다. 봄날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선로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아련히 들리던 쇳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기차는 지나가고 나만 남았다. 내 앞을 덜컹덜컹 거리며 지나간 그 자리에 남은 나는 허둥댄다. 기차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기차가 휩쓸고 간 자리, 나의 긴 그림자만 남아 철로를 다독거렸다.

 

 

 

▒ 다솔사역은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봉계리 752-7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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