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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꼭꼭 숨겨두고 혼자만 보고 싶은 강변 풍경

 

 

 

꼭꼭 숨겨두고 혼자만 보고 싶은 강변 풍경

-진주 남강의 숨은 비경을 찾아서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강은 숱한 계곡 지류를 경호강과 덕천강으로 한데 모아 진양호로 흘러든다. 이곳에서 잠시 여장을 푼 물줄기는 동으로 흐르고 흘러 낙동강으로 떨어진다. 흔히 남강을 '진주의 남강'이라 하는데 강이 이처럼 한 지역에 강한 유대를 가진 적은 드문 편이다. 진주의 역사는 곧 남강의 역사인 셈이다.

 

삼봉바위, 해가 바위만을 비추는 순간을 기다렸다

 

예부터 시인묵객들은 남강의 빼어난 풍광을 글로 지었다.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은 일찍이 진주 남강 풍경의 빼어남을 찬사했고 고려 중기의 문인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진양(진주)은 옛 도읍 터로 아름다운 산천은 영남의 제일이다', 고 했다는 말은 우연히 아니다. 누구라도 남강 변 어디든 잠시 서 본다면 그 강변 풍경에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높은 산, 깊은 골에서 흘러온 남강 물줄기는 곳곳에 비경을 만들었다. 쏜살같이 빠르게 흐르는 그 속내와는 달리 물줄기는 너무나도 평온하게 유유히 흘러간다. 강물 속은 밖을 빌어 깎아지른 벼랑을 조각해내고 강변의 하얀 모래밭을 토해냈다.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낸 강변 모래밭을 거닐며 한 폭의 그림 같은 벼랑을 올려다보는 맛은 비길 데가 없다.

 

한방 마을에서 건너다본 동지 마을

 

이 아름다운 남강 풍경이 절정을 이룬 곳이 있다. 진주시 대곡면과 지수면, 의령군 화정면 일대가 바로 그곳이다. 그 중 대곡면 대곡리 산길에서 내려다보는 강변 풍경이 단연 으뜸이다. 제법 너른 들을 끼고 흐르던 남강이 이곳에 이르러 산을 만나게 되어 물길이 크게 휘돌아 '물도리'를 만들어낸다.

 

자연스런 모래톱이 잘 살아 있는 남강

 

흔히 ‘물도리’ 하면 안동의 하회, 영주의 무섬, 예천의 회룡포, 상주 경천대 등을 꼽는다. 이곳 모두 강변 경승이라 많은 이들이 찾는다. 오늘 이곳에서 남강을 바라보니 그에 못지않은 풍광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송대산에서 보면 물줄기가 360도로 돌아가는 전형적인 물도리다

 

‘물도리’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뭐니 해도 360도 돌아가는 강물, 하늘을 향해 치솟은 절벽과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톱이다. 그런 면에서 이곳 역시 ‘물도리’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설 수 있음이다. 크게 휘도는 강줄기는 물론이고 하회의 부용대에 버금가는 삼봉바위가 있고, 무섬의 모래밭에 비길 만한 잘 발달된 모래톱이 일품이다. 4대강으로 없어진 경천대의 모래톱을 이곳에서는 자연그대로 볼 수 있다.

 

 

 

이곳의 모래톱은 단지 풍경의 일부만은 아니다. 예전 이 일대는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던 곳이었다가 남강댐이 들어선 후 강을 따라 긴 제방이 높게 쌓여지면서 비옥한 땅이 되었다. 쓸모없던 모래밭은 흙을 덮고 개간을 하여 지금은 각종 작물을 키우는 옥토가 된 것이다. 특히 지수면의 경우 이 강변 모래톱에 장마(긴 마)를 심어 농가 소득에 기여하고 있다.

 

마뿐만 아니라 시금치와 우엉도 대량으로 재배한다. 땅 아래 1m 정도는 모래층인 강변 토질 특성으로 인해 시금치와 우엉이 잘 된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시금치 재배를 하고 있는 땅 바로 아래에 우엉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뿌리를 얕게 내리는 시금치와 땅 아래로 파고드는 우엉이 환상적인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한때 골칫거리였던 땅이 이제는 농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땅으로 변한 것이다.

 

압사리 방면에서 보면 봉우리가 모두 세 개라 삼봉바위라 불린다

 

강가에 우뚝 솟은 삼봉바위는 한눈에 보아다 예사롭지 않다. 지수면 압사리 쪽에서 보면 이 바위가 왜 삼봉으로 불렸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거대한 고분처럼 봉우리 세 개가 평지에 솟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삼봉바위는 인근 주민들에게는 신령스런 바위로 통한다. 해마다 정월이면 마을 사람들은 삼봉바위 벼랑 아래에서 용왕에게 치성을 올린다. 예전 이곳에는 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다.

 

 

 

대곡면 마진리 한실 마을에서 강변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에서 강변 제방을 따라가면 어느새 강이 길을 가로막아 산길로 들어서야 한다. 차가 뒤로 누울 정도로 경사가 심한 길을 그렁그렁 올라가면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안내문은 대곡산성, 대곡 산방, 대곡 대곡(리)의 세 갈래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 ‘산성 찾지 못했음, 길 너무 험함’ 이라고 대곡산성을 안내하는 글 아래 누군가 적어 놓았다. 이 길이 굉장히 험한 건 사실이지만 글과는 달리 500m쯤 가면 폐허가 된 산성이 나온다. 대곡산성은 테뫼식(산 정상부와 일부 계곡을 둘러싼 형태)의 석성으로 ‘송대산성’이라고도 했다.

 

 

삼거리에서 산성 길로 빠지지 않고 곧장 가면 산방마을이 나온다. 이 깊숙한 벼랑 끝 비탈에 마을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오래된 옛집들은 거개 사라지고 이곳에도 전원주택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마을 아래로는 푸른 남강이 넘실거리고 멀리 방어산 자락이 보이니 이만한 풍경도 없겠다.

 

최근에 산방마을에는 전원주택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강 건너로 마을이 보인다. 행정구역상 용봉리인데, 동지, 안계, 용봉의 3개 행정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강마을인 동지와 안계는 ‘동모리’라 불리던 대․소 동지와 삭등, 호노골, 뱃가 등의 마을로 다시 나뉜다.

 

동지 마을 전경

 

 

안계 마을은 예전에 ‘앵기’라 불리었는데, 강변이라 안개를 뜻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마을에서 만난 노인들은 하나같이 모른다고 했다. 다만, 기러기가 많아서 불린 것이라는 기록은 찾을 수 있었다.

 

 

안계 마을 전경

 

가픈 숨을 내쉬는 차를 잠시 세웠다. 강마을을 휘돌아 멀리 첩첩 산주름 너머로 사라지는 강물, 물빛에 감춰진 하얀 모래톱, 제방을 따라 길게 늘어선 초록빛 나무들, 푸른 들을 안마당삼아 산자락 아래 푸근히 안긴 강마을의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지나온 산길이 보일 듯 말 듯하다. 다소 험한 산길이나 풍광은 최고이다.

 

이곳에는 내비게이션도 소용없다

 

강마을 ‘뱃가’는 대숲에 가려 있다. ‘뻔덕’이라고 불리던 ‘뱃가’는 댐이 들어서기 전 홍수가 나면 인근 마을이 늘 물에 잠겨 곤욕을 치렀는데도 물 한 번 들지 않았던 마을이다. 강이 이곳을 크게 휘감아 돌면서 마을이 있는 이곳 언덕을 감싸고 흘렀기 때문이다.

 

뱃가 옛 나루터에서

 

예전 이곳에는 나루터가 있었는데 나루터 주위로 ‘앵기뻔덕’ 장이 섰다. 마을에서 만난 한찬동(88) 할아버지는 뱃가 마을의 장터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장사꾼들과 노름꾼들로 북적댔던 장에는 진주에서 기생들이 모여들 정도로 한때 번창했다, 고 한다. 당시 위로는 진주까지, 아래로는 의령 정암나루까지 뱃길이 이어졌다.

 

 

 

산방 마을을 내려와 뱃가가 건너다보이는 옛 나루터에 섰다. 강은 고요했다. 낯선 이를 보고 짖던 개도 울음을 멈추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 괴불주머니는 노랗게 피었다. 나의 봄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곳은 전형적인 물도리로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남강의 숨은 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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