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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폐사지에서 시인의 하늘을 보다-보원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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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페사지는 그 휑한 느낌이 좋아 종종 찾는다. 가득 차 있는 절집보다 옛 흔적들만 바람에 나뒹구는 곳. 스님들은 떠나고 구름만 남은 곳. 쓸쓸함이 높아 햇살만 비추는 곳. 터만 남아 더는 비울 것이 없는 곳. 깊은 적막이 소리를 만날 뿐 아무도 찾지 않는 곳. 한 줌의 바람에 손을 씻으면 그만인 곳. 그곳이 폐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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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옛 절터의 흔적을 밟는다. 노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던 여주 고달사터, 나른한 봄햇살을 끝내 담지 못했었다. 비가 그쳐 물안개가 화산을 오르던 합천 영암사터, 물안개를 눈에 담는 걸로 만족해야 했었다. 석등 하나, 탑 하나, 깨어진 부재들, 무성한 잡초들이 폐사지의 모습이었다. 애초에 무언가를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부질없는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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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그 때가 언제였을까.
뿌연 연기가 하루도 쉬지 않았던 어느 해 3월, 대학 초년생은 교양동에서 노교수의 시를 듣고 있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노교수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창문 사이로 비켜선 햇살에 번득거렸다.
노교수님이 앞을 잘 보지 못한다는 건 그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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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노교수님의 시를 통해 하늘을 처음 볼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본 건 먹구름이었다.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인해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종로의 한 극장에서 어느 시인이 숨졌다는 쓸쓸한 이야기만 난무하였다. 친구들은 어디론가 하나 둘 사라지고 홀로 남게 되었다.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던 어느 해 겨울, 눈이 퍼붓는 날이었다. 낯선 사내들에게 두려움에 떨며 끌려 갔다. 내가 본 건 한 평도 안되는 천장뿐이었다. 아니 그제서야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두 번의 겨울을 넘기고 나서야 나는 진정한 하늘을 마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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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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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불을 나오다 문득 하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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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

 보원사지는 서산마애불 입구에서 1km 남짓 가면 된다. 용현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확 트인 널찍한 지대가 나온다. 부처가 머무는 곳이라는 상왕산과 가야산의 한 자락에 보원사지(터)가 있다. 절의 내력에 관해서는 한창 발굴 중인 결과가 나와야 좀 더 소상히 알 수 있겠다. 서산마애불의 본사라고도 하고, 통일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로 여겨지나 어느 하나 정확한 것은 없다. 다만 고려 초 광종에 의해 국사로 임명된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있어 고려 시대에는 번성했다는 걸 엿볼 수 있다. 아직도 한창 발굴 중인데, 중요 문화재로는 당간지주, 오층석탑, 석조,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폐사지에 있다.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가 무너진 절터의 여름 정취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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