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사에 머물다

삼남에서 풍광 으뜸인 항일정신의 도림사 계곡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곡성 기차마을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홀로 길을 나섰다. 아침에 다섯살 난 딸아이가 "아빠. 혼자가. 우린 안 가."하는 게 아닌가. 허기야 매번 산으로, 들로, 섬으로 다니니 아이 입장에선 재미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우리 애기 좋아하는 칙칙폭폭이 타러 가야겠네" 하자 딸아이는 말 끝나기가 무섭게 따라 나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계곡을 따라 거닐어 본다. 동악산(해발 735m)의 남쪽 골짜기를 흐르는 이 계곡은 너른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가 선경을 자아낸다. 청류동계곡이라고도 불리며 제1곡 부터 9곡까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부터 " 수석水石의 경이 삼남三南에서 으뜸"이라는 계곡가에 도림사가 자리하고 있다. 기암괴석과 넓고 평평한 반석 위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새가 둥지를 틀듯 절집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높은 축대 위 공중에 걸려 있는 해우소가 조금은 아슬아슬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도림사는 헌강왕 2년인 876년에 도선국사가 중창을 하였다. 이때 도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불렀다고 한다. 화순의 유마사처럼 절의 규모도 작고 계곡가 절집 분위기도 비슷하다. 절 입구에는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화백이 쓴 '오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절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산길을 잡았다. 맑은 계류가 쉬임 없이 흐르는 늦봄의 정취에 취해 본다. 노인 두 분이 앞서 숲길을 산책한다. 널찍한 암반 위로 떨어지는 폭포가 앙증맞다. '해동무이海東武夷'라는 글발이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너른 바위에도, 작은 바위에도 곳곳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곳 계곡이 너무 수려하여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다고 하나 계곡 바위를 가득 메운 글발들로 정신이 없다. 이유는 구한말의 우리 역사와 연관이 깊다. 이곳 도림사 일대는 태안사와 더불어 위정척사운동의 발원지이자 항일독립운동의 호남내 최대 거점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다리 건너면 '사무사思無邪'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시경에 나오는 말인데, 고종황제가 이곳 유림들에게 하사한 어필이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 쓰러져가는 왕조의 비장함마저 느껴져 숙연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림사 해우소

계곡의 암반에는 구한말 조병순이 일곡부터 구곡까지 일일이 새겨 놓았다고 하나 일부는 깨어지고 일부는 도로 확장으로 훼손되었다고 한다. '청류수석동악풍경淸流水石動樂風景'이라고 새겨진 글발을 보면 이곳이 청류동 계곡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원효대사가 도림사를 창건할 때 온 산의 풍경이 음률에 동요되어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동악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림사 응진전

너럭바위 한 켠에는 '단심대'라고 새겨진 글씨가 있다. 나라를 찾으려는 우국충정이 바위면면에 느껴진다. 계곡가에는 노송 한 그루가 줄에 묶여 힘겹게 서 있다. 20여년 전 겨울 폭설에 죽은 소나무를 대신하여 2007년에 곡성중앙초등학교 동문회를 중심으로 옛 모습과 닮은 소나무를 찾아 새로이 심었다고 한다. 소나무 이름도 '단심송'이라 지었다 하니 옛 우국지사들의 마음이 여기에도 묻어나는 듯 하여 흐뭇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재가 부족하여 암반 위에 새겨진 글씨의 의미를 일일이 알 수는 없었으나 옛 지사들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자 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류동게곡과 복원된 단심송

숲과 계곡, 너른 반석, 우거진 노송, 맑은 물소리, 솔잎에 부는 바람소리. 이곳을 가히 삼남 제일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올 여름 도림사 청류동계곡에서 역사의 흔적을 느끼면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 계곡은 전라남도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크랩 하러 가기 (http://blog.daum.net/jong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