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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1박2일이 놓친 하조대의 초겨울 낭만 풍경


 

1박2일이 놓친 하조대의 초겨울 낭만 풍경


하조대 가는 길은 예전의 한가로움이 없었다. 어쩌면 입구에 버젓이 걸려 있는 ‘1박2일 촬영지’라는 현수막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하조대 일대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였다. 도로는 이미 마비 상태였다.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하조대를 향해 걸었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1박2일’의 긍정은 누구나 인정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든다. 예능 프로에 다큐를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지만 유서 깊은 장소가 한낱 오락물의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감각과 쾌락을 줌과 동시에 감동과 울림이 있기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오히려 ‘남자의 자격’에서 여행자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역설을 보았다.



 

산책로는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이미 소통이 불가능했다. 한참을 기다려서 한 발 한 발 내딛어야 할 정도였다. 그 옛날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잠시 은거하였다 하였는데 오늘은 그런 한갓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이름 붙였다는 ‘하조대’의 바위글씨만 선명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인 이세근이 쓴 글씨다.

 

정자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다. 사진 찍는 이들의 고함소리마저 바람에 묻혀버린다. 자연은 늘 인간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넘어 자연까지 해치는 수는 있어도.... 일출로 유명한 벼랑 끝의 소나무는 햇빛을 바라보며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하조대는 동해가 삼면으로 보이는 돌출된 암반 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경치도 빼어나거니와 탁 트인 바다가 눈을 시리게 할 정도이다. 초겨울에 접어든 바다는 이미 낭만을 싣고 뭍으로, 뭍으로 밀려왔다.

 

조선 정종 때 처음으로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부침을 겪은 후 1940년에 팔각정을 건립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 1955년에 다시 육각정을 세워 재건과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록 세월의 흔적은 켜켜이 쌓이지 않았지만 솔숲 사이에 앉은 정자는 주변자연과 잘 어우러져 제법 운치가 있다.

 

바닷바람에 갈대마저 누울 즈음 정자를 내려왔다. 절벽 사이에 자리한 찻집이 절묘하다. 느긋하게 차라도 한 잔 할까 생각했으나 곧장 등대로 향했다. 등대로 가는 짧은 길도 붐비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서로 눈인사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길을 양보한다. 하조대에서 무엇을 알고 느끼고 가는가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서로에 대한 따스한 배려는 엇비슷하지 않겠는가. 이리 보면 1박2일이 오락 프로의 특성상 우리의 명승을 제대로 소개하지는 못해도 사람들의 좋은 길라잡이는 되는 듯하다.

 

등대로 가는 길에서 여행자는 잠시 멈추었다. 기암절벽이 우뚝 솟은 곳에 솔숲에 안긴 정자가 멋들어진 앉음새를 하고 있어서였다. 햇빛이 정면으로 비춰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그 풍광에 매료되어 한참을 서 있었다.

 

등대로 가는 길은 곳곳이 절경이었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은 하늘로 솟는가 싶으면 어느새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파도마저 시샘을 하여 벼랑에 오르기를 몇 번,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가 야속한 지 이내 물러간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졌다. 등대는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햇빛마저 빛을 바랜 이곳에는 거센 바람과 파도만이 머물렀다. 사람들은 강풍을 견디며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얼굴은 이미 바닷빛으로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좀 비키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사진의 주인공은 금세 바뀌었다.

 

돌고래 조형물도 관광객들에게 인기였다. 동해를 멀리 바라보는 돌고래의 모습이 애잔하다. 카메라가 강풍에 심하게 흔들려 여행자는 등대를 떠났다. 군인 휴양소가 있는 모래해변의 아름다움에 잠시 홀렸다.

 

초겨울 하조대해수욕장은 갈매기들의 천국이었다. 바다로 날아가는가 싶더니 이내 여행자의 머리 위를 맴돈다. 해변 바위섬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했다. 번잡한 일상을 벗어 던지고 초겨울 바다의 낭만을 걷고 있었다.


하조대는 2009년 12월 9일 명승 제6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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