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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지리산 삼성궁, 단풍 아래 천제를 지내다.


 

지리산 삼성궁, 단풍 아래 천제를 지내다


사람들은 한때 나를 ‘김산’이라 불렀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에 나오는 ‘김산’이라는 인물을 좋아한 것도 한 이유지만, 당시 여행자는 지리산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17살 때 20kg이 넘는 배낭을 지고 3박 4일 동안 혼자 중산리에서 뱀사골까지 종주를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연하천, 세석, 장터목 등 대개의 산장들에서 야영이 가능했기 때문에 텐트와 침낭 등으로 인해 짐은 무거웠다. 사춘기 소년에게는 다소 버거운 일이었지만 지금도 아주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후 지리산 골짜기와 능선을 넘나들며 산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청학동을 처음 찾은 것도 그때의 일이다. 감성이 풍부했던 그 시절 청학동은 하나의 이상향으로 뇌리 속에 간직되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태평한 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고 운다.”는 전설의 새, 청학이 살고 있으리라는 상상도 태평성대의 이상향 청학동 가는 길을 부추겼다.

 

<정감록>에서는 청학동이 “진주 서쪽 백리에 있으며 석문을 거쳐 물 속 동굴을 십리쯤 들어가면 그 안에 신선들이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이인로, 조선시대의 김종직, 김일손, 유운룡 등이 청학동을 찾아 나섰으나 이인로는 끝내 청학동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하였고 김종직은 피아골을, 김일손은 불일폭포 일대를, 유운룡은 세석평전을 청학동이라고 하였으나 누구 하나 확신을 하지 못했다. 

 

사실 예전에도 청학동이라고 불리는 곳은 지금의 청학동 말고도 지리산 일대에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하동 묵계리의 청학동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이후 외부 세상과는 다른 고유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청학동이 들어선 자리가 전설로 전해지는 골짜기와 통한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청학동을 지나 삼성궁 입구에서 내렸다. 해발 800m 정도에 자리하고 있는 청학동에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삼성궁이 있다.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건 청학폭포다. 형형색색의 단풍 숲 사이로 암반 위를 미끄러지듯 타고 내리는 계류가 시원하다.

 

입구에서부터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늘 여행은 행복할 것 같다. 문제는 비다. 옷이야 젖으면 갈아입으면 그만이겠지만 빗속에서 사진을 찍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카메라에 천을 두르고 조심스럽게 촬영에 임했다. 맑은 날보다 몇 갑절이나 힘들다.

 

삼성궁으로 가는 길은 다이내믹하다. 집채만 한 바위 사이를 걷는가 싶으면 어느새 굴이 나온다. 굴을 통과하면 하나하나 손으로 쌓았을 돌담이 나타난다. 석굴의 천장에는 화가의 그림이 있다. 돌담하며, 석굴하며, 조각하며, 그림 모두 혼이 담겨 있다.

 

우의를 입었지만 옷은 이미 젖어 있었다. 카메라를 꼭 감싸고 걷는데 다시 석굴이 나왔다. 굴 사이를 빠져 나오는 순간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며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그 옛날 정감록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곳이 선계가 아니겠는가. 물 속 동굴은 아니더라도 석문을 거쳐 동굴을 십리쯤 가면 나온다는 그 설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삼성궁은 영신대에서 흘러내린 맥이 만든 삼신봉 아래 약 해발 850m에 자리하고 있다. 한풀선사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솟대(돌탑)를 쌓아 고조선의 소도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삼성궁이라는 이름은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궁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천제가 열리는 이날(24일), 삼성궁 일대는 사람들로 붐볐다. 예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궁 입구에 있는 징을 세 번 치면 안에서 수행자가 나와 맞이하고 옷 또한 고구려 복장으로 갈아입어야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삼성궁 일대를 돌고 있는데 풍물 소리가 들린다. 천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흰옷 등으로 복식을 갖춘 이들이 건국전 안으로 들어서고 자리를 잡자 천제가 시작되었다. 미처 건물 안에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처마 끝을 빌려 밖에서 천제에 참석하였다. 이날 천제는 비로 인해 약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했다.

 

이화세계라고 적힌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그 깊숙한 곳 삼성궁에서 열린 천제를 보며 민족의 얼과 뿌리를 되찾아 민족혼을 일깨우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 삼성궁에서는 매년 시월 중순부터 말까지 보름 정도 열리는 단풍제 기간 내에 천제날을 받아 개천대제(천제)를 지냅니다. 보통 주말을 이용하여 토요일에 전야제를 하고 일요일에 천제를 올립니다.

※ 아래 사진은 천제의 모습입니다. 상세한 설명보다 사진으로 천제의 엄숙함을 말하는 게 좋을 듯하여 그냥 올립니다. 천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삼성궁 홈페이지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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