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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소백산맥의 장관, '축서사'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소백산맥의 장관, '축서사'

 - 부석사 못지않은 장쾌한 전망, ‘축서사’


 

단풍에 물든 한적한 산사를 찾다.

 산 높고 골 깊은 경북북부지역은 어디를 가더라도 가을 단풍이 절정이다. 전날 청량산의 인파에 놀란 가슴은 한적한 곳을 찾아야만 진정이 될 듯하였다. 어디를 갈까. 가슴이 확 뚫리는 장쾌한 전망을 가진 곳은 없을까.


 부석사를 언뜻 떠올렸지만 이미 십여 번을 넘게 간 곳을 또 간다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아내도 부석사가 좋겠지만 이제 그 고유의 한적한 맛이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그래, 어디 보자. 한적하면서도 가을 단풍이 불태우는 곳, 게다가 장쾌한 전망이 있는 곳....... 오랜 고민 끝에 한 곳이 떠올랐다. 바로 축서사였다.


 

축서사 가는 길에서 만난 건 붉은 사과밭과 한적한 시골풍경뿐이었다.

 축서사는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에 있다. 축서사로 이동하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이곳도 인파로 붐비지는 않을까. 산속까지 길이 뻥 뚫려 경관을 해치지는 않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은 오래지 않아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좁은 농로 같은 길이 나 있었지만 우리 외에는 오르내리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길가에는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청송 사과가 유명하지만 이곳 봉화에도 곳곳에서 사과를 볼 수 있다. 사과의 붉기가 시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너무나 선명하여 아이는 자꾸 욕심을 낸다. “아빠, 하나 따면 안 돼?” 애써 아이를 달래며 가을 산사 깊숙이 들어갔다.


 점점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멀리 산 중턱에 축서사가 보인다. 사과는 점점 얼굴을 붉히고 산은 온통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릴 즈음 축서사에 도착하였다. 인적은 없는데 주차장에서 내리니 바로 절집이라 약간은 저어하였다.


축서사가는 길은 부석사의 초입처럼 온통 붉은 사과밭이다.

누각 아래의 층계를 오르면 문수산의 붉은 단풍과 대웅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부석사를 쏙 빼닮은 장쾌한 전망에 감탄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에서 긴 탄식이 나왔다.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소백산맥의 장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부석사의 장쾌함에 절대 뒤지지 않을 멋진 전망이었다. 새로 지은 전각들로 인해 산사 특유의 고졸함을 다소 느낄 수 없었지만 시원한 조망과 문수산의 단풍은 가히 으뜸이었다.


 축서사. 높이 1,206m의 문수산 중턱 800m의 산골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문수보살에서 이름을 딴 문수산은 오대산 상원사와 함께 4대 문수성지 중의 하나이다. 축서사에서 보는 산 능선들의 장쾌함이 부석사와 닮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도 신라 문무왕 1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부석사 못지않은 소백산맥의 장쾌한 전망이 펼쳐진다.

 

의상대사의 숨결을 따라 산사를 오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물야에 있던 지림사에 머물고 있는데, 산에서 한 줄 기 빛이 뿜어나와 올라가보니 비로자나석불이 있어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때의 석불은 아니지만 지금도 보광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보탑성전의 층계를 오른다. 세월의 연륜이 덜한 전각의 생경함은 있지만 오르는 길은 흡사 부석사와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사리탑 뒤로 형형색색의 단풍이 대웅전과 함께 등장한다. 근래에 세운 탑이지만 조각이 섬세하다. 대웅전은 꽤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의 석축도 부석사의 석축과 닮아 있다. 새로 지은 전각이 다소 큰 느낌은 있지만 경내는 정갈하다.


 대웅전에서 삼배를 한 후 옆마당을 보다 흠칫 놀랐다. 스님이 새벽에 쓸었을 흙 마당에 빗질 자국이 너무나 선명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여백에다 담담하게 물결만 그리고 나머지는 종이의 질감에 맡긴듯한 그림 같았다. 정갈해진 마음에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들이켰다. 가을 기운이 온몸에 들어오는 듯하였다.


 보광전으로 향했다. 석등(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8호)과 의상대사가 석불의 빛을 보고 찾아내었다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995호)을 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 석불은 의상대사 당시인 7세기의 것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겠지만 나무광배가 받치고 있는 불상은 고행 정진하는 수도승의 모습을 연상시켜 숙연하게 한다.


대웅전 옆 마당은 빗질 자국이 선명하다.

 석등(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8호)에서 일망무제의 소백산맥을 사진에 담는 아이
 
 의상대사가 석불의 빛을 보고 찾아내었다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995호)

 

붉은 단풍은 가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전각 앞에 서니 대웅전에서와 마찬가지로 뒤로는 문수산의 단풍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부처의 바다처럼 산 능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축대 끝에는 석등 한 기가 있어 오랜 세월동안 소백산맥의 장대한 능선과 함께 해왔음을 알 수 있겠다.


 내려오는 길은 절 옆으로 난 길을 택하였다. 스님 한 분이 가을 단풍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붉은 단풍, 푸른 하늘, 흰 구름, 초록의 능선. 가을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