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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도솔천 따라 도솔암, 낙조대의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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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그리움에 도솔암을 오른다. 붐비는 인파와 이따금 먼지를 일으키는 차들이 봄의 정취를 깨뜨리곤 하지만 왼편 산길에 들어서니 그 소리마저 아득하게 들려 온다. 대개의 암자가 신자를 위해 산도로를 내어 통행을 돕곤한다. 절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암자는 암자다운 맛이 있어야 제격이다. 암자로 가는 이유는 암자 그 자체보다는 가는 길의 매력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 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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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가는 길에서 만난 불상

도솔천을 따라 한참을 가도 도솔암은 나타나지 않는다.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지만 계곡의 깊이는 가늠할 수가 없다. 끝없이 구비구비 걸어가는 길. 물에 비친 아름다운 초록 물그림자. 누군가는 물수제비를 뜨고 등산에 지친 이는 계곡에 발을 담근 채 부질없는 세월을 흘러 보내고 있다. 끊임없이 울어대는 산새소리에 봄의 나른함이 밀려온다. 저 푸르름에 몸을 던지고 싶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 위의 궁금증과는 달리 속내는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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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길 한 켠의 자연석 위에 불상 하나가 새겨져 있다. 신라의 진흥왕이 먼 길을 걸어 백제땅에 와서 수도할 때의 모습이 저랬을까. 고요한 숲, 한적한 길에 깊이 침잠하는 부처의 모습은 평온함 그 자체이다. 길 위의 사람들이 세속의 때라도 벗어두고 가라는 듯 돌부처는 오가는 이들을 달관한 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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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굴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길이 10여 미터, 높이 4미터 정도의 동굴이다.

신라의 진흥왕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역사적 사실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미당의 질마재처럼 무한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신동엽 시인이 백제를 시의 모토로 주로 사용하였다면 이곳 출신인 미당은 신라에 애착을 보였다. 두 사람의 삶 또한 그들이 보인 두 나라의 운명과 궤를 같이하는 듯 하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진흥왕이 왕위를 내어주고 이곳 선운사 뒤의 암굴에서 수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륵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와 자기에게 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굴을 '열석굴'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진흥굴'이 있는 산에 중애공주를 위해 중애암을 세우고 도솔왕비를 위해 만월대 밑에 도솔암을 세웠다고 한다. 진흥굴 근처에는 수령 600여 년이나 되는 잘생긴 반송 한 그루가 있다. 진흥왕이 죽은지 오래된 후 나서 자란 반송이지만 왕의 일산처럼 신성한 동굴 입구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이 고장의 옛이름인 장사현을 본 따 '장사송'이라 하기도 하고 '진흥송'으로도 불린다. 천연기념물 제354호이다.
 
불교에 심취했던 진흥왕이 여기에서 수도를 했는지의 사실 여부는 차후 사료들을 뒤져보고 난 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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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빠져 들어가는 계곡길 앞에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이 너른 터에 이르자 시야가 탁 트인다. 조팝나무, 지면패랭이 등 각종 봄꽃들이 산벚꽃과 자연스레 어울려 있다. 굳이 조성을 하지 않아도 천연의 꽃밭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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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가는 길의 자연생태공원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길을 나섰다. 구부구비 굽어치든 계곡길이 끝날 무렵 거대한 낙조대 바위 아래로 도솔암이 보인다. 천인암의 기암 절벽이 건너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도솔암은 본래 상하 동서남북의 여섯 도솔암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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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으로는 불전과 요사채 하나 딸랑 있지만 절집 분위기는 그윽하다. 암자 뒤로 난 산길로 접어들면 나한전이 있고 그 옆에는 미륵비결 설화가 있는 거대한 마애불이 칠송대 바위벼랑에 새겨져 있다. 다시 가파른 칠송대 암반 층계를 오르면 상도솔암이라 불리는 내원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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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진흥왕이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도솔암 중의 그 하나로 추측된다.

벼랑 끝에 간신히 터를 잡은 내원궁에는 고려 후기의 불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지장보살좌상이 있다.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불상으로 귀족적인 불교미술의 일면이 잘 표현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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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궁이 올라앉은 높이 40여 미터의 칠송대 바위벽면에는 고려시대의 거대한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동학도의 비결 탈취 이야기가 아득히 전해오는 이 마애불은 대담한 선각, 무게감 있는 얼굴표정들로 보아 고려 초 지방호족이 조성한 걸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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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불암(칠송대) 마애불 고려 초 호족들이 조성한 불상으로 여겨진다.
40여 미터의 벼랑에 17여 미터로 새긴 거대한 마애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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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솔암 내원궁 마애불이 조성된 칠송대 바위 벼랑에 전각 한채만 딸랑 있다.
도솔암에서 보는 낙조대는 가히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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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에서 선운사 가는 호젓한 숲길

상도솔암인 내원궁에서 바라보는 낙조대는 가히 선경이다. 천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산사람들이 위태위태해 보이기도, 신선같이 보이기도 한다. 산 높이가 370여 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바다에서 곧장 솟은 산이라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시커먼 암반 사이로 핀 산꽃들과 짙은 녹음이 낙조대를 한층 더 아름답게 한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낙조대는 도솔암에서 용문굴을 지나 쉬엄쉬엄 올라가면 될 정도의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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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조대의 비경

낙조대에서 상도솔암을내려다보는 풍경도 일품이다. 바위벼랑 위에 아슬아슬하게 앉은 내원궁은 공중 누각처럼 하늘 한가운데에 떠 있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품에 인간의 체취까지 자연스레 묻어난 곳이 바로 낙조대와 상도솔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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