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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사람

시장은 파해도 사람냄새 물씬 나는 남도 조성오일장

 

 

 

 

 

시장은 파해도 사람냄새 물씬 나는 남도 조성오일장

 

조성면에 들어섰을 때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순천, 벌교 가는 2번 국도와 국토의 막내 고흥반도로 쑥 빠지는 77번 국도다.

 

 

국도 2호선을 넘자 면소재지다. 농협 앞에 옷가지를 늘어놓고 파는 난전이 있는 걸로 보아 장날인 모양이다. 3일과 8일에 열리는 조성오일장이었다. 오후 두 시가 넘었으니 이미 파장일 터, 아주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사내가 가리키는 대로 바로 건너편 장터로 갔다. 장터는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장터 건물은 거의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장꾼들은 짐 챙기느라 분주했다. 간혹 아직 자리를 접지 못한 장꾼들이 있었는데 대개 생선과 해산물을 파는 어물전이었다.

 

 

 

애당초 시골장은 일찍 서고 일찍 파하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음에도 걸어서 느릿느릿 오다 보니 다 늦은 오후의 파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보시오. 우리 사진 좀 찍어주소.”

 

얼굴이 불콰한 사내 셋이서 다가온다. 한눈에 봐도 넉살 좋게 생긴 중년의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방송국에서 왔소이. 이 성님이 이곳 토박이인디, 물어볼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소.”

 

예당에 산다는 사내가 반죽 좋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이곳 조성면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혁재(60) 씨는 예전 번성했던 조성장을 기억했다. 당시만 해도 인근 고흥군 대서에서도 조성장에 올 정도로 시장은 붐볐다고 한다. 대서 사람들은 철도와 버스가 자주 있는 이곳 조성장을 주로 이용했고 학교도 이곳 중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지금은 딱히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겨우 생색만 낼 정도로 작은 시골장이지만 예전엔 곡창지대라 싸전이 제법 번성했다는 것이다.

 

 

요즈음 조성의 특산물로 미니토마토와 다래를 들었다. 특히 다래는 인근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단다. 예전의 장터는 지금의 자리에서 조금 역 쪽에 가까웠는데, 85년쯤 옮겨왔다고 했다.

 

 

예당에서 왔다는 사내가 다시 꼬치꼬치 캐묻더니 명함을 달란다. 경전선 연재 중이며, 오늘은 예당역에서 조성역까지 걸어오면서 취재를 했고, 다음 주에는 득량역일대를 갈 거라는 말에 그제야 질문을 그치며 자기들 이야기도 실어달라며 사진을 요청했다. 찰칵~

 

 

사내는 함바집을 가리키며 거기를 꼭 촬영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장날마다 꼭 선다는 함바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고 밖의 햇살이 너무 강한데다 빛이 들어올 공간이라곤 양철로 된 출입문밖에 없어 안은 대낮인데도 한밤중처럼 어둑어둑했다.

 

 

 

이옥님(70) 할머니와 정병기(73) 할아버지가 오일장이 열리는 장날마다 함바집을 운영해오고 있다. 벌써 23년째라고 했다. 이곳에는 장날마다 밥을 파는 함바집이 두 군데 있는데 서로 붙어 있는 한 건물이다.

 

 

 

옆집 함바집 할머니가 이야기를 거든다.

 

“국밥 같은 건 없고 정식이여. 정식. 된장국이나 시래기국에 철따라 12가지 반찬이 나오제. 맛나부려. 특히 젓갈은 끝내주제.”

“모두들 마이 도와주니께 많이 파는 거라. 예전에는 장날이면 막걸리 대여섯 말을 예사로 팔았제. 지금은 소주나 막걸리 몇 병이지만....”

 

정병기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조성 토박이, 할머니는 시집온 지 49년째란다.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그거 뭐 하게, 라고 말씀은 하시면서 싫지는 않은 내색이었다.

 

 

 

 

장터에서 38년째 어물을 파고 있는 박영숙(68) 할머니는 인상이 좋으시다.

 

“예전엔 별 게 다 있었지라. 바지락, 꼬막, 새조개, 낙지가 수북이 쌓였제. 사람들이 많아 북적북적해서 걸어도 못 다닐 정도였제. 지금은 바다가 오염되어서 볼 수가 없단 말이시.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올해는 특히 흉년이여.”

 

 

 

파장에 겨우 남아 있던 어물전도 막판이다. 쟁반에 수북이 쌓은 키조개 관자를 단돈 만 원에 가란다. 장어를 손질하던 아저씨는 아직 장어가 손에 익지 않는다면서도 손몰림이 날렵하다. 그의 손놀림에 장어는 금세 붉은 맨몸이 된다.

 

 

 

백장어로 불리는 뱀장어는 징글맞을 정도로 크다. 다 큰 뱀장어는 바다로 돌아가는데 이때 몸이 은색을 띠어 은색장어라고도 한다. 장터 여기저기서 방송국에서 나왔냐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남도의 작은 시골장에서 볼 수 있는 순박한 풍경들이다. 비록 장은 파했지만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남도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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