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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수학여행 필수코스 통일전망대를 가다




평소대로 해. 아님 군인이 잡아가!
-안개 자욱한 통일전망대 가는 길

화진포에서 대진항을 지나니 길은 외길이다. 이대로 쭉 가면 휴전선 너머 북녘 땅까지 갈 수 있으리라. 내쳐 달리고 싶었지만 출입사무소에서 제지를 했다. 이곳에서 출입수속을 밟고서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잠시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햇볕이 쨍쨍하다. 통일전망대 출입신청을 위해 출입사무소에서 내렸다. 번거로운 건 사실이지만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고서는 출입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멀고도 멀구나! 통일전망대

신청서에 인적사항과 차량에 대해 적고 나니 곧장 안보교육장으로 가라고 했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착한 양처럼 교육장으로 갔다. 마치 민방위교육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 알싸한 느낌이 끈적거렸지만 자리에 앉았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빨간 완장을 두르고 뿔 달린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소 싱거울 정도로 밋밋한 교육은 약 8분 동안 진행되었다.


교육이 끝나자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자신이 가져온 차에 올랐다. 개별출발은 되지 않고 30분마다 지시에 따라 출발해야 했다. 도로는 한산했다. 이따금 보이는 군부대차량만이 이곳이 분단의 최전선이라는 걸 일깨워주었다.


평소대로 해. 아님 군인이 잡아가

대전차 방어에 쓰이는 옹벽이 금방이라도 길을 덮칠 듯 위협을 준다. 아이들도 얼굴에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이제 초등학생인 그들로서도 뭔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 왔나 보다. 4, 5분 정도 지났을까. 최북단 명파마을을 지나니 다시 검문소가 나왔다. 차량은 멈추었고 군인이 다가왔다. 민통선 검문소인 이곳에서 출입신고서를 제출하고 민통선차량출입증을 받아 차량 앞면에 비치하였다.



“아빠, 만약에 진짜 만약에 차를 세우면 어떻게 돼?” 뒷좌석에 있던 조카와 딸애가 하도 떠들어서 시끄럽게 하면 군인이 차를 세워 잡아간다고 했더니 아이가 물었던 것이다. “평소대로 해. 아님 군인이 잡아가. 괜히 이상하게 쳐다보면 의심받을 수 있어.” 그중에서 가장 큰 조카아이가 제법 아는 척했다. 작은 두 아이는 큰아이의 말에 금세 겁을 집어먹고 입을 굳게 닫았다.


몇 분의 침묵,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예전 수학여행의 필수코스였던 이곳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 안개가 자욱했다. 북녘 땅을 보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불안감은 나중에 현실이 되었다.



인두화 그리는 마법 같은 손놀림

안내문 앞에서 길은 계속 북쪽으로 뻗어나갔다. 길은 있는데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대신 언덕을 올라 멀찍이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앞서가던 아이들이 한곳에 멈춰 있다. 목각이었다. 나무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그린 ‘낙화’라고도 불리는 ‘인두화’였다.


밑그림도 없이 인두로 거침없이 그려내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하나쯤 기념하면 좋겠다 싶어 아이들에게 선물을 했다. 넉살 좋은 아저씨도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하며 인두로 그림을 그려낸다. 아이들은 그 마법 같은 손놀림에 흠뻑 빠져들었다.


자욱한 안개처럼 답답한 남북관계

전망대 건물 입구 벽면에는 남북관계를 역대 대통령의 정책과 함께 설명한 그림이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현 대통령의 정책이었다. 노대통령은 <평화번영정책발표>로 시작해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 착공’, ‘남북연결철도 시험운행’, ‘6자회담’ 등을 주요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반면 이대통령은 <취임>과 더불어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 ‘천안함 피격 사건’ 등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의도적으로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두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따라 그에 따른 결과도 현저하게 다름을 그림은 말하고 있었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 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전망대 1층에는 담배, 지폐, 술, 생활용품 등 북한 관련 자료들과 금강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전시실은 아직 30년 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다소 답답한 마음에 전망시설이 있는 2층으로 갔다.


그러나 2층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보이는 건 하얀 여백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뿐이었다. 언제쯤 안개가 걷힐까. 북쪽으로 불쑥 나온 전망대에 섰다.



맑은 날에는 금강산이 손에 잡힌다고 했는데 철책조차 보이지 않으니 분단의 현실마저 잊게 만든다. 그리운 금강산, 분단의 아픈 현실도 안개에 묻혀 어떤 감정의 대입도 되지 않았다. 다만 전망대 아래로 겨우 형체가 보이는 미륵불상과 성모상이 통일을 기원하며 북녘 땅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을까. 안개가 일순 걷히는가 싶더니 파도소리와 함께 바다와 모래해변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철책과 철길도 그 모습을 조심스럽게 드러내었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이내 안개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감쪽같은 사진사의 마술

아이들도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사진을 찍자고 해도 시큰둥했다. 옆에 있던 사진사가 “여기서 찍으면 똑같은데.” 하며 벽의 대형사진을 가리켰다. 이곳 전망대에서 맑은 날에 찍은 사진을 크게 실사하여 벽에 걸어둔 것이었다. 간혹 날이 좋지 않으면 관광객들은 이 대형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실제 맑은 날을 배경으로 찍은 것처럼 사진은 감쪽같았다.


아이들도 금세 기분이 좋아지더니 대형사진 앞에 섰다. 사진을 찍고 나자 사진사가 대뜸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얘야, 아저씨 사진으로 사진을 찍었으니 돈을 줘야지.” 라고 했다. 아이는 순간 얼음이 되었고 여행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주머니의 잔돈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그냥 아이가 귀여워서 그랬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이들도 여행자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한바탕 웃었다.

사실 사진사 분은 날씨가 흐리면 대형사진을 배경으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았는데, 여행자가 자신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니 그냥 봐준 것이었다. 남의 사업장에 뛰어든 셈이라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해서 고개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안개는 끝내 걷히지 않고...

“안개가 자주 낍니까?”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올해 유독 비가 많이 와서 그런데, 예전에는 간혹 안개가 끼었을 뿐입니다.” 올 여름 유독 심한 안개로 장사마저 시원치 않다며 사진사가 말했다.


반 시각을 넘게 기다려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차로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북녘 땅을 보여주려는 작은 희망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전망대는 오늘의 남북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차창 너머로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명파마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안개를 떠난 마을은 평화로웠고 분단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행팁☞ 통일전망대는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있다. 북위 38도 35분. 비무장지대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의 고지에 세워졌다. 해금강까지는 불과 5km밖에 되지 않는다.

통일전망대는 출입신고소에 3~4시까지는 도착해야 관람할 수 있다(계절마다 차이가 있으니 사전에 홈피 확인). 주위에 명파해수욕장, 동해선철도남북출입사무소, DMZ박물관이 있고, 전망대 옆에 6.25전쟁체험관이 있다. 금강산콘도에서 출입신고소까지는 약 1km, 출입신고 후 전망대까지는 약 4km이다.

통일전망대 관람 후에는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다. 나오는 길에 민통선 검문소에서 차량출입증만 반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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