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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구나!!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구나!
-명경지수가 감돌며 흐르는 곳, 영덕 침수정

사람들은 대개 영덕하면 대게를 먼저 떠올리고 바다에 있는 고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내륙 쪽으로 조금만 가면 청송, 영양, 포항 끝자락의 들판 하나 없는 깊은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영덕읍에서 34번 국도를 따라가다 달산으로 접어들면 갑자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길 양쪽의 산들은 벼랑을 이루고 맑은 계곡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이 빼어난 경관은 긴 협곡을 따라 계속된다. 어느덧 인간의 세계를 벗어나 선계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곳을 일러 옥계동이라 한다.


마을이 생겨난 시기는 조선 선조 말년 무렵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주의 손성을 이라는 사람이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별천지 같은 경관에 매료되어 정착한 것이 옥계동의 시초라고 한다. 그는 이곳에 정착하면서 경관이 가장 수려한 곳에 정자를 짓고 자연을 벗 삼았는데, 그 정자가 바로 침수정이다.


계곡과 수석의 아름다움이 빼어난 옥계계곡의 가장 좋은 곳에 침수정이 있어 이곳은 흔히 침수정 계곡으로도 불린다. 이 계곡은 8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옥계팔봉’으로도 불리는 팔각산과 동대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류하는 곳이다.


계곡 주위의 기암괴석과 대표적인 경관은 저마다 이름이 있는데, 그중 삼구암, 학소대, 진주암, 병풍석 등 가장 빼어난 곳 서른일곱 군데를 골라 ‘옥계삼십칠경’이라 했다. 손성을은 그 경관의 아름다움을 문장으로 적어 <옥계삼십칠경첩>을 남겼다고 한다.


광해군 원년인 1609년에 지은 침수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이다. 앞으로 마루를 내고 뒤쪽의 반은 방으로 꾸며져 있다. 지금도 옛 자리에 그대로 있어 계곡의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침수정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한참을 궁리하다 건너편에 있는 가게에 들렀다. 기침소리를 내며 주인장을 부르자 아주머니가 나왔다. 혹시 정자 열쇠를 여기서 보관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하도 사람들이 신발을 신은 채 마루에 오르고 음식물도 먹고 해서 잠가 두었습니다.” 정자의 문을 왜 닫았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아주머니가 지레 말을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학고 열쇠를 건네받아서 정자로 향했다.


정자의 문을 여는 순간 계곡물 소리가 세차게 들려왔다. 마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선계가 따로 없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계곡치고 정자 하나쯤 없는 곳이 없지만 이곳의 풍광은 가히 으뜸이었다. 시가 절로 나올 법하니 이곳에 오면 누구나 문장 하나쯤 뽑아낼 수 있을 듯하다. 어디가 그림이고 어디가 자연인지 구분조차 힘들다. 괴석과 물색이 빚어내는 자연의 풍경을 인간이 담아내는 것조차 이곳에서는 불가능할 듯하다.


절벽이 병풍처럼 정자를 둘러싸고 너럭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은 그야말로 옥색이다. 세찬 물줄기는 깊은 소를 만들어냈고 물은 요동치며 한참을 맴돌다 계곡을 빠져나간다. 옥처럼 맑은 이 계곡물은 포항의 하옥계곡에서 흘러나온 물과 만나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으로 흘러간다.


침수정은 그 자체로 정갈하다. 정자 주위의 물빛과 괴석도 그러하지만 정자의 현판에 적힌 이름이 마음을 빼앗는다. 침수정
枕漱亭. 베개 침에 양치질할 수자를 쓴다.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을 한다.’는 뜻으로 중국의 역사서인 진서 손초전에 나오는 ‘침석수류枕石漱流’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번잡한 세상을 버리고 자연에 묻혀 사는 선비의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


너럭바위에서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고 바위 위로 우뚝 솟은 정자를 올려다보기를 몇 번, 정자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다 문을 잠그고 나왔다. 400년 전 옛 선비가 새삼 부러웠다. 뜰에 핀 금낭화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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