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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신비의 섬

울릉도의 평원, 나리분지를 느긋하게 걷다.


 

초가을 나리분지, 
          과거를 따라 느긋하게 걷다.

나리분지 가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도동항에서 버스를 타고 달리기를 한 시간여, 천부에서 다시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천부를 출발한 버스는 탱크 같은 굉음을 울리며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간다. 이리저리 여덟팔자로 휘어진 도로는 그나마 차가 있어 30여 분이면 나리분지에 이를 수 있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나리분지가 한눈에 보이는 고갯길을 넘기 훨씬 전에 홍살문 하나가 길에 있다. 육지에서는 흔히 보는 홍살문이지만 이 깊은 산중에 홍살문이 있다는 건 의외였다. 왜 일까. 옛날 이곳은 울릉도 개척 당시인 1882년 홍문동마을이 있던 곳이다. 마을 가운데 붉은 문이 있었다고 하여 홍문동 혹은 홍문메기마을로 불렸다. 지금의 홍살문은 그때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새로 복원하였다.

 

고종 19년인 1882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된 부호군 이규원은 4월 30일 울릉도에 도착하여 일주일간 조사한 후 6월 5일 서울에 돌아와 고종을 복명하기까지의 내용을 일기로 적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해 뒤인 1883년에 울릉도 검찰 일기인 「울릉도검찰 계초본」이 만들어졌다.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이 자료에는 당시 나리로 가는 길을 이렇게 적고 있다.

 

“천년포를 지나 왜선창에 이르니 전라도 낙안에 사는 선상 이경칠이 격졸 12명을 데리고, 흥양 초도에 사는 김근서가 격졸 19명을 데리고서 각각 움막을 짓고 배를 만들고 있었다. 점차 전진하여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큰 고개 다섯을 넘었는데 고갯길이 가팔라서 올라갈 때는 거의 이마가 닿고 내려올 때는 뒷머리가 닿았다. 가장 아래쪽의 고개가 홍문가인데 이를 넘어 들어가면 이 섬의 중심인 나리동이다.” 일주일간 울릉도에 머물렀던 이규원은 나리분지 일대의 험준함을 ‘이마가 닿고 뒷머리가 닿다’고 하였으니 섬 개척 당시에 이곳이 얼마나 깊은 곳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고갯길을 굽이굽이 오르던 버스가 가픈 숨을 토해내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고갯길을 넘은 것이다. 순간 울릉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넓은 평지가 나왔다. 울릉도에서 바다로 꽂히고 하늘로 솟은 거대한 산과 암벽만 봐온 여행자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이미 울릉도의 지형에 익숙해져 그럴 지도 모른다.


버스는 평원을 달렸다. 마치 옛 추억 속의 평온한 시골마을을 달리는 듯했다. 버스에서 내려 인근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산채비빔밥과 동동주를 주문하고 나리분지의 느긋함을 즐겼다.

 섬말나리

나리분지는 화산분화구에 화산재가 쌓인 화구원으로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비교적 넓은 평지이다.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공도 정책으로 수백 년 비워 오다가 고종 때 개척령에 의해 개척민들이 이곳에 들어왔다. 옛날부터 정주한 사람들이 양식이 없어 섬말나리 뿌리를 캐 먹고 연명하였다고 하여 ‘나리골’이라 불리다 최근에 나리분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개척 당시에 93호 500여 명이 살았다고 한다.


울릉도는 물이 많고 강설량도 많지만 화산재로 덮인 토질은 그 특성상 물을 유지할 수 있는 보수력이 약해 밭농사만 할 뿐 논농사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자연조건은 가옥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전통가옥인 투막집과 너와지붕을 한 우데기집이 아직 남아 있다. 

버스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여행객들도 거의 없는 나리골은 한적했다. 담장 너머로 돌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이름 모를 꽃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숲 한쪽에는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된 섬말나리가 초가을 햇볕을 쬐고 있었다.

 

투막집은 키 큰 나무들에 가려 있어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눈비나 바람을 막기 위해 집 바깥쪽에 둘러친 우데기가 인상적이다. 1940년대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울릉도 개척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투막집에서 길을 건너면 집이 한 채 더 있다. 안내문에 너와집으로 적힌 이 집은 투막집과 지은 연대와 구조가 엇비슷하다. 투막집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통나무의 귀를 맞춘 귀틀구조 등 내부구조도 거의 같고 우데기라 할 수 있는 외벽을 나무판으로 이었다. 다만 지붕은 억새가 아닌 나무를 쪼개 만든 너와지붕이다.


 

옛집을 나와 다시 길 위에 섰다. 버스는 아직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걷기로 했다. 나리골을 둘러싼 산에도 듬성듬성 붉은 잎들이 보였다. 가을이 오기는 오나 보다.

 

☞ 여행팁 나리분지 인근에는 울릉국화·섬백리향 군락지, 용출소, 신령수, 등이 있다. 나리분지를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천부까지 와서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천부에서 나리분지까지는 하루 9회 정도 버스가 다닌다.


나리분지 가는 버스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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