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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신비의 섬

머나먼 뱃길, 독도는 잘 있었다.



 

머나먼 뱃길, 독도는 잘 있었다.


그랬다. 독도는 잘 있었다. 나는 그냥 떠났을 뿐, 섬은 말이 없었다. 독도까지 1박 2일 10여 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포항에서 1박, 아침 9시 40분. 파도는 잔잔했고 나른한 몸을 배에 실었다. 간간히 보이는 육지는 먼 바다 속으로 점점 사라졌다. 깊은 잠에 빠졌다.

 도동항에서 출항 준비 중인 독도행 여객선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깼다. 오후 한 시에 다가서고 있었다. 도동항에 내리니 한 할아버지가 민박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잠시만요. 할아버지.” 대합실로 향했다. 예정대로라면 예약한 내일 오후 두 시에 독도에 들어갈 터였다. 하늘이 쨍했다. 내일이면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 대합실에서 배편을 물어보니 빈 좌석이 있다고 했다. 망설임 없이 표를 샀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는 허름한 민박집에 짐을 풀고 허겁지겁 점심을 먹었다. 곧 출항이다.

 

오징어를 말리는 도동항이 점점 바다에서 멀어졌다. 배가 죽도를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망망대해다. 가없는 바다. 어디가 끝일까. 바다의 끝에 섬은 있는 것일까. 나의 머리는 이미 공황상태였다.

 선창 밖으로 서도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잇달아 동도가 ....

문득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니면 평생 언제 독도를 가보겠냐고 흰소리를 하는 중년의 사내는 이미 반 술이 되어 얼굴이 불그스름하다. 혼자 온 듯한 총각은 이어폰을 귀에 꼽은 채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안내 방송이 울린다. 배가 독도에 접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때 묻은 차창 너머로 거대한 바위섬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독도였다. 아니 서도였다. 배 한 번 뒤집혀야 올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한반도의 막내 독도는 장남처럼 푸근하게 우리를 반겼다.

 선착장에서 본 동도. 20여분 남짓 머문다.

긴 고동을 울리며 배가 부두에 접안했다. 경비대원들이 서둘러 뛰어오기 시작하였다. 사다리가 놓였다. 승무원이 문을 여는 순간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 강렬한 햇빛이 들어왔다. 아!!!

 망양봉을 넘어....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그냥 뚜벅뚜벅 섬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정말 내가 독도에 온 것일까.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 사람들은 한두 마디 말을 건네기 시작하였다.

이 층계를 오르면 독도 경비초소와 등대, 헬기장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인은 출입금지.

부두에 내리니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거대한 암벽의 동도였다. 한참을 응시하다 고개를 돌리니 바로 앞에 서도가 있었다. 동도와 서도는 151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다. 그 사이의 수심은 10m 정도이다.

 독도등대가 보인다.

동도는 해발 98.6m로 정상이 비교적 평탄하여 독도 경비초소와 헬기장, 등대 등의 시설물이 있다. 서도는 동도보다 훨씬 높다. 해발 168.5m로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정상으로 접근이 어려워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민숙소를 짓느라 한창 공사 중이었다.

 

동도에서도 부두 일대만 다닐 수 있다. 초소로 오르는 길은 경비대원들이 지키고 있다. 이 외딴 섬을 지키는 대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착하고 앳된 얼굴이었다. 그러나 자세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부채바위

섬 위를 오를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독도에 발을 디뎠다는 것만 해도 운이 좋았다. 하나둘 섬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두 동생들이 형을 따르고 있는 모습을 한 삼형제굴바위, 닭바위, 부채바위, 탕건봉 등이 서로 어우러져 독도의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20여 분이 흘렀을까. 승선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진을 담지 못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카메라로 막 샷을 날린다. 무언가에 홀렸나보다.

 닭바위와 동도

배는 서서히 움직였다. 경비대원들이 정렬을 하더니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승객들도 하나같이 창가에 얼굴을 붙인 채 화답을 했다. 동도, 서도가 두 눈에 함께 들어오는가 싶더니 배는 흔적을 지운 채 다시 망망대해로 나아갔다.

                                                      숫돌바위

 

독도의 옛 이름은 여러 가지였다.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돌섬), 독섬 등으로 불리었는데, 그중 가장 일반적으로 불리던 ‘독섬’을 한자로 옮겨 ‘독도’가 되었다. 신라 지증왕 13년인 512년에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로 울릉도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처음으로 우리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접안시설 완공 후 세운 표지석

1696년 동래 출신의 어민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죽도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서계를 받았다. 사실 이때의 죽도가 독도인지는 의문이다. 울릉도 바로 옆에 있는 죽도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섬 중 죽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하나같이 대나무가 무성하다. 죽도는 섬 이름이 대나무가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지금도 그러하다. 또한 왜선창이 있었다는 천부와도 가깝다. 이에 대한 연구는 학자의 몫일 것이다.

 동도 몽돌해안과 서도

울릉도는 조선 태종 때에 이르러 빈번한 왜구의 침입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자 공도정책에 의해 주민들을 뭍으로 이주시켰다. 이후 357년간 섬을 비워두었다. 고종 때인 1882년에 다시 울릉도 개척령에 따라 주민을 이주시켰고,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칭하고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하도록 정하였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로 알려져 있다.

 한창 공사 중인 서도 어민숙소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은 러시아해군을 정찰한다는 이유로 독도를 오키도사 관할로 강제 편입시키면서 독도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되어 독도는 다시 우리 땅이 되었지만 1948년 미군 B29 폭격기들이 독도를 목표삼아 폭격연습을 했고 이 와중에 우리 어민 수십여 명이 사상하게 되는 수난을 겪게 된다.

 

이런 수난 속에서도 을릉도 주민의 독도에 대한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1953년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했고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33명이 약 3년 8개월 동안 독도에서 일본과 수차례 전투를 치르면서 끝까지 독도를 지켜냈다.

 서도의 최고봉우리. 해발 168.5m

1981년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다시 주장하자 고 최종덕 씨는 ‘울릉읍 도동 산 67’ 서도 벼랑어귀로 주민등록을 옮겨 단 한 명이라도 독도에 우리 주민이 산다는 것을 일본에게 보여주었다.

 

독도는 1982년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었고 2000년 행정구역상 독도리를 신설하였다. 2003년에는 ‘799-505’로 독도 우편번호가 부여되어 명실공히 우리 땅임을 공표하였다. 2005년부터는 독도(동도)를 개방하고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어 일반인들이 독도를 밟을 수 있게 되었다.

탕건봉과  촛대바위, 삼형제굴바위


촛대바위와 삼형제굴바위



 

☞여행팁 독도행 여객선은 울릉도 도동항에서 출발한다. 독도해운(054-791-8111~4) 삼봉선은 왕복 5시간이 소요되며 요금은 41,200원이다. 대아고속해운(054-791-0801~3) 오션플라워호는 왕복 3시간, 씨플라워호는 왕복 4시간이 소요되며 요금은 45,000원이다. 독도(동도) 체류시간은 20~30분 정도이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내리지 못하고 선상에서 보는 수밖에 없다.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하며 당일 예약은 받지 않는다. 다만 도동항에서 빈 좌석이 있을 경우 승선이 가능하다. 운항시간(7:30, 13:00, 14:00, 14:30)은 변동이 많으니 사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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