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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박물관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노천교실은 어떘을까, 40계단문화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노천교실은 어떘을까, 40계단문화관

40계단 일대는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부산역과 부산우체국 등이 인접한 부산의 대표적 상업 중심가였다. 옛 부산역에서 이 계단 앞으로 비스듬한 길이 나 있어 많은 사람들의 주요 통로가 되었던 계단이지만 1953년 11월에 발생한 <역전대화재>로 인하여 이 일대 모두가 소실되었다. 전쟁 뒤처리에 바쁜 부산시는 이 엄청난 피해가 난 이 일대의 복구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광복 전후의 사회상과  한국전쟁 당시 피난시절의 부산 모습

1960년대 들어 겨우 복구하였지만 40계단 일대는 화재 전과 전혀 다르게 복구되었다. 도로가 변형되었고 우체국 청사의 위치도 바뀌었다. 옛 40계단은 동광동 새마을 금고 앞쪽에 있었다. 비록 그 위치는 바뀌었지만 영선고갯길에서 중앙동으로 난 40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시절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문화관광테마거리가 있는 40계단의 바로 옆에 40계단문화관이 있다. 2003년 2월에 개관한 40계단 문화관은 1950년대 40계단을 중심으로 피난살이를 했던 피난민들의 힘겨웠던 생활상을 담은 사진과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 중인데도 노천교실에는 수업 열의가 뜨거웠다.

이뿐만 아니라 15세기 이후 부산 중구를 중심으로 한 초량왜관과 1900년대 부산 영화관의 발자취 및 1950년대를 테마로 한 다양한 특별전시를 만나 볼 수 있다. 40계단문화관은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에 있는 문화공간이다





전쟁의 와중에도 문화활동은 계속되었다.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한 피난시절 천막학교

<아버지의 휴식, 이현우> 부산 피난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그 시절의 가장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으로 때우는 역전 지게꾼뿐이었다. 힘겨운 노동을 끝내고 잠시 고단한 몸을 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피난시절의 애환과 설움을 상징하는 40계단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 가 애처러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고향 언제 가려나
<...>

                                                     ------- 가수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 중에서

1887년경 부산항 옛 모습

1905년경 영선고개 옛 모습



1938년 독일에서 제작된 영사기. 한국전쟁 당시까지 부산극장과 제일극장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경남 의령 봉남초등학교에서 실제 사용했던 풍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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