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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난생처음 만든 서재, 괜찮은가요?

 

 

 

 

 

난생처음 만든 서재, 괜찮은가요?

 

아내가 이사를 간다고 해서 난 서재 서가를 만들기로 했다. 3000, CD 2000, LP500장을 사방 벽에 넣을 계획을 세우고 난생처음 설계도를 그렸다. 며칠 후 만난 업체 사장님이 어설픈 설계도를 보고 너스레를 떤다.

 

"이리 치밀한 서가 설계는 처음 봅니다."

 

조악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서가가 놓일 위치에 따라 높이, 깊이, 폭이 다다르고 오디오장, 책상까지 용도에 맞게 디테일하게 요구했더니 사장님은 ", 공사 끝나면 밥 한번 사셔야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잘되면 밥만 사겠습니까?"라고 응수했다. 설계도를 건넨 후 사장님이 얼마나 멋진 서재를 만들어 줄까 하는 기대와 설렘으로 며칠을 보냈다.

 

긴 벽의 각 서가는 세로 여덟 칸으로, 위 여섯 칸은 240, 아래 칸은 260, 맨 아래는 300로 하고 문을 달아 사물함으로 만들었다.

 

어설픈 설계와 치명적인 실수, 사장님의 완벽한 서가 제작

서가를 제작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건 공간마다 특성에 맞게 구성을 달리한 것이다. 문 맞은편 가장 긴 벽은 전체 벽면에 서가를 가득 채우는 걸로 했다. 가로는 모두 일곱 칸인데 가운데 칸만 높이와 폭을 달리해서 변화를 주고 좌우에 세 칸씩 균형을 맞췄다각 서가는 세로 여덟 칸으로, 위 여섯 칸은 240, 아래 칸은 260, 맨 아래는 300로 하고 문을 달아 사물함으로 만들었다. 각 칸의 높이는 신국판(152*225) 크기의 책을 염두에 두고 내경(칸살과 칸살 사이의 안지름)을 기준으로 높이 240, 깊이 240,550으로 했다. 대개의 책 크기는 신국판 유형이 많고 더 많은 책을 꼽기 위해서는 이 치수가 적당했다.

 

업체에 요청한 직접 그린 서가 제작 설계도

 

그리고 창문 아래도 벽면 공간 모두를 활용해 서가를 가로로 길게 넣기로 했다. 최대한 많은 책을 꼽기 위해 4단으로 구성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높이를 230으로 줄여야 했고 깊이를 160로 줄여 방 공간을 적게 차지하도록 했다. 상판을 별도로 얹었는데, 시각적인 효과와 팔꿈치를 받치고 창밖을 내다보거나, 화분 등의 장식품을 올릴 수 있도록 책장 폭보다 20더 튀어나오도록 설계했다.

 

창문 아래는 길게 서가를 넣는 대신 깊이를 줄여 공간을 적게 차지하도록 했다.

 

책상이 있는 벽면에는 책상과 오디오를 두기로 하고 위로는 CDLP를 꽂을 수 있는 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책상과 장 사이에 370정도로 간격을 줘서 책상을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했다. CD장은 높이와 깊이를 150으로 했고, LP장은 350으로 했다. 그리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책상 위 천장에 디자인 등을 달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책상은 전체 길이가 2500이고 높이는 720이다. 얼핏 하나로 된 긴 책상이지만 실은 폭이 500인 오디오장을 중심으로 1000짜리 책상 두 개가 붙어 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적합한 구조로 만들었다. 오디오장은 CD플레이어, 앰프, LP 턴테이블을 넣을 수 있도록 150, 250등으로 높이를 분할해서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물론 뒤쪽으로는 각 장치에서 나올 배선 구멍도 적절하게 뚫었다.

 

CD장과 LP장, 오디오장, 책상 둘

 

그런데 책상과 높이를 맞춘 오디오장 상판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턴테이블 덮개가 투명 플라스틱으로 아래위로 열리는 구조라서 LP를 틀 때마다 상판을 여닫는 기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강화유리로 덮개를 만들고 경첩을 달아 개폐가 가능하도록 설계했으나 유리를 주문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책상과 CD장 사이의 공간이 370정도로 500덮개를 여닫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사용빈도, 효율성, 비용적인 측면, 작업일정 등을 고려하여 탈부착 할 수 있는 뚜껑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방문 쪽이었다. 붙박이장과 방문이 있어 효율적인 공간 분할이 필요했다. 붙박이장과 방문을 여닫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했고, 공간이 주는 갑갑함을 덜어야 했다. 처음엔 창문 아래 서가처럼 허리 높이까지 책장을 길게 넣는 걸 생각했다. 고민 끝에 긴 벽면과 비슷한 여덟 칸으로 가되 폭을 160으로 좁게 하고 공간을 많이 차지 않도록 해서 출입문에서 봐도 시야에 걸림이 없도록 했다.

 

가장 고민했던 방문 쪽. 붙박이장과 방문이 있어 효율적인 공간 분할이 필요했다.

 

붙박이장은 문을 두 짝으로 달았다. 또한 바깥으로 방문이 열리도록 위치를 바꿨다(대개의 방문은 방 안으로 열린다). 문과 책장 사이는 벽면을 그대로 두어 여백의 느낌을 살렸다. 책장을 중심으로 붙박이장과 벽면, 문이 정적인 구성을 갖추도록 했다.

 

그런데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첫 번째는 46배판(188*257) 크기의 책을 꽂을 생각으로 서가 칸의 높이를 260로 잡았던 것. 그런데 책을 꼽는 순간 들어가지 않았다. 문제의 책은 하드커버로 만든 양장본이었다. 일반적인 46배판 크기의 책의 높이는 257이지만 양장본은 하드커버가 있어 더 높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46배판 양장본을 꼽기 위해서는 265정도는 되어야 했다. 결국 책을 눕혀서 꽂아야 했다.

 

또 하나의 실수는 오디오 선 길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책상 길이를 100로 한 것이다. 결국 비싸게 산 오디오 스탠드를 쓰지 못하고 책상 위에 오디오를 올려놓아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어설픈 설계를 한 나의 실수였고, 사장님은 요구대로 정확히 서가를 짜왔다. 일을 완벽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스타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분이었다.

 

두 개의 책상 중 하나에는 서랍을 , 나머지 하나에는 책꽂이를 두어 최대한 책을 많이 꽂을 수 있도록 했다.

 

책과 음반 정리에만 사흘이 넘게 걸려

며칠 뒤 서가가 왔다. 수십 개의 작은 책장으로 제작되어 온 것을 조립하고 벽면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족히 몇 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모든 설치가 끝나고 사방 벽에는 콘셉트와 구성을 달리한 서가와 CD, LP, 벽장, 오디오장, 책상 둘이 배치됐다.

 

서가가 설치된 후 책과 음반을 정리하는 데 3일하고도 이틀이 더 걸렸다.

 

서가가 완성되자 책과 음반을 정리해야 했다. 지난 토요일부터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한 정리 작업은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고 그렇게 해서 꼬박 3일하고도 이틀(저녁시간만 정리 작업)이 더 걸렸다. 책과 음반의 구성과 분류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정작 서가에 책과 음반을 꽂는 작업은 빨리 끝났다. 서점 노동자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이번에 서가를 짜면서 20년 전 대학시절부터 써 왔던 책장과 최근에 구입한 것들을 모두 재활용으로 내놨다. 책이 늘 때마다 하나씩 사 모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필요한 분이 모두 가져가서 낭비가 아닌가 하는 마음의 부담은 덜 수 있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책들을 모두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지금은 나만의 책이지만 그때는 모두의 책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