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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선비향이 그윽한 가람 이병기생가

선비향이 그윽한 가람 이병기 생가
- 나이 들어 여생을 마치고 싶은 집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전과 다른 여행지의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이 다반사다.
 예전에 가람선생의 집을 가기 위해서는 한적한 국도를 따라 동네의 고샅길을 접어드는 정겨움이 있었다.
 오늘 와보니 번듯한 안내판과 더불어 넓은 주차장이 정비되어 있었다.



오가는 이도 드문데 주차장이 넓으니 농민들이 벼를 말리는 타작마당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선생의 생가로 가는 정겨운 길은 사라지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생가로 들어가니 심히 당황스럽다.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모정 앞에는 연못을 파고 배롱나무와 각종 기화요초를 심어 시조작가이자 국문학자였던 그의 풍모가 느껴지는 듯 하다. 철 지난 연꽃이 하얀 자태를 드러내며 수면 위에 고요히 떠 있다.


생가 입구의 시비 한 켠에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열매를 탐스럽게 맺고 있다. 향이나 날까 싶어 코를 가까이 대어보지만 하늘에 매달린 모과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시비와 동상 등 난립한 비석에 마음이 어지럽다. 동상을 세우고 돌에 글을 새겨야 선생의 업적을 기릴 수 있는 것인지, 왠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박한 정자옆에는 탱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에 정착한 시기를 고려하면 200여 년으로 추정된다. 귤같기도 하고 유자같기도 한 황금색의 탱자는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검박한 정자와 오래된 탱자나무, 깊숙한 연못, 선비의 기상처럼 가지를 뻗은 배롱나무에 생전의 선생 모습을 그려 본다.


행랑채는 철거되었고 일자의 사랑채는 초가집이다. 대개의 문화재가 기와를 얹고 인공이 가미된 건물이 주는 어색함이 있다면 적어도 이곳은 내집같은 조촐함이 있다. 빛바랜 마루에 걸터 앉아 햇볕을 쪼이며 가을 소리를 듣기에 그만이다.
집 곳곳에는 검소함이 묻어나 선비 집안의 전형적인 가옥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야트막한 산 아래 푸른 대밭이 집을 둘러 싸고 있어 마음마저 푸근하다. 고패형식의 안채는 마당 높이 솟아 있다. 멧돌과 절구, 풍로 등이 옛 가옥의 소박함을 드러낸다. 일꾼을 위한 외딴채 옆의 장독대가 정겹다.


술과 난초, 매화의 향기를 사랑했던 선생의 체취가 집안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 가람 선생의「별」

스스로 술복, 화초복, 제자복 등 세 복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처하던 선생의 집은 먼지가 두텁게 쌓여 있다. 초가가 주는 정겨움은 관리의 소홀함에 그 색을 바랜 듯하여 못내 아쉽다. 번듯한 외형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는 문화재 보호 방식이 절실하겠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 시골의 생가는 무덤덤하였다. 초가 한 채를 지어 작은 연못을 판다. 그 옆에 정자 하나를 세워 늙어가면 그만한 복도 없으리라. 가끔 찾아오는 벗들이 있어 연못가 정자에서 달을 희롱하며 별과 함께 술로 밤을 지새우리라.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데나 정들면 못살 리 없으련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가

삼베 무명옷 입고 손마다 괭이 잡고
묵은 그 밭을 파고 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 가람선생의 「故鄕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