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자의 풍류와 멋

천년의 학, 고운 최치원이 은둔했던 ‘농산정’




 

천년의 학, 고운 최치원이 은둔했던 ‘농산정’


 

 해인사 매표소를 지나면 길 왼쪽으로 깊은 계곡이 이어지고 그 건너편에 붉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농산정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홍류동. 붉은 빛이 흐르는 골짜기라는 홍류동은 봄에는 진달래, 철쭉이 물에 비춰 붉은 기운이 감돌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온 계곡을 불태운다.


 

 이 아름다운 선경에 어찌 시인묵객들의 문향이 없었겠는가. 홍류동의 기이한 바위와 굽이치는 계곡, 장대한 붉은 소나무숲을 두고 옛 문인들은 그냥 자연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문기가 흐르는 자연으로 만들었다.


 

 이 홍류동을 문자 향 가득한 골짜기로 만든 첫 사람이 고운 최치원일 것이다. “스님이여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소/산이 좋다면서 어찌하여 산 밖으로 나오려고 하시는가/뒷날 내 자취를 시험삼아 보시구려/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니” 스님들조차 세상을 향해 치닫는 현실을 개탄하고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시이다.


 

 고운이 가야산에 입산한 후의 행적은 묘연하나 스님으로 해인사에 머물던 그의 형을 오가며 만났다는 사실은 전해진다. 지금 그가 홍류동 계곡에 남긴 흔적은 아무데도 없다. 아니 제시석이라 불리는 바위글씨가 있긴 하나 누구의 글씨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시는 고운의 것이되 글은 후대의 다른 이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친 듯 겹친 돌 때리어 첩첩한 산 울리니/지척간의 말소리조차 분간하기 어렵다네/시비소리 들릴까 저어하노니/흐르는 물 시켜 온 산을 감았네” 이 시구의 마지막 ‘籠山’을 따 지금은 ‘농산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농산정은 고운이 은둔하며 수도하였다는 이곳에 있던 예전의 정자 자리에 1936년에 후손과 유림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정자의 건너편에는 치원대 혹은 제시석이라 불리는 석벽이 있고 거기에 고운의 칠언절구가 적혀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단풍을 찾는 이들로 홍류동 계곡은 번잡할 터, 가벼운 짐을 꾸려 미리 다녀옴도 좋지 않을까.



 

“가야산이 빼어나서 천하의 으뜸이라면

천년의 외로운 구름(孤雲) 짝할 이 드물어

내 그를 따르고자 하나 끝내 그러질 못해

부질없이 계원필경만 들척이누나

청컨대 그대 고운의 발자취 낱낱이 밟았다가

돌아와 내 가슴의 티끌을 쓸어주소

고운, 고운이여 천년의 학이여

눈으로 그대 보내며 다락에 기대인다.“

고려 말 삼은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이 해인사로 떠나는 친구에게 부친 시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