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여행/길 위의 사람들

길에서 만난 갓 쓴 얼짱 할아버지

김천령 2014. 9. 24. 12:55

 

 

 

 

길에서 만난 갓 쓴 할아버지의 맑은 얼굴

 

섬진강을 건너 구례 사성암 가는 길. 할아버지 한 분이 단정한 한복차림으로 느긋하게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하얀 고무신에 깨끗이 빨아 입은 저고리와 바지. 검은 갓 아래 정갈한 수염이 유독 하얗다. 얼굴은 평온했고, 맑았고, 빛났다. 요즘 말로 얼짱 할아버지였다.

 

 

얼핏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차림새에다 오랜 수양을 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고고한 인상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차를 세우고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만면에 웃음을 띠시더니 흔쾌히 수락하신다.

 

 

할아버지는 올해 여든여섯 살인 이강한 할아버지. 구례군 간전면 중한치 마을에서 살고 계신단다.

 

 

갓을 썼음에도 혹시나 해서 여쭈었더니 아직도 상투를 틀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에게 무슨 곡절이 있는 듯했다. 21세기에 상투를 틀고 옛 식으로 살아간다면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터.

 

 

할아버지는 전주 이씨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현재 호은공 종친회 회장이다. 지리산 청학동에서 예절학교 청림서당 훈장님으로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구례향교의 원로로 계시기도 한 이강한 할아버지는 선비의 꼿꼿한 모습 그대로였다.

 

 

할아버지는 이곳 처제 집에 잠시 들렀다가 처제에게 사줄 적당한 거울이 있나 싶어 읍내로 나가던 중이었다. 구례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려고 마을 정류장으로 가던 길에 마침 여행자와 마주친 것.

 

 

 

구례 읍내가 지척이라 모시겠다고 하니 무척이나 고마워하신다. 읍내로 가는 동안 할아버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86세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또렷하게 말씀하셨다. 10월 2일에 노고단에서 산제가 있으니 시간이 나면 꼭 들르라는 당부도 있지 않으셨다.

 

 

 

읍내에 이르렀을 때에는 아무 데나 세워주면 된다고 여행자의 갈 길을 더 걱정하셨다. 결국 거울 가게가 있는 경찰서 인근에 할아버지를 내려드렸다. 혹시나 싶어 차안에서 한참이나 할아버지를 지켜보았는데, 아무래도 헤매시는 것 같았다.

 

 

 

차를 이동해서 찾아보니 마침 인근에 거울 가게가 있었다. 다시 할아버지께 돌아가서 말씀드리니 너무나 고마워하신다. 내 걱정이랑 마시고 어여 가시게, 하며 할아버지는 예의 그 맑은 얼굴 가득히 고마움을 표시했다.

 

 

해는 이미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급히 걸음을 옮겼다. 문득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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